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품에서 꺼낸 생 - 이야기 미술관

책 '이야기 미술관' 리뷰
글 입력 2024.04.1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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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미술관에서 아주 많은 그림을 보고 돌아온 지 꽤 시간이 흘렀다. 그곳에 걸린 모든 그림이 아름다웠지만, 찍어 온 사진을 보지 않고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이었던 그림은 열 작품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이 현상을 기억력의 한계라고 진단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그림이라는 매체 자체의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그림은 눈앞에 현현할 때만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매체라고. 반 고흐가 렘브란트의 ‘유대인 신부'를 보고 했던 생각-다 말라 푸석푸석해진 빵 조각만을 먹으면서도 이 그림을 이 주만 마음껏 볼 수 있다면, 신께서 내 인생의 10년을 가져가셔도 좋다-을 그러니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166)


혹은 그렇게 많은 그림 중에서 끝내 기억에 남은 몇 장의 작품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그림 몇 장을 꺼내 볼 때 느끼는 행복감은 그림을 보고 있을 때와는 조금 다른 인상이다. 그건 그림을 보며 받았던 인상과 감상을 복기하는 기분에 가깝다. 그 기억에는 당시 내가 했던 생각이나 처했던 상황, 걱정과 고민이 모두 포함된다. 그림을 본다는 건 그만큼 현재와 소통하는 일이며 그렇기에 게을리하고 싶지 않다. 물론 직접 그림을 보는 것만큼의 생생한 경험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가능한 그림과 관련된 서적을 많이 보게 되는 이유이며, 책 ‘이야기 미술관'도 비슷한 동기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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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미술관’에서는 네 개의 방을 주제로 그림과 예술가를 소개한다. 하나의 방에는 4-5개의 작품이 담겨 있다. 방은 각각 ‘영감의 방: 감정이 넘실거리는 곳', ‘고독의 방: 모든 세상이 외로움으로 물들어 갈 때', ‘사랑의 방: 내 삶을 다시 피어나게 하는 힘', ‘영원의 방: 간절함이 마음에 닿으면'이라는 주제이다. 나는 이 분류와 설명을 좀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한 번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감'을 나는 ‘감정이 넘실거리는 곳'이라거나, ‘사랑'을 ‘내 삶을 다시 피어나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이기도, 영감이나 감정은 꽤 추상적인 단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류 기준이나 테마가 좀 더 구체적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읽는 그림'으로 작품을 봐야 하는 고전주의 그림들을 이해하기 위한 글 하나하나는 흥미롭고 명쾌하게 짜여 있다. 각 테마에서는 대표 그림 한 장과 그 그림에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정보를 소개한다. 예를 들면 작가의 감정이나 작가의 주변인에 관한 정보, 동시대 역사 사건에 관한 이야기들을. 대표작에 관련된 주변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누구인지, 오브제의 도상학적 의미는 무엇인지 하나하나 밝혀가는 글의 흐름은 최종적으로 앞에서 소개한 대표 그림 한 장을 향하고 있어 이해가 쉽다. 마치 미술관에 들어가 작품 앞에 잠시 멈춰 어떤 도슨트의 유려한 설명을 가까이 듣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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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하예즈, ‘입맞춤' 1859

 

 

“단순한 연인의 입맞춤 장면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동맹을 의미합니다. 남성의 붉은색 스타킹과 초록색 안감은 이미 이 시기에 사용되고 있던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고, 푸른색과 흰색으로 장식된 여성의 드레스는 프랑스 삼색기를 의미합니다.” (58-59)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그림 같은 경우, 위와 같은 정보를 알지 못하고 본다면 그림에 담긴 의미의 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겉보기엔 로맨틱한 장면처럼 보이는 작품의 이면에 당시의 시대상과 작가의 바람이 은유적으로 들어가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그림은 반드시 설명과 함께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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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1609∼1610

 

 

“카라바조는 자화상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품 속에도 자기 모습을 종종 집어넣었습니다. … 로마에서 교황과 추기경들의 사랑을 받으며, 예술가로서 화려한 삶을 살았던 젊은 날의 자기 모습은 다윗의 얼굴로, 살인죄를 저지르고 추악한 범죄자가 되어버린 자기 모습은 골리앗의 얼굴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109)


카라바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화나 성서에 기반하여 그림의 내용을 추측할 순 있겠지만, 어떤 작품은 화가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이야기를 한 번 더 해석하여 그림에 담아냈기 때문에, 이러한 그림을 볼 때는 화가가 이해한 방식으로 감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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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달과 까마귀'

 

 

“여전히 이 작품은 이중섭 화가의 죽음이 깔린 복선처럼 그려진 작품으로 보이나요? 아니면 가족과 함께하고픈 바람이 담긴 그림처럼 보이나요?” (97)


이중섭 그림에 있는 해설처럼, 작품은 관객에게 더 능동적인 해석을 요구할 때도 있다. 적절한 정보를 습득한 상태에서 관객은 자유롭게 자기만의 해석을 펼칠 수도 있다.


그림의 주제가 무엇이든 삶을 떠난 그림은 없다. 이 책은 그러한 작품을 보기 위한 편안한 가이드가 되어준다. 작품을 당시 시대 상황과 화가가 겪은 생에 관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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