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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LP는 가난한 이의 미술 소장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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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올드 락에 대해서 잘 모른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 정도는 알지만, 핑크 플로이드는 처음 들어봤다. 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에 LP를 모으거나 사지는 않지만, LP 특유의 무드를 좋아하긴 한다. 영화는 오브리 파월과 스톰 소거슨이 만들었던 힙하고, 쿨하고, 근사하고, 현명한 힙노시스(Hipgnosis)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들은 바로 그 올드 락 전성 시기에서, LP 앨범 아트를 만든 디자인 스튜디오다. 자고로 앨범 아트라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그 자체로 본질은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노래라는 것이 선행되어야 있을 수 있는, 앨범을 더 잘 팔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은 앨범아트를 단순히 음악에 종속된 이미지에서 확장된, 대중 예술로서의 포토그래피 영역으로 기능하게 했다.

 

 

 

How I wish you were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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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들은 모두 친구였다. 혼자는 외롭다. 그리고 어렵다. 기회도 열정도 의지도 생기지 않기 쉽다. 힙노시스는 친구였던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커버를 자연스럽게 제작하며 기회를 얻었다. 힙노시스라는 이름 또한 핑크 플로이드의 리더였던 시드에게 얻었다.

 

내 대학 시절도 생각났다. 학부 시절 폭탄같은 과제량은 동기들과 매일 밤을 새게 만들었다. 줌이나 스카이프, 구글 미트로 플랫폼을 옮겨가며 우리는 쉼없이 떠들었다. 괴롭고 힘들고 졸리고 딱히 보상 없는 작업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낭만이니까.

 

 

 

폴 매카트니와의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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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할 때도, 찍을 때도 너무 재미있었다는 폴 매카트니의 'Band on the Run' 앨범 아트.

 

폴 매카트니는 매번 자기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그것을 구현해 달라고 했다. 스톰은 협조하지 않는다. 자기는 까라고 하면 까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스톰은 너무 재능이 뛰어나서 순수한 무례함을 유지하면서 살았나 보다. 내 생각에도 스톰은 파월 덕을 많이 봤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나. 핑크 플로이드도 힙노시스도 결국은 감정의 골이 깊어져 갈라졌다. 어떤 일이든, 좋은 동료의 필요성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시너지를 무시할 수 없다.

 

 

 

The Dark Side of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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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단지 교과서에 있는 프리즘의 이미지를 그대로 넣었을 뿐이다. 그리고 대히트를 쳤다. 처음 예대에 들어왔을 때, 교수님이 아이디어를 구상 과정에서 무조건 레퍼런스 이미지를 가져오라고 하셔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그냥 100% 내 뇌 속에서 나온 것만이 올바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모든 창작의 소스는 이미 르네상스 시대에 다 나왔다는 말이 있다. 사실 내가 진짜 창조했다고 믿는 것도 사실은 그동안 살면서 봐온 것들이 총망라되어 아이디어가 되는 거겠지.

 

과학적 현상은 그냥 현상이다. 구태여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이다.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이든, 그것을 적절한 장소에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생성된다.이 세상에 넘쳐나는 ‘레퍼런스’,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핸드폰 안에 갇혀버린 앨범 아트에 대해서


 

파월은 요즘은 앨범아트에 대해서 중요도가 떨어졌으며, 그저 작은 썸네일에 갇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미지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사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LP의 ‘정사각형 이미지’ 형식을 깨고 나온 앨범 아트는 다양한 패키지 디자인으로 변모했다. 앨범은 잡지가 되기도, 테이프가 되기도, 책이 되기도, 인형이 되기도, 심지어 돌고 돌아 LP가 되기도 한다.

 

분명 그것의 퀄리티가 분명 대단한데도, 왜 그들의 작업은 힙노시스의 작업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가? 아무리 디자이너가 나름의 예술성을 담고 작업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고도로 산업화된 필드 안에 소속되기 때문이다. 결국 그 결과물은 더 많이 팔기 위한, 상술을 포장하는 예쁜 쓰레기라는 이미지를 벗기기 힘들다. 이러한 측면에서 어떠한 면에서는 힙노시스는 시대를 잘 타고났다. 공들여 만든 단 한장의 이미지가 순수한 예술 작품으로서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in through the out door 


 

 

레드 제플린의 매니저 피터 그랜트가 말했다.

"너희가 만든 앨범 커버가 너무 비싸지고 있어. 난 레드 제플린을 갈색 종이봉투에 담아 팔 수도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In Through the Out Door의 표지를 그렇게 만들었고 그건 당연히 팔렸다.

 

- 오드리 파월

 


그래서 이 앨범은 정말로 종이 포장지로 가려져 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진짜 앨범 커버는 6개이다. 한 장면을 각각 다른 구도에서 찍었고, 포장을 뜯어야만 확인할 수 있는 랜덤 구성이다. 마치 아이돌 앨범의 포토카드 같기도 하다. 이 시대 레드 제플린의 팬들도 혹시 6개의 커버를 모으기 위해 여러 장을 샀을까?

 

 

 

힙노시스의 메시지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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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노시스의 아트는 언제나 아티스트의 음악을 가장 잘 표현하는 메시지를 담고 대중들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그것이 설령 아무 의미가 없는 암소 이미지일 뿐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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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노시스는 꼭 사진뿐만이 아니라 글을 통해서도 특별함을 전달한다. 이것 또한 XTC의 Go 2.라는 앨범 커버이다. 사실 영화에서는 딱 한 컷 나오고 특별히 조명되지는 않았는데, 힙노시스에 대해 따로 찾아보다가 재미있어서 저장했다. 자세히 읽으면 빠져드는 말장난이 재미있다.

 

 

 

ARE YOU NOR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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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은 그들이 직접 작품에 연관(engage)되는 과정을 통해서 같은 작품이어도 의미가 생긴다고 밝혔다.이제는 원본 사진 하나 없이도, 누구나 ai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같은 컨셉트의 사진이라도 요즘이라면 아마 큰 예산이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당시 기술의 미발전 측면에서의 당위성과 그들의 명성, 주어진 예산이 헛되게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 같은 목적을 가진 동료들과 그런 자신의 예술과 직접 연관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부러웠다. 힙노시스의 사연을 듣고 그들의 작업물을 보면, 결과 이상으로 그 과정에 집중하게 한다. 무엇보다 그들 자신이 가장 감명 깊을 것이다.

 

사실은 요새 많이 지쳐있었다. 내가 기존에 해왔던 작업이 별 성과 없는 일에 몰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욕심은 많은데, 기회비용을 생각하니 오히려 의지가 없어지기도 했다. 젊은 창작가들은 누구나 고민 속에 있다. 성공하는 정석 루트가 없기에 언제나 불안하다. 한국에서 열린 GV 인터뷰 중, 조언을 부탁한 젊은이에게 파월은 이렇게 답했다.


 

"하루에 열 시간 일하고. 사회 생활은 없다고 봐야죠. (no social life) 그렇게 10년쯤 하고 만약에 운이 좋다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건 비관적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실제가 그래요. (this is real) 누구도 당신의 문을 열어주지 않아요. 당신이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서 자신을 세일즈해야 해요."

 

 

약간 암울한 이야기지만, 원래 세상은 냉정하니까. 뭐든 그냥 되는 법은 없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열정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힙노시스는 타협하지 않는다. 포토샵이 없던 시절 그들은 단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서 그들은 온몸을 불사지르는 노력을 한다. 심지어 스턴트맨은 진짜로 자기 몸을 불사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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