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국립 화가 칼 라르손을 포함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79점 명작이 스웨덴-대한민국 수교 65주년을 기념하여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개최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보수적 예술계에 회의를 느낀 당대 젊은 예술가들이 기회의 땅 파리로 떠나 체득한 실험적인 기법과 북유럽 특유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접목된 작품들을 선보이며 눈길을 끌고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자연주의와 인상주의의 영향을 수용하여 스웨덴의 평온한 자연경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자국민들의 모습을 빛에 대한 연구를 적용한 기법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프리츠 타올로의 <노르웨이의 에렌 해변가에서>라는 제목의 이 작품에서는 빛에 대한 화가의 깊은 이해가 돋보이는데,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아래 놓인 산등성이를 그림자가 드리운 듯 짙게 표현하고 태풍을 대비하려는 듯 바쁘게 날아가는 새들의 행렬을 그려 넣어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한 반면, 구름이 갠 안쪽 하늘과 그 영향을 받은 오른쪽 하단 부분은 밝게 연출되어 곧 맑게 개일 하늘에 대한 희망을 암시하는 듯 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두 영역이 동떨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림 안에서 녹아 들어 마치 실제로 스웨덴 지방 어딘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는데, 당대 스웨덴 화가들은 야외에서 빛을 관찰하고 그리는 외광 회화를 적극 수용하여 이렇듯 섬세한 빛 표현이 담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 섹션에서 유독 인상 깊었던 휴고 심슨의 작품들이다. 그는 풍속화로 잘 알려진 화가답게 섬세한 화풍의 풍경화를 그려낸 후, 그 중앙에 항상 소녀를 그려 넣었다.
한껏 말아 올린 소매, 붉게 상기된 두 볼은 소녀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듯 한데, 그럼에도 소녀의 눈빛은 올곧게 관람객과 마주쳐오며 무언가 굳은 결의를 말하고자 하는 듯 보인다.
어쩐지 눈을 떼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다음 섹션에서 만나볼 수 있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브루노 릴리에포르스의 작품 몇 점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릴리에포르스는 주로 자연 속 야생동물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었는데, 야생에 대해 그가 지닌 전문적인 지식과 새로운 기법과 형식에 대한 도전이 어우러져 뛰어난 묘사가 돋보이는 매력적인 작품들을 완성할 수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릴리에포르스의 작품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다. 고양이의 잔 털 하나하나 세심한 묘사가 들어가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하고, 여러 색체의 꽃과 풀이 자라난 텃밭의 풍광에 대한 묘사도 굉장히 뛰어나다.
고양이가 밟고 움직인 듯 보이는 길에 난 풀들이 살짝 숨이 죽어 있는 듯한 세밀한 요소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어치들>이라는 제목의 해당 작품을 보면 그가 얼마나 공을 들여 야생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는지 알 수 있는데, 작품 속 잎들은 실제를 잘라 붙인 듯 색이 바랜 부분, 구멍이 뚫린 부분까지 자연 그대로의 계절감이 주는 요소를 놓치지 않았고, 어치의 깃털 표현 또한 매우 입체적이며 무언가를 보고 놀란 듯 동공이 커진 어치의 표정까지 찾아볼 수 있었다.
북유럽 화가들에게 일어난 혁신적인 변화는 여성 화가들의 작품으로까지 이어졌고, 전시의 후반부에서 접할 수 있었던 그녀들의 작품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히 안나 보베르크의 극지 풍경을 그린 <3월 저녁, 노르웨이에서의 습작>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보베르크는 스스로를 극지 탐험가이자 북극 화가로 칭하며 이와 같이 노르웨이 북부의 다양한 풍경을 담아냈다고 한다.
해당 작품은 이제 막 노을이 지려는 듯한 순간을 포착하여 하늘, 민트, 핑크 등 갖가지 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이 다양한 색체가 반영된 설산의 윗부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아름다운 풍광을 캔버스 위로 옮겨냈고, 어떻게 보면 황량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몇 안되는 베이스 캠프에 사선으로 드리운 따듯한 햇살을 묘사해 작품이 전체적으로 평안한 분위기를 머금을 수 있도록 연출했다는 점에서 빛 표현에 대한 그녀의 깊은 고민이 잘 느껴졌다.
그런가하면 엘리자베스 카이저의 <노르망디의 견진성사자>라는 제목의 해당 작품도 대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온통 흰색의 의복으로 감싸인 인물의 모습이 짙은 고동 빛의 배경과 반전되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고, 같은 흰색이지만 빛을 받는 부분에 따라 청색을 조금 더 띄는 흰색, 노란 끼를 조금 더 띄는 흰색으로 다르게 묘사하여 전체적인 의복의 모습이 한 덩어리가 아닌 세밀한 표현이 가능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뽑는다면 나는 한 치의 고민 없이 한나 파울리의 해당 작품을 꼽을 것이다.
그녀는 자녀를 양육하면서도 화가로서의 삶도 놓치지 않은 북유럽의 대표적인 여성 화가인데, 그런 그녀의 작품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빛 표현과 풍광 묘사를 담아내며 그녀의 비범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침 시간>이라는 제목의 해당 작품은 풍경화, 정물화, 초상화를 혼합한 듯 경계 없는 구성을 지니고 있는데, 어느 구성도 소홀히 묘사하지 않았음에도 이 3가지 구도가 그림 안에서 조화롭게 녹아 들었다는 점이 이 작품에서 첫 번째로 놀라운 점이다.
두 번째는 단연 식탁 위 정물들에 어릉거리는 빛 표현인데 강렬한 햇빛이 아마 식탁 위로 드리운 나뭇잎들 사이로 걸러져 이러한 빛 표현이 연출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세심한 관찰력과 그것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세심한 회화 스킬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