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언젠가 꼭 살고 싶은 집

아름다운 문장으로 지은 집
글 입력 2024.02.27 00:4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스크린샷 2024-02-26 오후 11.29.21.png

 

 

누군가 내게 언젠가 꼭 살고 싶은 집을 물었다.

 

삭막한 도시 속 내가 쉴 곳은 언제나 문장과 문장사이. 아름다운 문장들은 기억에서는 잊혀도 마음에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때가 오면 차곡차곡 내 안에 쌓아둔 문장들을 꺼내 아름다운 집을 지으리라. 겨울 도시의 황량한 바람에 겁에 질린 영혼이 쉬어가는 집, 무해하고 순수한 것들만 허용되는 집을.

 

볕이 잘 드는 땅에 김화영의 문장을 펼친다. 희망 없는 행복, 내일 없는 사랑, 위안 없는 기쁨을 생각한다. 꾹꾹 흙을 다지면 프로방스 라벤더 향이 그윽하게 올라온다. 그 위에 카뮈가 사랑한 모든 단어, 꽃, 여인, 태양, 바다, 삶, 사랑, 죽음, 육체, 진실, 청춘들로 기둥을 세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을 단어들. 까만 밤에도 반짝이는 등대처럼 찾는 이가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빛이 가득한 강성은의 문장을 지붕으로 올린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안락한 것들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용기를, 목정원의 문장을 마당 곳곳에 심어두리.

 

잔인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오면 따뜻한 우롱차와 향기로운 문장들이 나를 기다린다. 이곳은 비밀의 안전지대. 은유가 폭신하게 깔린 시어를 덮고 모든 불안을 잊어둔 채 눈을 감는다. 문장들이 나지막이 자장가를 부른다. 창밖으로 고요히 눈이 내린다.

 

1) "그들의 행복에는 희망이 없고 그들의 사랑에는 내일이 없고 그들이 기쁨에는 위안이 없다." <행복의 충격>, 김화영

 

2) "나는 내가 죽은 뒤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꽃과 여인에 대한 욕망을 그들의 살과 피로 감각할 사람들을 질투한다."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3) "눈 속에 빛이 가득해서 다른 것을 보지 못했다." <단지 조금 이상한>, 강성은

 

4) "지구 위에는 내가 사랑하는 극장들이 몇 있고, 사랑을 촉발시킨 것은 대체로 거기서 마주한 허구의 세계였다." <모국어는 차라이 침묵>, 목정원

 

 

[최은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