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H마트에서 울다 - 우리는 이다지도 다르지만 이다지도 서로를 사랑한 걸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3.0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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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 마트에만 가면 운다


 

H 마트에서 울다,는 인디 팝 밴드 저패니즈 브랙퍼스트의 가수인 미셸 자우너의 에세이다. 그녀의 엄마가 암으로 죽고 난 후의 심경부터 시작해 유년기 시절 엄마와의 관계 및 이후의 궤적 등에 대해 거슬러 올라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야 했던 한국인 엄마의 삶,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자우너 자신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더불어 한국 음식에 대한 맛깔난 묘사가 나오면서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 마트에만 가면 운다. H 마트는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슈퍼마켓 체인이다.(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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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지의 독립서점에서 이 책의 첫 문장을 본 순간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 사실 광화문 교보문고 같은 큰 서점에서도 이 책의 표지를 본 적이 있었고, 굳이 이 책이 아니어도 독립서점에서만 살 수 있는 여러 독립 출판물들도 많았건만, 이 책을 꼭 사고 싶었다. 나 역시 혼자서 마트에만 가면 때론 오묘한 감정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고교 3년 동안 정말 죽은 듯 공부만 하고 살았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타고나기를 예민한 성정이 합쳐져 친구관계도 무엇도 하지 않은 채 공부만 하며 하루에 5시간씩 자는 생활을 했다. 얼굴이 사나워졌고, 이상하게 항상 쫓기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그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엄마 때문이었다. 공부하는 내 곁에서 책상에 앉아 자신의 일을 하면서 묵묵히 나를 응원해 주고 따뜻하고 영양가 있는 집밥을 챙겨주셨다.

 

지금도 엄마랑 그때를 회상하며 나누는 이야기가 있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대형마트가 있었는데, 아빠가 일하는 기업의 다른 지점이어서 어릴적 부터 친밀한 브랜드의 마트이기도 했다. 엄마와 나는 저녁을 둘이서 도란도란 차려먹고는, 소화도 시키고 머리도 식혀야 한다며 꼭 마트를 가서 30분씩 죽 돌고는 했다. 식품 코너에서 내일 아침에 내가 먹을 콩나물과 오징어를 사기도 하고 저녁 세일을 하는 마트용 초밥이나 빵을 사서 야식으로 먹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누구나 다 힘들었겠지만 나에게 있어 고교 3년 시절은 고등학교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몸서리쳐지게 만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마트를 갔던 기억만큼은 소중하게 남아있다.

 

'그러다가 건조식품 코너에서 훌쩍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P.10)'

 

H 마트에서 엄마의 음식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들을 보며 엄마의 부재를 실감하는 자우너. 그녀에게 H 마트는 추억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나 역시 홀로 서울에 상경해 마트에 혼자 갈 때면 더 이상 여유롭게 마트를 구경하지 않는다. 혼자 오는 마트는 더 이상 편안한 곳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묘사하고 나니 엄마와 나의 관계가 아주 이상적이고 화목하기만 한, 그리워하는 관계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자우너도 그랬다. 그녀와 엄마는 아주 다른 사람이었고, 그 둘의 관계는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끔찍하기도 했다.

 

 

 

2. 내가 뭘 깨달았는지 알아? 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거야


 

'엄마의 완벽함은 짜증이 날 정도였고, 그 빈틈없음은 내겐 완전히 수수께끼였다. 코트와 스웨터에는 보풀 하나 없었고, 에나멜 구두에는 긁힌 자국 하나 없었다. 나는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조차 망가뜨리거나 느닷없이 잃어버리는 통에 만날 혼나기 바빴는데 말이다. (P.37)'

 

자우너의 엄마는 굉장히 통제적인 성격이었던 것 같다. 강박적으로 집 안을 자신만의 왕국 삼아 깔끔하게 관리하고, 밤이면 밤마다 각종 기능성 화장품과 미용 기구들을 이용해 외모도 열심히 가꾸는 모습이 묘사된다. 그러나 자우너는 일촉즉발의 사춘기 10대 소녀답게 갈수록 늘어나는 여드름에 짜증을 내면서도 인스턴트를 마음껏 먹고 멋있다고 생각되는 주렁주렁한 옷들을 입는다. 알 수 없는 우울함에 잠식되어 학업을 손에 놓고 엄마에게 마구 반항한다.

 

'“내가 뭘 깨달았는지 알아? 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거야.” ..내가 무슨 다른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거나, 저녁식사에 초대한 친구가 데리고 나타난 특이한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듯이 엄마 역시 여태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세대와 문화와 언어가 갈라놓은 단층선 반대편에서 각각 던져져 기준점도 없이 죽도록 헤매기만 했을 뿐 서로가 서로의 기대를 생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P. 284)'

 

자우너와 그녀의 엄마처럼, 나와 나의 엄마도 매우 닮은 듯하면서도 매우 다른 사람이었다. 분명 엄마 덕분에 내가 예민한 성정에 비해 안정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항상 그 생활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엄마 역시 자우너의 엄마처럼 통제적인 성격이다. 매일매일 집을 반짝반짝하게 치우고 시시덕거리면서 타인과 노는 것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일상적인 스몰 토크를 시작하면 항상 교훈적이고 웅변적인 말들로 마무리되곤 했다. 나의 예민한 성격에 상경을 해서 혼자 사는 것을 걱정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나까지 통제하고 나를 규정짓고자 한다는 생각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19살 겨울. 좋은 대학의 입학 통지를 받았고 서울에 상경을 했다. 막 미칠듯한 자유 같은 건 없었다. 시간을 알차게 쓰는 법도 몰랐고 오랜만에 하는 인간관계를 즐기면서도 건강하게 나를 지켜가며 즐기는 법도 잘 몰랐다. 그 와중에 엄마에게는 연락을 확 줄이기 시작했다. 의식적인 행동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엄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다,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에 나온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었어도 우린 충분히 다른 사람이었는데. 엄마는 나처럼 예민했지만 나보다 덜 감상적이었고 더 예술적이었으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미처 몰랐다. 엄마는 말했었다.

 

'20살이 되고 어른이 되면 당연히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는 게 맞지. 그렇지만 그 과정이 서서히 이뤄져야 하는 건데 너무 한 번에 끊어내려고 하는 것 같아서 슬프다.' 라고. 그러나 그 말을 들은 21살의 나는 그냥 짜증이 났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던 거다. 자우너에게도, 나에게도.

 

 

 

3. 엄마는 내가 딱 이렇게 살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느라 평생토록 안간힘을 써왔다.


 

사람은 정말이지 다르다. 나 스스로 조차 이해가 안 되는데 이토록 다른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을 갈수록 배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말 어려운 것은 사람마다 사랑의 방식조차도 참 다르다는 사실이다.


'나는 엄마가 다 쓰러져가는 우리 집에 들어오는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엄마가 우리 집의 누추함을 조목조목 집어내어 비판하거나 내가 해고됐을 때 그랬듯 신랄하기 짝이 없는 직언을 날리면 받아들일 준비를 하면서. 하지만 엄마는 일언반구 평가의 말도 없이 그냥 부엌으로 갔다... 엄마는 내가 딱 이렇게 살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느라 평생토록 안간힘을 써왔다. 그랬던 엄마가 지금은 그냥 미소 띤 얼굴로 부엌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것이다. 파를 썰고, 믹싱 볼에 사이다와 간장을 콸콸 붓고, 손가락으로 콕 찍어 맛을 보면서. (P.82)'

 

자우너는 일부러 대학교를 아주 먼 곳으로 진학한다. 통제적인 엄마, 좁은 소도시에서 벗어나 음악을 하고 예술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지독했다. 틈새 사이로 쥐의 시체가 썩고, 공들여 고른 가구 대신 대충 주워온 합판을 테이블로 쓰며 무절제한 생활을 반복했다. 예술에 가까워지기는커녕 자칭 예술가,라고 말하는 부랑아의 삶만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딸의 집에 찾아간 엄마는 예상 외로 딸의 그런 생활에 대해서 평가하고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따뜻한 밥을 차려주는 데 집중할 뿐이다.

 

방학이 끝나고 나면 엄마는 항상 서울로 같이 상경해서 내 자취방을 다시 치우고 인테리어를 하며 재정비를 해주곤 한다. 처음 엄마가 자취방에 왔을 때의 풍경이란. 나는 항상 생각이 많고 예민하지만 손끝이 야무진 스타일은 아니다. 거기다 귀찮음도 많이 타서 집안일을 야무지게 처리하지 못하고 그게 오히려 사람을 또 무기력하게 만들곤 했다. 마구 구겨져있는 옷들과 방바닥에 날리는 먼지와 머리카락, 침대 밑에 굴러들어간 먼지 투성이 화장품들.. 하지만 자우너의 엄마처럼 나의 엄마도 그것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혼자 처음 살면 다 이런 거야. 엄마가 맨날 치우는 거 거들기나 했지 혼자 치워본 적이 없으니까. 원래 다 이런 거야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화장실 청소를 해주고 촌스러운 창문을 가릴 수 있도록 만들어 온 꽃무늬 커튼을 달아주고 미리 배송시켜둔 수납장을 척척 설치하며 사람다운 집을 만들어주곤 서둘러 엄마는 본가로 돌아갔다.

 

이번 겨울방학은 나에게 있어 힘든 시간이었다. 혼자서 계절학기를 들으며 추운 겨울 한 달을 서울에서 보냈고, 건강하지 않았던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한 학기 동안 또 질서를 잃어버린 자취방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곤 했다. 객관적으로 나에게 이렇다 할 시련은 없었다. 성적도 잘 나왔고 나를 응원해 주는 좋은 친구도 많았으며 집은 더럽게 관리해도 조금씩 예뻐지는 법을 익히며 착실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자우너가 보냈던 이유 없는 우울함으로 잠식되었던 십 대 시절처럼, 공부하느라 방황할 시간도 없었던 내 십 대 시절을 채우기라도 작정한 듯 틈만 나면 눈물이 나왔다. 서울의 겨울은 눈이 너무 자주 내렸고 항상 하늘이 침침했으며 사람들은 무뚝뚝했다. 학기 중에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충전했는데 완전히 혼자 남겨진 서울은 나에게 우울감과 무력감만 주는 것 같았다.

 

“울지 말고 집으로 내려와. 엄마랑 같이 밥도 먹고 운동도 다니고 책도 많이 읽고 하자. 서서히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을 익히면 되는거야.”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다시 본가로 내려갔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말했다. '너는 나랑 달리 사람을 좋아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이성적으로 생각은 잘 못하지만 그만큼 먼저 손 내밀줄도 아는 사람이지. 너 같은 사람이 혼자 있을 때 시간을 잘 보내는 법을 알면 그게 너의 엄청난 강점이 될 거야',라고.

 

'엄마는 부르르 떨면서 속삭였다. 널 편안하게 해 줄 수만 있다면 엄마는 어떤 고통도 감수할 거라고. 그게 바로 상대가 너를 진짜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그 부츠가 떠올랐다. 내가 발이 까지지 않고 편안하게 신을 수 있도록 엄마가 미리 신어 길들여 놓은 부츠가.(P.149)'

 

내가 나름의 인생의 암흑 속에서 구르고 있을 때야 엄마의 사랑 방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예민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정을 알고 걱정하면서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 엄마도 역시나 예민하고 힘든 젊은 시절을 보냈기에 그것을 겪게 하고 싶지 않은, 그리고 겪어도 보다 쉽게 헤쳐나갈 수 있는 마음을 키우게 하고픈 마음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엄마와 나는 정말 다르지만 사랑 속에서 나의 다름을 이미 인정받고 있었음을 나는 깨달았다.

 

 

 

4. 항상 10퍼센트는 남겨두어라. 너 자신이 언제든 기댈 곳이 있도록.


 

'엄마가 일찌감치 나에게 가르쳤던 것 중에 지금 생각나는 말은 이런 거다. “너의 10퍼센트는 따로 남겨두어라.” 누군가를 아무리 깊이 사랑하더라도, 혹은 깊이 사랑받는다고 믿더라도 절대 네 전부를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 항상 10퍼센트는 남겨두어라. 너 자신이 언제든 기댈 수 있도록.” (P.35)'

 

자우너는 엄마가 그토록 강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자문한다. 갑작스럽게 대장암이 발견되어 투병을 하는 상황 속에서도 감상적이지 않고, 남편에 대해서도 '아시아 여자랑 재혼하겠지'라고 담담히 말하면서 자우너를 오히려 당황하게 한다. 그건 어쩌면 젊은 나이에 이민을 와 이민자로서의 삶과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아내면서 체득한 강함이 아니었을까.

 

자우너의 엄마는 항상 너 스스로를 위해 10퍼센트를 남겨두라고 말했다. 그리고 딸에게도 때론 보여주지 않은 10퍼센트가 있었다고 자우너는 말한다. 그 10퍼센트를 통해 스스로를 지켜낸 그녀의 엄마. 그랬기에 죽는 순간까지도 무너지지 않고 자우너에게 안심을 시켜줄 수 있는 엄마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

 

겨울은 끝이 났고 3월 봄이 시작되었다. 많은 일이 있었던 겨울을 뒤로하고 엄마와 다시 서울에 올라왔다. 예전보다는 그래도 깨끗한 집이었지만 아직도 치울 게 너무 많았다.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던 이불 세탁을 해오고, 커튼을 다시 달고 벽에는 예쁜 패브릭도 달았다.

 

저녁으로 포장해 온 피자와 맥주를 먹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우리 딸 대단하네. 혼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잘 생활하고 있네”라고 엄마는 말했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가 나였다면 훨씬 야무지게 인생을 즐기면서 잘 살았을 것 같다고. 혼자서 무기력하게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니라 인테리어도 하고 밥도 혼자서 차려먹고 문화생활도 즐기면서 잘 살았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도 20대 때는 힘들었다고 했다. 행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힘든 유년기를 보냈고,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놓쳐버린 것만 같았다고 했다고 고백했다. 좋은 가정을 이루고 싶었는데 그 역시 쉽지 않았다. '엄마는 그렇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내릴 수 없는 기차에 탔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거기서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아보자,라고 생각했지. 넌 하지만 아니야. 아직 내릴 수 있는 기차에 탔으니까 자유롭게 스스로의 삶을 살아봐.'라고 말했다.

 

엄마가 힘든 청춘을 보낸 것은 알았지만 자세하게 들은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 엄마도 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10퍼센트가 있었다. 아마 지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10퍼센트를 통해 엄마는 스스로의 삶을 지탱하고 다시 나를 사랑해 줄 힘을 얻고 있었다. 자우너의 엄마와 나의 엄마는 그렇게 강한 엄마인 것이다.

 

자우너의 엄마는 암투병을 하다 죽는다. 극적인 회복도 없이 고통스럽게 치료를 받다가 사그라들듯 죽었다. 자우너와 엄마는 아직 풀어야 할 대화와 감정이 많은데 한순간에 뚝 그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엄마가 죽은 이후 자우너는 갑자기 음악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이 'H마트에서 울다'를 연재하면서 큰 관심을 받는다. 그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엄마가 신의 목이라도 졸라서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요구했을 게 틀림없다. 하필 우리 모녀가 사이가 막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 신이라면, 절대로 내 몽상이 실현되게 할리가 없을 테니까.(P.388)'

 

'연인'을 집필한 프랑스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한 인간의 존재 속에서 엄마란 그가 만난 사람들 중에 결단코, 가장 이상하고 예측이 불가하며 파악되지 않는 사람일 거예요.”

 

자우너와 엄마는 오랫동안 좋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그녀가 말한 것 처럼 엄마가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리면서 만신창이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결국 이 책을 쓰면서 그녀는 다시 한번 그녀의 엄마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서로에게 있어 가장 이상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했으니까, 엄청나게.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엄마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했고 나와 정말 다른 엄마라는 사람의 삶에 대해 조금은 더 가까워 진 것 같다고 느낀다. 우리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다름으로 인해 생겼던 과거의 슬픔들이 어쩌면 다른 형태의 사랑의 결과일 수 있었겠다는, 그리고 그 사랑이 없었다면 더한 슬픔과 고통이 있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슬픔의 이름표를 애정으로 바꿔 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표를 바꿔단다고 큰 인생의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의 나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보다 더 밝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2014년 자우너의 엄마가 죽은 후로 10년이 흘렀다. 자우너 역시 그녀의 과거 슬픔을 이 책을 집필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현재 그녀는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라는 그룹에서 남편과 밴드 동료들과 함께 월드 투어를 다니며 한국에도 공연을 오는 삶을 살고있다. 그녀가 이제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집밥을 차려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오늘의 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김정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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