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해상도 프로젝트, 사랑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 - 코리아 이모션 情

유니버설발레단 - 코리아 이모션 情
글 입력 2024.02.2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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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를 제대로 본 기억은 없다.

 

성인이 되어서 발레 공연을 본 적이 없는 것은 분명하고, 어릴 적 기억을 책갈피 하나하나 뒤져 보아도 어린이용 발레의 장면은 남아있지 않다. 70퍼센트의 ‘안 본 것 같은데’와 30퍼센트의 ‘그래도 봤겠지’는 발레에 대한 나의 애매한 거리감을 유지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예술과는 그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발레는 나에게 너무 부유한 취미였다. 엘리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질투할 게 뻔했고, 그만큼 사랑하게 될 것임이 분명했다. 반짝이는 극장을 가까이 두기에 나는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는 나에게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표가 생기고 나서 평생 모르고 살아도 되었을 것을 부러 찾아가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예를 들자면, 이전에도 앞으로도 천 원짜리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사람이 누군가의 환대 아닌 환대로 천억 원의 스피커가 내장된 최고급 음악감상실에 가는 기분이었다.

 

복잡미묘한 상태로 첫 발레를 누구와 함께할까 고민하다 한국무용을 하는 동생이 있는 친구와 가기로 했다. 미술을 전공한 데다 무용을 하는 가족이 있다면 이번 발레 공연이 그에게도 많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2023Korea Emotion-ⓒUniversal Ballet_Kyoungjin Kim 15.jpg

 

 

사실 공연 전의 해설에서 언급했듯이, 발레와 한국무용은 같은 점만큼이나 다른 점이 많다.

 

발레는 하늘의 춤이고 한국무용은 땅의 춤이다. 몸을 젖히고 뛰어오르는 발레와 다르게 한국무용은 가슴으로 끌어안으며 바닥을 향해 스러진다. 그것이 한이고 정이라면, 분하고 서럽고 끈적이고 질척이는 마음의 늪이 낭만화된 것이라면, 발레는 한국무용과 같아질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종류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단단한 나무가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것 같았다. 금기를 향하는 바벨탑처럼 무모할 정도로 도전적인 뜀박질은 정교하게 계산된 발돋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높이를 향한 열망과 활공하고 부유하는 새와 같이 우아하지만 힘 있는 절제가 인간에게 수백 년간 사랑받은 가혹한 예술을 만들었다.

 

한국의 음악과 서구의 춤이 접목된 모습은 단단한 파도 같았다. 정통과 퓨전이 기묘하게 섞여 있다는 점이 그것을 조미했다. 밴드 사운드로 한국 전통 음률을 표현한 노래에 맞추어 동서양의 단원들이 뛰어오르면, 개량된 한복이 하늘거리며 극한까지 몰아붙여 갈라지고 깨어진 신체를 아름답게 감싼다.

 

잘 단련된 근육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보며 하늘을 향해 가슴을 연다는 것은 그를 향해 몸을 내보여도 다치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과정을 수반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되새겼다.

 

 

2023Korea Emotion-ⓒUniversal Ballet_Kyoungjin Kim 215.jpg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보는 내내 감탄했고 또 볼 수 있길 기대했다. 살면서 본 모든 무용 관련 공연 중 가장 좋았다는 생각이 절로 솟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공연을 관람하며 코리안 이모션, 한국인이 스스로 개념화한 일종의 심리적 상태인 ‘정’과 발레를 연결짓는 것에는 실패했다. 어쩌면 내가 감각하는 情과 이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Korea Emotion과는 거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감각을 육체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나의 감각을 타인에게 전유하는 것은 모두 개인을 이루는 우주 하나만큼의 거리가 있다. 그러므로 타인의 몸짓을 받아들여 내 안의 태도와 함께 하나로 녹여내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정은 오랜 시간이 필요해서 사랑보다 더 깊다고 했다. 더 오랜 시간을 들이면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해상도 프로젝트는 그를 위해서다. 모르는 것에 시간을 들여 정을 붙이는 일이다.

 

사랑보다 더 오래 남을 무언가를 위해서.

 

 

 

컬쳐리스트 명함.jpg

 

 

[김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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