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짧지만 치열한 삶을 살았던 - 뮤지컬 '브론테' [공연]

글 입력 2024.04.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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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뮤지컬 <브론테>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브론테.jpg

 

 

여자가 글을 쓰는 일 따윈 허락되지 않던 빅토리아 시대.

음울하고 외로운 요크셔의 황야에서 세 명의 놀라운 작가가 탄생했다.

샬럿, 에밀리, 그리고 앤 브론테.

 


지난 3월 4일, 2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브론테>의 재연이 막을 올렸다.


<제인 에어>의 저자 샬럿 브론테와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 그리고 <애그니스 그레이>의 저자 앤 브론테까지. 치열하게 글을 써 내려간 그들의 삶을 그려낸 뮤지컬 <브론테> 속 특별한 캐릭터성을 살펴보자.


극을 관람하며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은 샬럿, 에밀리, 앤, 세 사람이 너무나도 뚜렷한 개성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크기변환]샬럿 브론테.jpg

 

 

두 명의 언니를 일찍 여읜 후, 두 명의 동생을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게 된 샬럿은 맏언니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생계를 유지해야 할 방안에 대해 생각하는 모습도, 글쓰기를 시작한 후 정기적인 낭독회(그들은 그것을 ‘밤의 낭독회’라고 불렀다)를 통해 써야 할 글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모습도 말이다. 가끔은 막내인 앤만큼 활기차고 명랑한 모습을 보이기도 해서 여러 매력이 돋보이는 듯했다.


샬럿은 에밀리가 남몰래 쓰던 수첩 속 글들을 발견하고 동생들에게 공동 시집을 출간하자 제안한다. 만류하는 에밀리를 무릅쓰고 결국 그녀를 설득하는 것에 성공한 샬럿은 자신의 글을 쓰며 출판까지 담당했고, 동생들의 글도 살펴주며 부지런한 모습을 보였다.


 

온 가족 모여 살기엔 좁은 이 집

가난한 목사 아버지

여자가 먹고 살길은 결혼

아니면 가정교사

그러니 내가 글을 안 쓰고 배겨?

 

- [M02. 우리만의 놀이] 중

 

 

샬럿은 당대 여성들이 살아가야만 했던 틀(결혼, 가정교사와 같은)에 가장 회의적이었고, 그 틀을 벗어나고자 셋 중 가장 진취적으로 행동했다. 글쓰기를 통해 저런 ‘따분한 것들’로부터 벗어날 생각을 했던 것, 그리고 글 쓰는 것을 먹고 살 수단으로 생각했던 것 모두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좋았다. 그녀가 쓴 소설 <제인 에어>에는 ‘가정교사’, ‘남성과의 사랑’이라는 다소 전형적인 스토리가 등장하긴 하나, 이것은 제인 에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강인한 모습에 ‘곁들여지는 요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기변환]에밀리 브론테.jpg

 

 

에밀리는 그런 샬럿과 크게 갈등하는 인물이다.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에밀리가 쓰는 글의 장르가 그 갈등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안 그래도 세 자매에 관한 소문이 좋지 않은 편이었고 샬럿은 그것이 신경 쓰이던 참이었는데, 에밀리가 공동 출간하는 소설로 쓰겠답시고 내놓은 작품이 <폭풍의 언덕>이었으니 말이다.


에밀리는 샬럿과 달리 글쓰기를 돈벌이 수단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에밀리가 비밀스러운 수첩에 시를 끄적였던 것도, 그리고 그 시를 출간하길 원치 않았던 것도 다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라고 본다. (물론 여자가 글을 쓰는 것에 냉소적이었던 당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것도 있다) 누군가는 에밀리를 그저 ‘예민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겠으나, 그 말인즉슨 세 인물 중 가장 본인의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며, 섬세한 사람이라는 의미와 같다고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다.


에밀리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영감을 얻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작품 속에 본인의 예민하고도 섬세한 감정을 담아낸다.


 

작가는 지독한 병을 앓고 있어

죽어가면서도 포기 않고 글을 쓰지

아무도 그녀를 인정하지 않지만

어떤 누군가는 작가를 지지하지

 

- [M05. 써 내려가 PART. 1] 중

 


위 가사는 에밀리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당시 에밀리가 병을 얻어가면서까지 쓴 글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받았으나, 샬럿과 앤은 그녀의 글을 인정해 주었고(에밀리를 떠나보낸 후 샬럿은 그녀의 글을 인정하며 과거의 에밀리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편지를 남긴다), 시간이 흐른 뒤 우리도 그녀의 글을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크기변환]앤 브론테.jpg


 

은 끊임없이 부딪히는 두 언니 사이를 중재하는 막내답지 않은 막내였다. 능숙하게 둘 사이를 중재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일찍 철들게 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 소설은 없고

어떤 작가도 거짓된 얼굴을 하지는 않아

이건 정답이 없는 이야기

우린 서로를 믿어야만 하잖아

 

- [M09. 찢겨진 페이지처럼] 중

 


‘찢겨진 페이지처럼’은 샬럿과 에밀리가 가장 크게 충돌하는 지점의 넘버이다. 샬럿과 에밀리가 각자 추구하는 글의 장르가 너무나 달라 부딪히는 와중에 앤은 “이건 정답이 없는 이야기”라고 이야기해 보지만, 샬럿은 “늘 상처받기 싫어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가슴 속에 수많은 감정을 감춘다”며 앤을 타박한다.


어쩌면 샬럿이 앤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 같기도 하다. ‘중재’도 결국 한 발짝 뒤에서 하는 것일 뿐이고,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드러내지 않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걸출한 두 언니를 쉽사리 따라가지 못해 가라앉는 자신의 마음을 애써 감추고, 꿋꿋하게 글을 써나가며 갈등까지 관리하는 그 과정에서 앤이 느꼈을 복합적인 감정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뚜렷한 캐릭터성을 표현하기 위해 캐스팅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가 눈에 띈다. 샬럿, 에밀리, 앤을 맡은 배우들 모두 각자에게 맞는 옷을 입은 듯 해당 배역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첫째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샬럿, 어딘가 위태롭고 불안한 모습의 에밀리, 그리고 사랑스럽지만 생각이 깊은 앤의 모습이 모든 배우의 이미지에 잘 맞아서 어떤 페어로 보아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


*


극을 보면서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이 많았다. 특히 배우들의 가창력과 함께 등장하는 열정적인 라이브 밴드의 연주는 보고 듣는 내내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들었다. 앞서 언급했던 넘버들 중 하나인 [M09. 찢겨진 페이지처럼]과 그 뒤에 이어지는 [M10. 명과 암] 사이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는 밴드 트레이드 장면이 나온다. 연주를 통해 격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껴볼 수 있었고, 그만큼 긴 여운을 남겨주었다.


<메리 셸리>, <여기, 피화당>(공연 중)과 같은 여성 서사극이 꽤 있었지만, 모든 캐스트가 여성 배우인 작품은 흔치 않은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브론테>는 충분히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새까만 옷을 입고 뛰어놀며, 헝클어진 머리마저 사랑스러웠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브론테>를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다.

 

 

 

김지현.jpg

 

 

[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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