Earth, Wind & Fire의 ‘September’라는 노래는 9월 21일 그 밤을 기억하냐고 묻는 말로 시작된다. 최초의 가사에서는 ‘밤’이 아니라 ‘날’의 기억을 물었다고 한다. 나는 그편이 노래의 찬란하게 타오르는 느낌에는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 노래가 어느 밤에 대한 것이라면 그 밤은 활활 불타는 모닥불 옆에서 춤추는, 해가 지지 않는 낮처럼 깨어있고 싶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달과 별의 빛이 볕보다도 뜨겁고 환하게 마음을 비추는 그런 밤일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로봇 드림>에서 이 노래는 새파란 낮의 하늘 아래 공원의 녹음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도그는 외로움에 사무치던 어느 밤 일상을 함께해 줄 로봇을 주문하기로 결정한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듯 둘은 함께해서 완벽한 이야기를 살았고, 노래는 이야기 속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장식하는 폭죽처럼 터져 나온다.
그런데 이야기는 꿈처럼 짧다.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짧다는 게 아니라, 정말 도그와 로봇은 영화가 시작한 지 5분은 지나서 만나선 20분쯤이 되면 재해처럼 이별을 맞닥뜨리고 만다. 함께한 이야기가 이틀쯤은 될까. 이제 시작되는 건 재회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아마도 9월쯤 헤어졌을 둘이 다시 만날 수 있는 건 다음 해 6월. 도그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고, 로봇은 어째서 도그가 자신을 다시 데리러 오지 않는지 알지 못한다. 도그는 과거에 그랬듯 로봇이 없는 시간을 다시 살아가게 되지만, 도그가 있어서 시작된 로봇의 시간은 기약도 없이 폐장된 해수욕장에 멈춰있게 된다.
나는 이야기라는 단어를 거듭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영화 속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프레임 속의 프레임이 이건 한 편의 이야기, 회상 속에서 아름답게 완성되는 기억이라는 걸 계속해서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로봇과 도그는 비둘기 떼가 들여다보는 창문을 통해서, 지하철의 구조물과 인파들 사이에서, 익명의 스케이터의 두 다리 사이, 핫도그 가판대에 쌓인 콜라 캔과 빨대 사이에, 누군가가 찍고 있는 카메라 화면 속에서, 꺼진 TV 스크린과 네 컷 사진 안, 해변행 버스의 차창 속에서, … 반복해서 스크린 내부의 또 다른 스크린 안 모습으로 제시된다.
특히 거리를 걸을 때 수많은 쇼윈도 안쪽에서 이들의 모습을 내다보는 이미지의 반복은 더욱 재미있다. 코인세탁소, 미용실, 제과점, 매표소, 오락실, 각양각색의 거리 음식 가게, … 내다보는 시선이 위치한 그곳을 우리는 다음 순간에는 들여다보며, 거기에도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번화한 뉴욕 거리의 가게들처럼 나란히 늘어서 있다. 또한 이 가게들에 우리의 주인공들이 얼마든지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이야기의 배경에 머물지 않고 섞여 들 가능성이 열려있고, 그 때문에 이 액자들은 더욱 범상하게 특별해진다.
시간이 정체된 로봇의 꿈속에서 연약한 선율로 되풀이되던 ‘September’가 다시 터져 나오는 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다. 옥탑의 창가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던 그는 새로운 동반자 팰봇과 함께 걷는 도그를 발견하고, 한달음에 창문을 벗어나 도그가 서있는 거리로 달음박질친다. 이는 이미 분기점을 지나 각자의 차원으로 갈라진 이야기의 단면을 단숨에 찢고 넘어가는 백일몽이다.
해변에서 도그에게 돌아가는 꿈을 꿀 때마다 로봇은 점점 더 매섭게 몰아치는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번에 로봇은 손에 들고 있던 케첩 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와 함께 꿈에서 깨어나 창가에 선 현실로 돌아온다. 9월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할로윈 밤 도그는 케첩을 씻어 배수구로 내려보냈다. 빨갛게 완숙된 토마토는 가공을 거치고 병 속에 담긴 케첩이 되어 수명이 연장되지만, 그것이 영원한 보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로봇은 도그가 없는 삶이 끔찍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어렵게 알게 되었고, 이제는 케첩을 흘려보낼 준비가 되었다.
도그와 로봇의 거리는 미쟝아빔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관객은 익숙하게도 또다시 거리의 레스토랑 창문 안에서 밖을 바라본다. 도그와 팰봇이 나란히 서있는 투샷이 쇼윈도 프레임 안에 들어있고, 프레임 안에 작은 온점처럼 로봇이 서있는 동그란 창문 프레임이 또 들어있다. 바로 다음은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로봇의 얼굴의 클로즈업이다. 로봇은 이야기와 이야기를 목격한다.
이제 남은 것은 영원히 행복한 순간이 담긴 노래다. 둘은 창문 안과 밖에서 저 멀리 있는 상대방을 들여다/내다-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서있지만, 이 노래는 스크린을 찢지 않고도 서로의 이야기를 건너갈 수 있다. 도그와 로봇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추억을 반추하는 고양된 마음이 발휘하는 마법으로 스크린 양쪽에 손을 붙잡을 듯 설 수 있다.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처럼 신나게 춤을 한바탕 추고 난 뒤 동그란 창문 저 아래의 도그는 팰봇이 치는 손뼉의 새로운 박자에 맞춰 즐겁게 발걸음을 재촉하고, 로봇은 뒤편의 네모난 문 너머 새로운 동반자 라스칼에게로 돌아가 마저 음악을 즐긴다.
매사에 서툰 자신을 사랑해 줄 로봇이 필요했던 도그. 세상을 알려준 도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로봇. 둘은 이제는 ‘happily ever after’의 꿈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영원할 것 같았던 행복이 끝나고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상흔이 남는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다음 이야기가 또 남아있고, 어쩌면 그 안에서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마법 같은 부분이므로.
둘의 어떤 순간은 사랑스럽고 완벽했지만, 세상엔 또 다른 멋진 이야기들이 많다. 스크린 속의 스크린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란히 늘어서고 또 이야기 다음에 이야기가 이어져 계속되고 이어지는 삶의 감각을 구현한다. 충실하게 재현된 80년대 뉴욕 거리의 모습이 이 감각을 촘촘하게 지탱한다. 지금 로봇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September’이지만, 라스칼의 애청곡에 맞춰서 춤을 추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고, 어쩌면 더 좋아할 만한 새로운 노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온갖 문화와 취향이 뒤섞여 그 시절 뉴욕만의 독특한 정취가 완성되었던 것처럼(물론 나는 그 정취를 직접 겪어본 적은 없고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의 인터뷰에서 인용한 진술이다), 이야기에 또 다른 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가며 풍부해지는 삶 또한 완벽한 해피엔딩만큼이나 값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