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모두의 ‘사랑’에 관해 - 연극 올모스트 메인

글 입력 2024.03.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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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북부 메인주의 한 마을. 행정구역 정리가 되지 않은 탓에 정확한 지명도 없다. 주민들은 ‘이제 거의 다 됐다’며 그곳을 ‘올모스트’라 부른다.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오로라가 아름답다는 가상의 작은 마을 ‘올모스트’에서 펼쳐지는 각기 다른 여덟 가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비록 이웃 모두를 알고 지낼 만큼 작은 마을이지만, 그곳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사랑은 모두 다르다. 서툰 마음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이도, 사랑을 정리하는 이도, 사랑했던 이와 재회하려는 이도, 또 사랑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이도 있다. 은유로 가득한 이 연극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사랑의 상황들을 유머 있게 풀어내며,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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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love?



올모스트 메인의 한 세탁실. 다림질을 하던 여자의 다리미판에 우연히 의자에서 책을 읽던 남자가 맞게 된다. 선천적인 무통각증을 지니고 있던 남자는 괜찮다고, 본인은 고통을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자와의 키스 이후, 남자는 여자의 실수로 다시 맞게 된 다리미판이 이제는 너무 아프게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 이후, 남자는 그전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고통을 느낀다. 사랑이 아픔을 수반하는 고통스러운 행위라는 이야기다. 무통각증으로 매일 같이 ‘무서운 것’, ‘아픈 것’ 리스트를 작성하고 외우던 그는 ‘사랑’을 두 리스트 모두에 올려두어야 할 터다.


잊지 못한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올모스트 메인으로 달려온 여자. 그는 과거 그가 살았던 집에 찾아가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 고백하지만, 그곳에는 이제 다른 남자가 산다. 여자는 영원히 이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고, 떠나갈 줄 몰랐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 묵묵히 있어 주는 것은, 슬프게도 없다. 그건 사랑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청혼을 할 만큼 여자를 사랑했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어떤 답도 남겨 주지 않은 채 자신의 꿈을 찾아 남자를 떠났다. 시간이 흘러 여자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 줄 알았던 남자를 찾아가지만, 이제는 남자가 여자를 떠나버렸다.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에서 제일 절친한 남자 둘. 둘은 데이트에 실패한 한심한 자신을 한탄하며 시간을 보낸다. 한 남자가 묻는다. 도대체 왜 휴일에 나에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여자애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거야? 그리고 말한다. 생각하면 설레는 사람이 지금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내 눈앞에 있는 절친한 너라고. 그 말을 한 남자는 이내 힘이 풀려 쓰러지고, 일어나고, 다시 쓰러지기를 반복한다. 그의 마음을 외면하던 남자도 이내 힘이 풀려 쓰러진다. 둘은 그렇게 함께 쓰러진다.

 

재미있게도 이 이야기의 제목은 ‘빠졌어’다. 누군가에게 ‘빠진다’는 걸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알아차릴 때쯤에는, 이미 너무 많이 빠져버린 후다. 그렇게 서로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빠져 버려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 마음이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랑은 그렇게 눈치채지 못하게 찾아와, 상대에게 점점 스며들게 한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올모스트 메인까지 찾아온 여자. 그녀는 오로라 명당을 찾아 낯선 남자의 집 마당을 누비고 있다. 집주인인 남자는 그녀가 여기까지 찾아와 오로라를 보고 싶어 하는 이유를 듣는다. 그녀는 죽은 이의 영혼이 오로라에 박혀 있다는 이야길 듣고, 얼마 전 죽은 남편을 떠나보내기 위해 오로라를 보러 온 것이라고. 그녀는 남편의 외도로 갈기갈기 부서진 자신의 심장을 가방에 보관해 꼭 지니고 다닌다. 그녀는 심장이 부서진 이후, 생명 유지를 위해 펌프 역할에 불과한 인공 심장을 이식했다. 수리공인 남자는 그녀의 부서진 심장을 ‘고칠 수 있다’며 가져간다. 여자는 자신의 눈앞에 쏟아지는 오로라를 보며 남편을 애도한 후, 자신의 심장을 고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본다.

 

그녀는 사랑으로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녀의 고통은 ‘부서진 심장’으로 가시화되어 표현된다. 하지만 그 부서진 심장은 또 다른 이의 사랑으로 ‘고쳐질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랑은 심장이 부서진 듯한 고통을 우리에게 남겨주면서도, 또 다른 사랑으로 그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랑은 누구나 하니까


 

인간이 만들어낸 무수히 많은 이야기는 서로를 향한 ‘사랑’을 말한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가지각색의 사랑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랑을 보면서도 그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사랑이 지닌 공통의 속성을 풀어내는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다. 어떤 부가적인 이야기 없이,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오직 ‘사랑’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사랑은 아름답고 경이로워 모든 이야기의 원천과 영감이 되지만, 동시에 너무나 흔하고 당연해서 쉽게 지나쳐 버리는, 그래서 깊이 생각해보지 못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극이 진행되는 90분 동안 온전히 사랑만을 생각하고, 떠올릴 수 있게 한다. 사랑의 속성을 풀어낸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우리는 사랑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웃고, 등장인물에 공감하며, 때로는 지금 생각하면 창피한, 지금 생각해도 쓰라린 사랑의 기억을 곱씹어 본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각기 다른 형태의, 무수히 많은 사랑의 추억을 우리 모두가 지니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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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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