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던 세 자매의 용기 - 뮤지컬 브론테 [공연]

그렇게 그녀들은 이야기가 되었다.
글 입력 2024.03.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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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는 여자가 글을 쓰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여자에게 허락된 것은 오로지 가정교사 일과 결혼하고, 애를 낳고, 바느질하는 것. 그런데 이러한 시대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이야기를 써 내려간 세 자매가 있었다.


라이브 밴드의 연주와 함께 휘몰아치는 브론테 세 자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매 순간 소름이 돋았다. 무대 구성과 조명, 그림자 연출 역시 인상 깊었다. 공연이 끝난 후 기립박수에 동참하며 샬럿, 에밀리, 앤의 용기와 배우들의 열연에 감동한 나의 마음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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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글이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해 줄 거야.“


 

세 자매 모두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지만, 샬럿은 글을 쓰는 일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큰 인물이었다. 자신의 글로 책을 출판하여 성공하는 것. 샬럿에게는 그것이 곧 자유였다.


샬럿의 자유를 향한 욕망은 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면서 비록 가명이지만 세 자매가 함께 책을 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함께 쓴 시집은 겨우 두 권만 팔렸다. 그렇지만 샬럿은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소설을 내자면서 동생들을 설득하였다.


그런데 소설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상하고도 불길한 편지를 받고 처음으로 세 자매의 관계에 큰 균열이 생기고 만다. 편지는 샬럿에게 ‘오만한 이기심으로 모든 걸 잃게 될 거다.’라는 경고를 한다. 샬럿은 자신을 악담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불신하면서도 불안함을 느끼며 글을 쓰는 일에만 열중하였고, 편지의 예언을 믿으며 끝내 소설을 완성한 에밀리의 글을 비난한다.


결국 샬럿은 동생들과 갈라서고 집을 나온다. 그리고 편지의 예언과 정반대로 샬럿이 낸 소설 ‘제인 에어’가 큰 관심을 얻게 된다. 그토록 원하던 글로 인한 성공. 즉, 자유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 샬럿은 깨닫는다.


본인의 글이 많이 팔리는 것이 진정으로 원하던 성공과 자유가 아니었다고. 편지의 예언이 진실이었다고.

 

 

 

”비난이 쏟아져도 멈추지 마. 오직 너는 너를 믿어야 해.“


 

에밀리와 샬럿은 글쓰기에 대한 견해가 달랐다. 샬럿은 많이 팔리는 책으로 성공하길 바랐지만, 에밀리는 완벽한 글로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완벽만을 좇다 보니 본인의 글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기를 두려워했다. 항상 서랍 안에 숨겨두었다. 그렇게 숨어져 있던 에밀리의 글을 샬럿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도왔다.


하지만 처음으로 세상 밖에 선보인 시집이 인정받지 못하였고, 에밀리는 다시 두려움을 느끼고 숨어서 글을 쓰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데 때마침 에밀리에게 한 목소리가 들리고, 본인의 글이 시간이 흐르면 더욱더 빛나게 될 거라며 오직 너는 너를 믿어야 한다는 편지의 예언까지 도착한다.


편지의 예언에 힘을 얻어 에밀리는 소설을 쓰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끝내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던 완벽한 글을 완성하였지만, 샬럿에게 인정을 받기는커녕 혹평과 비난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샬럿이 떠나가고 에밀리가 낸 소설 ‘폭풍의 언덕’은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파괴적인 결말로 인해 악마가 쓴 소설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렇게 인정받지 못하고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된 에밀리는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죽기 직전까지 에밀리는 샬럿을 원망하지 않았고, 편지 덕분에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면서 한 마디를 남긴다.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은 우릴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그게 떠오른 거 있지. 내가 유일하게 끝맺지 못한 소설.“


 

막내인 앤은 막내 같지 않은 막내였다. “이것은 글에 대한 비판이며, 우리는 서로를 지지한다."라며 자주 부딪히는 샬럿과 에밀리를 중재하기 바쁘다. 밝은 성격의 소유자로 세 자매가 화목하게 지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앤은 겉으로만 보기엔 너무나 밝지만 큰 고민을 안고 있었다. 바로 샬럿, 에밀리의 글에 비해 본인의 글이 너무나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동시에 천재의 면모를 보이는 에밀리에게 질투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언니들이 소설을 완성할 때 앤은 소설을 끝맺지 못한다.


그런데 때마침 이상한 편지가 도착한다. 편지는 앤에게 오직 너만이 날 찾을 수 있다는 말을 전한다. 그 이상한 편지는 샬럿과 에밀리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켰고, 항상 둘의 관계를 잘 중재했던 앤이지만 이번 균열은 막을 수 없었다.


샬럿이 떠나가고 앤 역시 책을 내지만 샬럿처럼 큰 관심을 얻지도, 에밀리처럼 혹평을 받지도 못한다. 그저 무관심만이 남았다. 그리고 세 자매가 함께 글쓰기를 놀이처럼 즐기며 화목했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생을 마감한다.


앤 역시 에밀리처럼 샬럿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후회도 없어 보였다. 유일하게 끝맺지 못했던 소설을 비유가 없는 본인만의 방식으로 끝맺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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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글을 쓰는 스타일이 너무나도 달랐고 그로 인해 여러 갈등도 겪었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마음과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같았던 세 자매. 그녀들은 이야기가 되었다.

 

 

 

나와 닮은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닿길 바라며 


 

모든 장면이 명장면이었지만, 특히 기억 속에 맴도는 대사가 있다. 바로 ‘인정받길 원하면 세상에 들켜야만 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라는 말이다. 여자가 글을 쓰는 일이 허락되지 않던 시대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글쓰기에 미쳐 있던 그녀들이지만, 단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낼 수 있었을까. 아니다. 그녀들은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뛰어넘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기에 여성에 대한 억압을 이겨낼 수 있었다. 


세 자매의 입장에서 본다면 21세기는 빅토리아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인정은 받길 원하면서도 세상에 들켜야 하는 과정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즉, 여전히 자유를 갈망함에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자유를 꿈꾸며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던 브론테 세 자매의 용기 있는 삶은 이야기가 되었고, 그 이야기는 자유를 꿈꾸지만, 용기가 부족한 이들에게 닿아 자유를 향해 나아갈 힘을 준다. 


그렇기에 브론테의 결말을 비극적인 결말이라고만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들은 어떻게든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각자의 방식대로 펼쳐내며 이야기를 완성하였고, 비록 생을 마감한 이후이긴 하지만 필명이 아닌 본인들의 이름으로 작가로 기억되는 미래를 얻었으니까. 또 시대를 뛰어넘어 그들과 닮은 누군가에게 브론테의 이야기가 닿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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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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