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실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영화]

글 입력 2024.04.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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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기염을 토해내던 <파묘>가 3월 24일 고대하던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국내 오컬트 장르 영화 중에서는 첫 스코어라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러나 동시에 눈여겨볼 지점은 그러한 양적 성과와 별개로 관객, 평단의 호오가 엇갈리는 구간이 명확한 영화라는 점이다. 물론 가장 논란이 되는 건 다이묘 정령의 재현과 관계된 것이다. 다이묘 정령의 현현 전후로 <파묘>의 톤 앤 매너는 크게 굴절된다.

 

정령의 등장 이전의 서사를 1부, 이후의 서사를 2부로 범박하게 가른다면 1부와 2부에서 <파묘>가 미지의 존재를 형상화하는 방식은 대비된다. 1부에서 <파묘>가 친일파 귀신을 묘사하는 방식은 기존 오컬트 장르의 콘텐츠에서 접했던 것과 유사하다. 시각보다는 청각적 자극에 천착해 공포감을 조성했고 유리창, 거울에 비친 혼령의 불투명한 형상을 간접적으로 제시했다.

 

그에 반해 2부에서 영화는 다이묘 정령의 얼굴과 신체를 노골적으로 관객의 눈앞에 들이민다. 기실 이러한 기법은 그동안 여타 오컬트물에서 상상의 여백을 남기기 위해 내지는 오히려 관객의 몰입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기피해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파묘>는 그러한 위험 부담을 기꺼이 감수한 채 일종의 모험을 한 셈이다.

 

이러한 재현 방식의 간극으로 인해 부정적으로 평하는 관객들이 다수 있었다. 그러나 기실 영화 전반을 훑어보면 다이묘 정령의 재현 방식은 비록 그 수단에 있어 어설픈 면이 있다 하더라도 영화에서 돌출되는 지점이라기보다 영화의 메시지와 유기적으로 조응하는 주요 요소이다.

 

 

파묘.jpeg

 

 

먼저 언급할 단서는 무당 화림(김고은)이 미국행 비행기에서 승무원으로부터 일본인으로 오해를 받는 시퀀스다. 이는 이후 화림이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겸비했다는 정보를 제시하는 구간이기도 하지만 ‘보는 것(보이는 것)’이라는 감각의 한계,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구간이기도 하다.

 

이후 미국 대저택에 도착해 흐르는 화림의 보이스 오버 (“사람들은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만 믿는다”)는 더 명확한 단서다. 이 대사는 다이묘 정령을 퇴치한 이후 그에 의한 피해가 야생 곰의 습격으로 오보되는 뉴스 화면을 통해 입증된다. 절반 가량의 분량을 할애해 다이묘 정령의 존재를 현현하고 그와 사투하는 과정을 좇지만 결국 괴이한 참사의 원인은 야생 곰의 습격으로 쉽게 진단되고 납득 가능한 범주 안에서만 설명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장르 구분 상 오컬트 영화인 <파묘>와 어떻게 보면 가장 대척점에 놓여 있다고 할 만한 신작 영화 <댓글부대>도 결국은 유사한 테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주요 줄거리는 대기업 ‘만전’의 비리를 폭로했지만 오보 판명이 나 정직당한 사회부 기자 상진(손석구)이 온라인 여론 조작을 주도하는 팀 알렙의 제보를 받고 ‘만전’과의 연관성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줄거리만 접하면 기자가 정의감을 발휘해 대기업의 비리를 재보도 하는 데 성공하고 복직하는 플롯을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댓글 부대는 그러한 기대를 의도적으로 배반해가며 진행된다.

 

 

댓글부대.jpeg

 

 

전형적인 방식이지만 장르적 재미를 위해서는 선악의 대비가 뚜렷한 인물, 인과응보와 정의 구현의 결말이 익숙히 쓰인다. 물론 그에 더한 신선함을 추구하는 요즘 대중들에게는 진부한 플롯일 수 있지만, 그러한 요소가 다분히 반영된 <범죄도시> 시리즈가 흥행을 거두는 데는 분명한 효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댓글부대>는 상업영화로서는 다소 위험한 선택을 했다. 악인과 선인의 경계가 모호하고, 참과 거짓이 판 뒤집히듯 바뀌고, 결말부로 갈수록 진실로부터 유리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심지어는 상진의 최초 보도가 오보였던 것인지, 팀 알렙의 제보가 진실인 것인지, 그들의 말대로 거짓이 섞인 진실이라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문만 남긴 채 막을 내린다.

 

그러나 기실 그러한 불투명한 결말은 <댓글부대>의 중요한 성격이자 메시지다. <댓글부대>는 국내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러니까 실화 기반 픽션을 한 번 더 픽션화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댓글부대>는 의도적으로 해당 영화가 구체적인 인명, 지명을 제외하고 철저히 실화에 기반하고 있음을 텍스트로 주지한다. 즉 이러한 구조는 기사와 소설,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불분명한 시대에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이 진실인지보다 무엇을 진실로 만들고 택하는 것’임을 피력하는 하나의 설정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파묘>, <댓글부대>는 상이한 장르지만 유사한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대중성에 반하는 시도를 감행한 두 영화에 내비치는 부정적 평가는 어쩌면 두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 즉 쉽게 이해하고, 판단하고, 정의하고자 하는 심리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파묘>의 다이묘 정령 재현과 <댓글부대>의 결말은 대중적 지지를 얻지는 못했을지라도 영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유의미하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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