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마음속 명화가 탄생하는 순간 - 명화의 탄생, 그때 그사람

글 입력 2024.04.0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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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언가를 즐기기 위해서는, '그것이 발산하는 가치의 높이'와 '나의 시선'이 일치해야 한다.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한 마디로, 내가 그것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미술은 '즐기기 어려운' 무언가가 된다. 미술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네 시선대로 해석하고 느끼면 돼"라는 식의 조언은 보통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미술과 더욱 담을 쌓게 만든다.


보는 대로 느끼는 것. 물론 그것이 미술을 포함한 예술의 본질을 관통하는 감상이겠으나, 그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일정한 높이의 시선 없이 '그저 바라보는' 행위는 아무런 사유와 감동을 남기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아주 보통의 사람들을 위한 입문서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존재하는 듯한 미술 작품들과 눈을 맞추게 해주는, 적당한 높이의 사다리이다. 이 책은 명화에 담긴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풀어내며, 해당 작품을 그린 화가의 삶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뜻밖의 통찰과 위로를 건네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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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에서 만난 27명의 화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르네 마그리트이다. 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유쾌한 사업가였으나 방탕하고 무책임했다. 반대로 어머니는 성실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는데, 지나치게 섬세한 성향 탓에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마그리트의 아버지는 그와 장난치며 놀아주다가도 싸늘하게 돌변하기 일쑤였으며, 가난함과 풍족함을 정신없이 오가던 집안 형편 속에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총명하고 감수성 예민한 마그리트에게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마그리트는 어릴 때부터 신비한 것들에 이끌렸다.


마그리트는 어린 시절 공동묘지나 지하 납골당에서 뛰어놀곤 했는데, 그곳에서 목격한 화가의 모습은 그에게 신비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납골당이라는 죽음의 공간에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펼쳐진 대낮의 풍경, 그리고 이를 캔버스에 그려내는 화가. 이질적인 것들이 얽혀있던 그날의 장면은 어린 마그리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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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는 조르제트와 결혼한 뒤 닥치는 대로 일하며 돈을 벌었는데, 이 과정에서 경험한 상업 미술은 마그리트에게 새로운 창조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마그리트가 본격적으로 초현실주의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이 무렵인데, 그는 우연히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내 눈은 처음으로 사유(思惟)를 봤다."


마그리트는 낯익은 존재들을 재구성하여 보는 이의 허를 찌르고, 사람들을 생각에 빠지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는 '뼛속까지 초현실주의자'였고, < 위험에 처한 암살자 >와 < 길 잃은 기수 > 등의 초기작들은 뛰어난 표현력과 작품에 담긴 깊은 철학으로 화가들과 비평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그가 초현실주의보다 더 사랑했던 것은 자신의 아내, 조르제트였다. 그는 초현실주의자 모임에서 앙드레 브르통이 '십자가 목걸이'를 이유로 아내에게 모욕을 주자, 그녀의 손을 잡고 나와 해당 모임에서 탈퇴했다. 그리곤 말했다.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는 남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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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의 그림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을 만큼 특이하고 매혹적이다. < 향수 >라는 그의 작품에는 '사자'와 '날개를 접은 남자'가 한 공간에 등장하는데, 이 둘은 그곳에 함께 있을 만한 아무런 이유나 개연성이 없다. 마그리트는 우리가 살고 싶어 하는 진정한 삶이란 언제나 지금과 다른,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이 그림을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와 그로 인한 우울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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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유명한 작품인 < 이미지의 배반 >에는 담배 파이프와 함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데, 이 또한 심오한 뜻을 담고 있다. 파이프를 아무리 잘 그려도 이건 '파이프 그림'일 뿐 '파이프 자체'가 될 수 없으며, 말과 그림은 아무리 잘 쓰고 잘 그려봤자 대상의 본질 자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낯설고 비인간적이며 때로는 불편한 감정마저 불러일으키지만, 보는 이들을 강하게 끌어당겨 새로운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는 < 빛의 제국 >이라는 연작을 통해 "낮과 밤이 이렇게 동시에 존재한다는 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홀리게 한다. 나는 이런 힘을 시(詩)라고 부른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는데, 나는 이러한 의미에서 마그리트가 훌륭한 화가이자 시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은 깔끔하고 함축적이며, 모순적인 것들의 조화를 통해 일상적인 의식에 균열을 일으킨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미묘한 감정과 사유들을 '회화를 통해 가시화하는'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매혹적인 경험이었다.


뛰어난 화가는 자신의 깊은 내면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화폭에 담아내며, 이 세상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시선을 체험하기 위한 최소한의 높이로 우리를 안내하며, 비로소 미술 감상을 '즐거운 것'으로 느끼게 해준다. 내 마음속 진정한 명화는, 바로 그때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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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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