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무-인간의 삶을 꿈꾸다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글 입력 2024.03.04 00: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무가 되고 싶었으며 나무를 이해하고 싶었고 나무처럼 살고 싶었던 한 아이는 끊임없이 나무를 관찰하고 나무에 대해 생각한다.인간과 나무와 세상에 대해 고찰하던 것들은 영혼의 한 구석에 모여 새 한 마리가 머무는 나무로 자라났다. 나무처럼 살고자 하는 마음은 있는 그대로 인정 받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마음이 인간 사회의 경쟁이나 고통을 회피하려는 시도로 오해받기도 하고 쓸데없는 것에 주는 애정으로 비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마나 로이에게 나무는 그저 평화롭고 정적인 생명체 이상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관심을 끌지 못하기(29쪽) 때문에 식물은 동물에 비해 간과되기 쉽다. 조용하고 묵묵하게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존재들은 쉽게 포착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도 어렵다. 그러나 한 자리에 머무는 듯한 나무도 들여다보면 치열한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주변의 다른 생물들과 변화하는 환경, 나무를 베어내는 인간들 등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자라난 나무는 기이한 각도로 기울어지고 꺾여 있다. 인간 세상의 잔인함을 피하려 한다기엔 작가에게 비친 나무는 기대 이상으로 역동적이다.


그가 나무를 사랑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조건에서든 단단히 뿌리내리고 한 세월을 살아가는 생명체에 대한 동경과 열망인 셈이다. 기하학적이고 자유로운 모양새를 하고 조금씩 달라지지만 항상 그늘을 드리우고 서 있는 나무의 본모습은 쉽게 알아보기 어렵다.


작가는 나무의 본모습에 주목하기 어려운 이유로 인간이 나무를 다루는 방식에서 찾는다. 단적으로 우리가 나무를 그릴 때 그 유형은 꽤나 정해져 있다. 뭉게 구름 같은 덩어리 하나에 작대기 두 개를 그리고 가지를 좀 덧붙인다. 야자수를 그릴 때는 커다란 잎사귀 두개를 그리고 작대기를 그린다. 야자 열매를 두 개 그려넣으면 야자수라고 모두가 믿어줄 것이다. 관찰보다는 정해진 도형화를 따르는 것, 여태 인간이 나무를 지각해온 방식이다.


수마나 로이는 도식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무를 바라보려 애썼다. 시간을 들여 지켜보고 숲을 거닐며 나무와 호흡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무와 다른 인간의 차별과 공격성을 읽어내며 나무처럼 사는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한다. 그 고민의 여정이 담긴 책이 바로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인 셈이다. 나무와 인간이라는 두 주제에서 연상되는 이야깃거리들을 엮으며 작가는 자신이 지닌 나무에 대한 관심을 전달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 최근에 있었던 가족들 이야기, 어딘가에서 들은 이야기에 다른 종교나 작가의 글을 빌려오기도 했다.

 

 

내속에는나무가_표1띠지.jpg

 

 

인상 깊었던 것은 불교와 나무의 이야기 부분이었다. 책에 따르면 불교에서 나무는 여러 의미를 갖는다. 나무는 부처를 상징하기도 하고, 보리수나 무화과나무는 불교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무의 종류에 관계 없이 모든 나무는 땔깜이 될 수 있다는 ’동일성‘과 실용주의적 시선을 통해 힌두교의 계급을 지적하기도 했으며, 쉬어갈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의 능력과 그늘에 감사하는 태도를 강조하는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러한 불교 속 나무의 모습을 보며 작가는 허영과 과욕을 내려놓아 고통에서 벗어난 삶을 나무의 삶이라 정리한다. 과식도 거식도 없이 양극을 오가지 않은 채로 생존하는 삶. 불교에서는 팔정도(사선팔정)이라 부르는 고요하고 집중한 상태에서 나무의 모습을 발견했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균형은 간단히 깨어진다. 매순간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치기가 쉽다. 그럼에도 가물면 가문 대로, 풍족한 풍족한 대로 적정선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나무의 모습은 겉보기에 안정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변화에 반응할 때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 하루에는 날아가던 새가 곁에 다가와 머물러 줄 때에 어쩌면 나무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느껴보게 된다. 나무처럼 빛을 쫓아 기울어질 수도 어느 한 곳에 붙박혀 지낼 수는 없지만, 자라나는 나무의 모습을 나름대로 체화해보는 것이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에 담긴 내용으로 다가왔다. 나무가 될 수 없음에 절망하면서도 그 사랑의 끝에서 나무-인간으로서 자신을 발견하는 인간의 기록과 함께 진정한 나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다.

 

 


IMG_1921.jpeg

 

 

[이승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