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석파정 서울미술관 기행문 [공간]

관람의 끝에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다
글 입력 2024.03.2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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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부터 딱 두 달 전인 1월 21일, 나는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부암동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에 다녀왔다. 그 날 나는 서울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가진 미학에 큰 영감을 받았다. 그 경험을 글로 기록해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두 달이 지난 지금 그 기록을 다시금 바깥으로 꺼내어 이 글을 보게 될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렇게 우리가 공유한 공통 감각은 서로를 모르는 우리의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


이어지는 글은 그 기록을 한 번 더 다듬어 여러분께 공유하는 글임을 알린다.

 

*

 

서울미술관을 관람한 일은 내게 기행문(紀行文)을 떠올리게 했다. 기행문은 문학용어 중 하나로 여행을 통해 얻은 체험이나 감상을 중심으로 기술한 문학을 일컫는다. 기행문에서 화자는 긴 여정 끝에 마주한 장면에서 감탄하고는 한다.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에 감탄사를 내뱉거나, 눈물을 토해내면서 말이다. 즉 여정의 끝은 카타르시스, 바로 ‘승화’다. 만약 기행에서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라면, 나의 서울미술관 방문기도 가히 기행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나는 서울미술관에서 기행문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을까? 4층으로 이루어진 미술관, 전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높아지는 층처럼 감상자의 감정도 고조된다. 관람의 마지막인 석파정(石坡亭). 감상하는 대상이 인공물에서 자연물로 전환될 때 궁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얻게 되는 그야말로 절정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마치 정말 미술관을 거닐고 있는 것처럼 느끼길 바란다. 문학과 여행, 공간과 사색의 관점을 장착하고 서울미술관으로의 여정을 다시금 돌아보도록 한다.

 

 

 

기(起) : 서울미술관 도착부터 입장까지


 

2024년 1월 21일, 석파정 서울미술관으로 향하는 길. 광역버스에서 내려 마지막으로 1020버스로 갈아타고 바라본 창 밖은 꽤나 한적하다. 겨울 얼음이 서린 산과 길뿐이다. 그러나 버스 안은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남은 정거장이라고는 서울미술관 앞 하나뿐이니 이들 중 대다수가 서울 미술관의 방문객일 것이다. 

 

서울미술관은 2012년 개관한 이래 현대미술에 관한 다양한 기획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오늘 내가 서울미술관으로 향하는 이유도 일본의 유명 그래픽 디자이너인 요시다 유니의 개인전 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버스에서 내려 마주한 서울미술관의 모습은 생각보다 아담하고 소박한 모습이었지만 특유의 멋이 있었다. 친절한 안내원을 따라 입장권을 수령할 수 있는 2층으로 향했다. 안내데스크 직원 분께서 전시 관련 주의사항을 짧게 브리핑한 후 친절히 입장권을 발권해 주셨다.

 

 

 

승(承) : 관람, 계단을 따라


 

서울미술관은 총 4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층과 3층은 전시장이고, 4층은 석파정으로 가는 출구로 이어진다. 관람객은 1층 입구를 지나 2층부터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 내부의 경우 크게는 입구에서 출구라는 한 방향성을 가지긴 하나 작게는 여러 갈래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또한 천장이 낮지 않아 개방감이 있다. 

 

전시를 보다 보니 대학교 1학년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듣게 된 첫 전공수업이 생각났다. 현대미술 수업에서 요시다 유니의 작품을 알게 되고 집에 도착해서는 하루 종일 그녀의 작품을 찾아보던 기억이 난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전시를 감상하다 보니 순식간에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전시장이 사용자에게 복잡하지 않게 디자인되어, 거꾸로 돌아가며 특히 좋았던 작품들을 다시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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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내부에 걸린 요시다 유니의 작품.

 

 

수평적 공간을 걸으며 감정이 충만히 차올랐다면, 이젠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를 차례다. 내가 방문했던 1월에는 3층에서 서울미술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상설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전시를 보는 동안 느끼는 수평적 공간, 그리고 2층부터 4층까지 이어지는 상승구조의 반복,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의 고조는 그야말로 승(承)이다.

 

 

 

전(轉) : 석파정과 너럭바위


 

미술관 내부가 승이었다면 외부는 전(轉)이다.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지나면 소담스럽고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석파정(石坡亭)이 있다.

 

와! 나는 절로 탄성을 터뜨렸다. 한껏 고조된 감상자의 감정은 감상 대상이 인공물에서 자연물로 전환되고, 감상자를 둘러싼 공간이 실내에서 실외로 순식간에 전환되며 궁극적인 카타르시스로 이어진다. 입구에서 출구라는, 정해진 동선이 존재하는 전시장 내부와 달리 자유롭게 석파정을 누비다 보면 감정이 정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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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의 모습. 직접 촬영

 

 

너럭바위에서 연극의 클라이맥스, 서사의 절정은 이어진다. 키의 여섯 배는 넘어 보이는 커다란 바위를 마주하고 나면 끝없는 해방감이 찾아온다. 마침내 감정은 정화를 거쳐 해방감으로 승화된다. 서울미술관 홈페이지와 팜플렛을 들여다보면 내가 이런 감정을 누리게 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감상자가 창조자가 되는 미술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미술관'. 서울미술관에서 감상자는 미술관이 주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창적으로 자신만의 여정을 만들고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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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럭바위의 모습. 직접 촬영

 

 

 

결(結) : 여정을 마치며


 

관람이 끝나는 순간도 결이라 할 수 있지만, 내게는 이 기행문을 완성하는 순간이 완전한 끝일 것이다.

 

서울미술관 관람은 감상자가 주체가 되는 공간, 몸으로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주는 힘과 그런 공간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여정이었다. 전시의 시작과 끝 모두에 내가 존재하며, 전시의 안과 밖은 감상자인 나로 인해 연결된다.

 

우리는 메타버스, 온라인, 비대면의 고리를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변모하는 창상세계(滄桑世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실물 공간 안에서 미적 체험을 유도하는 미술관은 그 힘을 발한다. 어쩌면 미술관이 감상자에게 주어야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작품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니라, 작품 사이를 활보하며 만들어지는 기억, 미술관의 공간을 이동하며 생기는 감정의 고조, 즉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감각일지도 모른다. 감상자가 창조자가 되는 곳. 서울미술관의 미래가 ‘두근대는 마음으로’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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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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