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을 정리하다 2년 전, 25기 에디터 활동 말미에 적어둔 후기를 발견했다. 퇴고를 미루다가 마감을 맞추지 못해 결국 게시를 포기한 거였다. 일순간 2022년으로 돌아가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격정의 4개월을 다시금 통과했다. 그리고 이제야, 마침표를 찍게 됐다.
2022.06
에디터 활동 4개월간 대략 서른 편의 글을 쓰자 다짐했었다. 목표 이루기에 실패한 지금, 활동 내내 겪은 감정의 변천사를 톺아보며 소회를 적어본다.
1. 시작
아트인사이트 지원서 마감을 일주일 남겨둔 때였다. 장장 일주일간 지원서에만 매달려 잘 써내고 싶었다. 그런데 눈앞에는 전에 예약한 제주도 여행 티켓이 있었기에 당장 떠나야만 했다. 취소하고 싶다는 말이 몇 번이고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을 수 없었다. 결국 찜찜함과 불안감을 가득 안은 채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행이란 본디 낯선 장소에 대한 묘한 설렘과 들뜬 기분으로 생각이 무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 그런데 머릿속이 온통 '지원서'로만 가득했으므로 단 한 순간도 여행에 집중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비로소 지원서를 잘 써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완벽하게 해내겠다’라는 목표 앞에서 3일이란 시간은 턱없이 적었다. 잘 쓰고 싶지만, 역량이 따라주지 않는 데 대한 자괴감과 이대로는 불합격할 것 같다는 초조함, 왜 그간 미뤄왔을까 하는 자책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글을 썼다. 결국 퇴고도 완벽하게 하지 못해 아쉬움이 그득그득 묻어나는 글을 제출했다. 몇 번이고 울음기를 삼키며 완성한 거였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글 속에 간절함이 묻어났는지, 기적처럼 활동 기회가 주어졌다.
2. 욕심
어렵게 얻은 기회인 만큼 잘 해내고 싶었다. 하여 혹하는 문화 초대가 있으면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당시 다른 대외 활동도 병행하고 있었기에, 일주일에 치러야 할 마감이 네 개 정도 됐다. 그중 이틀은 아르바이트에 투자했으므로 글에 투자할 시간은 5일 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놓치고 싶었다. 1월 1일에 올해를 ‘도전의 해’로 명명한 것이나, 지금만 할 수 있는 일을 실행하고자 졸업 유예까지 감행한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잠을 줄여가며 글을 썼고 만성 피로에 시달렸다. 한 번은 글 마감하려다 생 마감하겠다는 말이 육성으로 나왔다. 그래도 기고한 글이 메인에 걸렸을 때는 성취감과 쾌감이 일었다. 더욱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3. 위기
어느 날 돌연 슬럼프가 왔다.
문득 관성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막힘없이 돌아가던 톱니바퀴에 제동이 걸렸다. 학부생 시절에 익힌 특정 이론과 틀을 기반으로 기계처럼 글을 쓴다는 게 문제였다. 내가 하는 작업은 어쩌면 창작이 아니라, 이미 연구가 끝난 이론들의 재생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럼프가 온 데는 ‘좋은 결과’에 대한 집착이, ‘쓰는 즐거움’을 압도했던 탓도 있었다. 학부생 시절, 체력적으로 달리거나 의욕이 없는 날엔 솔직히 대충 과제를 해서 내기도 했다. 어차피 교수님과 나만이 보는 글이니까. 그런데 인터넷에 글이 게시되고부터는 불특정 다수가 본다는 생각에, 가볍게만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문장 하나하나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꼈다.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할 바에야 제출을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아무 것도 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나는 처음 글을 쓸 때처럼 막막한 심정을 느꼈다.
4. 극복을 위한 몸부림
고민 끝에 결국 며칠 동안 붙잡고 있었던 영화 분석을 과감히 내려놓았다. 대신 무작정 밖으로 나갔고, 새로운 소재를 필사적으로 찾았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글이 <일탈을 거쳐야 자라나는 감각들에 관하여>였다. 대학 동기를 따라 간 전시회장에서 시작된 글인데, 전문적으로 작품을 분석하는 것보단 그 안을 배회하며 들었던 사유를 중심으로 작성했다. 또 늘 완벽을 추구하는 내가, 홀로 떠나는 여행에선 번번이 실패하는 역사에 관해서도 썼다. 이 글들은 영화 분석에 주력하거나 특정 이론에 집착하는 등, 그간 추구하던 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했다는 점에서 기존과 차별점이 있었다.
정말 신기한 건 며칠간 방구석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데 사력을 다했음에도 풀리지 않았던 게, 방향 전환만으로도 막힘없이 써졌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오히려 힘을 뺐을 때 의도치 않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것. 더욱이 조금은 삐딱하고 요상하게 흐를지라도 독보적 사유를 담은 글이라면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 그날 이후 무작정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을 고립시키고 옥죄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았다. 외려 무언가를 크게 느끼고 절감하는 것이 가장 큰 자산이며, 새로운 장소에 가 기존의 사고를 전복시키는 것만으로도 곧장 글이 풀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계기 또 하나는 임용 고시 준비 중인 친구 Y로부터 들은 조언 덕분이기도 했다. 친구는 자신도 재수할 때 반에서 제일 열심히 하는 학생이 되고 싶어서 남들보다 배로 하는 식으로 힘을 뺐는데, 나중에 가서는 한 시간도 공부하기가 싫었다고 했다. 반면 본인의 애인은 선생님이 시킨 부분만을 해 가되 밀도 있게 하고, 단 한 번도 밀리지 않는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다이어트도 원래 페이스를 오버하다가 실패한 거고, 공부가 잘 안되는 것도 처음엔 의욕이 솟구쳐서 열심히 하다가 중간에 지쳐서 그런 거였어. 포기하면 또 첫 파트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발전이 없는 거지.”
Y는 한순간 집중하고 마는 게 아니라, 본인의 애인처럼 길게 보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친구의 말에 내가 중요한 사실을 잊었다는 걸 깨달았다. 글쓰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이었다. 지난 4개월 동안도 여러 번 산을 넘으며 괴로웠지만, 동시에 넘치도록 행복했다. 잘 풀리지 않으면 포기하고 싶으면서도, 완성하고 나면 무한히 충만해졌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소개 글에 ‘천천히, 오래오래’라는 타이틀을 걸어놓을 정도로, 무언가를 즐기면서 꾸준히 하는 것을 미덕처럼 여겨온 나다. 매번 무언가에 실패할 때마다 그래도 글쓰기를 포기할 건 아니니까 괜찮다는 생각으로 버텨오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게는 잠깐 주목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통 즐기지 못한 것이다.
5. "이다음으로 가요." *
넷플릭스의 <승리한 실패자들>에서 피겨 선수 수리야 보날리는 말 했다. “한 때 반짝 호평을 받는 것과 꾸준히 오래 그 일을 즐기면서 하는 것 중 어떤 게 더 성공한 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보날리의 발언을 실행할 때가 온 것만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당장의 승리에만 매몰되지 않고 길게 보면서 천천히 걸어가려고 한다. 얼마 전 글이 잘 풀리지 않아 극심한 자괴감에 시달렸던 내게, 초등학생 때 야구부였다던 H가 위로를 건네 온 게 생각난다.
“야구로 따지면, 공을 세게 쥐어도, 약하게 쥐어도, 경기를 치르고는 있는 거잖아. 결국 어떻게 공을 던지든 ‘하고 있다’라는 사실은 똑같다고. 그게 중요한 거 아닐까?”
비록 지금은 공을 살살 잡고 있을지라도, 천천히, 오래도록 이 일을 하고 싶다. 다시 가라앉을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불타오르는 기분으로 강속구를 던지는 순간이 오리라 굳건히 믿으면서.
*아이유의 Epilogue 가사를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