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겨우 한낱 '닭강정'일 뿐인데 [드라마/예능]

넷플릭스 드라마 「닭강정」 리뷰
글 입력 2024.03.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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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강정」은 넷플릭스 드라마화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공개됐을 때부터 대중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웹툰 '닭강정'을 원작으로 하였으며, 류승룡, 안재홍, 김유정 등 실력이 검증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 원작 웹툰의 경우 박지독 작가의 독창적인 그림체와 그만의 작품 세계가 반영되어 있었기에 이것이 어떤 식으로 영상화될지 궁금해하던 대중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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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강정」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어느 날 최선만(류승룡)과 고백중(안재홍)의 회사인 ‘모든 기계’로 의문의 기계가 배달된다. 택배 상자 안에는 당최 용도를 알 수 없는 보라색 기계가 들어있었다. 그날 최선만의 딸 최민아(김유정)가 기계에 관심을 보이고 기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안에서 민아는 백중이 떨어뜨린 닭강정을 보며 무심코 “닭강정”이라고 외치게 되고, 그녀는 한순간에 닭강정으로 변해버리게 된다. 이처럼 「닭강정」은 선만과 백중이 민아를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이다.

 

 

”겨우 닭강정 주제에…“

 

 

백정닭강정이 재료 소진으로 조기 마감했을 때 한 행인이 흘러가듯 내뱉는 말이다.

 

작품을 몰입해서 보다가도 가끔 혼란스러울 순간이 찾아온다. ‘저 닭강정이 정말 민아가 맞는 걸까? 어쩌면 민아는 아예 다른 차원으로 가 버렸고, 저것은 그냥 수많은 닭강정 중 하나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즈음엔 '왜 모두가 저 닭강정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에 목숨을 거는지, 그냥 저 닭강정이 민아라고 믿고 싶어서 맹목적으로 싸움을 하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까지 도달하게 된다.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다음 전개가 전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이게 과연 맞는 건가, 의문을 지닌 채 계속 보다 보면 어느새 머리를 살짝 비운 채로 작품을 감상 중인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과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킬 만큼 실력 있는 과학자가 종교를 맹신하는 것도, 외계인은 절대 인간을 해치지 않겠다는 것 등 인간이 닭강정이 되었다는 설정 외에도 이 작품에는 흥미로운 점들이 참 많다. 특히 다른 존재를 해치지 않는 외계인을 통해 작품은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려는 목적 하에 서로 공격하는 인간의 행태를 비꼰다. 그러나 이러한 외계인들마저도 결국에는 규율을 어기고 인간을 공격하게 된다. 20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능력을 사용하는 외계인을 그 누구도 쉽사리 비난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처음 지구에 정체불명의 기계를 가져온 것은 바로 외계인이다. 기계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다면, 민아처럼 무고하게 희생된 존재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양반닭강정네 사장이 닭을 마음대로 기계 안에 넣은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닭이 좀비새로 변해 그를 죽게 만든 것은 그의 악한 욕망이 ‘좀비새’라는 존재로 잉태된 것이자 민아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피해를 본 무고한 희생자들의 한을 대신 해소해주는 장치로 볼 수 있다. 닭이 환상성을 가진 존재로 변모한 것도 현실에서는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만한 마땅한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다. 닭강정처럼 자신의 의견조차 낼 수 없는 존재로 변했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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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서로 대치 중인 두 집단에게 하는 외계인의 대사에서 다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서로 싸우고, 그 과정에서 힘없는 자들만이 피해를 보는 것까지. 말도 안 되는 판타지 설정 속에서 우리는 지극히도 현실적인 우리 사회를 마주할 수 있다.

 

외계인, 회사원, 미치광이들끼리 싸우는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꽤나 길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느린 템포의 여유로운 음악과 함께 이어지는, 조금은 황당한 그들만의 전쟁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마치 ‘지금 너희가 하는 건 다 의미가 없는 일이야.’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서로 싸우기 바빠 정작 이 전쟁의 목표, 즉 ‘기계를 얻는 것’은 이미 잊혀진 지 오래다. 기계를 바로 옆에 두고도 바로 눈앞에 있는 적군에게 칼을 겨누기 바쁘다.

 

이 사실을 처음 깨달은 존재는 다름 아닌 외계인이다. 그 순간, 아마 그는 현재 이 상황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지 않았을까. 그가 외계인으로서의 규칙(외계인은 절대 인간을 공격해선 안 된다)을 어긴 순간, 느리게 흘러가던 음악이 한순간에 끊겨버린다. 지금까지 발생한 수많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은 외부의 힘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대부분이다. 주어진 선택지가 얼마 없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불가피한 상황들의 연속. 가장 핵심적인 순간에 자의로 상황을 무마하려고 나선 존재가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라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물론 그 또한 외계인만의 고유 능력(폭력성이 깃든 초인적인 힘)을 사용한 건 맞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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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는 다양한 비인간 존재들이 등장한다. 앞서 말했던 닭과 같은 동물을 비롯하여 외계인, 로봇도 그 범주에 속한다. 특히 제일 인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유태만의 반려 로봇, ‘썬더’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썬더는 자체적으로 공격을 해야겠다고 판단됐을 때만 상대방에게 전기를 쏜다. 처음 최선만과 고백중이 비밀 연구소에 갇혔을 때 썬더는 결박되어 있는 두 사람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민아를 해치려는 유태만을 공격한 것은 다름 아닌 썬더이다. 맹목적으로 주인의 명령만 따르는 것이 아닌, ‘자체적으로 공격을 해야 하는 상황을 판단한다는’ 설정이 이러한 선택에 개연성을 부여해준다. 조그만한 기계가 유태만보다 더 인간된 도리를 지니고 있다. 이성을 잃지 말아야 할 인간이 가장 비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그런 인간을 제지하는 게 로봇이라는 점은 재밌으면서도 씁쓸한 아이러니이다. 이처럼 「닭강정」은 비인간 캐릭터를 통해서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확실하게 꼬집어 준다.

 

유태만이 민아, 그러니까 닭강정을 공격하려 한 행위는 정말 잔인한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려는 의도로 납치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만, 인질로 잡힌 존재가 인간이 아닌 닭강정의 외형을 하고 있다는 게 보통의 인질극과 살짝 다를 뿐.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장면에서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인질(그런데 이를 ‘인질극’으로 볼 수 있는 것인가?)이 닭강정으로 변해버린 것일 뿐인데, 전혀 공포스럽지가 않았다. 오히려 웃음만 새어나올 뿐이었다. 외형만 바뀌었을 뿐 그 닭강정은 분명 민아인데도 말이다. 자꾸만 본질을 망각한 채 무의식중에 외형만을 가지고 판단하려 하던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했다.

 

작품의 결말은 꽤나 인상적이다. 남들에게 무시 받던 백중의 노란바지는 5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사회의 주류로 인정받게 된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싱어송라이터 ‘옐로 팬츠’가 되었다. 사람들은 노란 바지를 입고, 처음 보는 낯선 사람과 ‘고백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

 

선만은 자신의 딸이 닭강정으로 변하는 사건을 겪고 난 후 회사를 떠나 자연에서 살게 된다. 선만은 태초 인간이 탄생한 곳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이는 지금껏 인류의 과학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기계를 두고 벌인 전쟁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선택이라 볼 수 있다. ‘모든 기계’는 직원이 세 명뿐이었던 작은 회사에서 대기업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내게 되었고, 그중 김환동은 발명품 만드는 데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5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기 전, ‘모든 기계’ 직원 세 명이 모여 마지막으로 회식을 하는 장면이 있다. 백정닭강정에서 닭강정을 집어 먹는 최선만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지만, 그들은 이내 다시 허무맹랑한 농담을 주고받게 된다. 예전처럼 다시 웃을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닭강정을 먹는다.

 

 

 

이병헌 감독 특유의 연출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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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감독은 대표작 영화 「극한직업」부터 「드림」, 「스물」까지 오래전부터 본인만의 특별한 코미디 장르 세계를 구축해 오던 이다. 「닭강정」은 그런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 취향이 한껏 드러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작품의 초반부터 연이어 휘몰아치는 웃음 포인트가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매회를 거듭하면 할수록 이런 요소에 웃음 장벽을 허무는 시청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고백중과 그의 전 애인인 홍차가 헤어지게 된 배경, 백정닭강정 직원(외계인)들이 인간을 위협하기 위해 하는 행위 등 다소 병맛스럽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중독성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 취향은 호불호가 나뉜다는 평을 받지만, 그만큼 탄탄한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이병헌 감독의 연출 파워는 「닭강정」이라는 작품 특유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더욱 독보적인 콘셉트를 만들어냈다.

 

 

 

그저 한낱 닭강정일 뿐인데


 

웃음 포인트로 넣은 대사 사이마다 원작자의 가치관과 철학이 녹아있다. 작품을 감상하여 전개가 흘러가는 대로 가볍게 웃다가도 어느 순간 진지하게 고찰하는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인간의 존재론적인 고민을 해 보다가도 그 변화의 끝이 한낱 ‘닭강정 한 조각’이라고 생각하면 순간 무기력해진다.

 

 

“인생은 그냥 소풍 같은 거야. 장기자랑 좀 하다가 가는 거지. 한낱 지구에 떠도는 먼지 주제에.“

 

 

그러게. 닭강정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도 우주 크기에 비하면 한낱 먼지일 뿐인데, 뭘 그렇게 서로 아등바등 목숨 걸고 싸우는 건지. 「닭강정」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저변에는 동시대성이 짙게 깔려있다. 그저 작은 닭강정 한 조각으로 시작한 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존재론적인 고찰로 확장된다. 자, 마무리하기 전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독자에게 질문한다.

 

“닭강정으로 5일을 사는 게 힘들까, 인간으로 50년을 사는 게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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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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