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슬로 이-모션: 부유의 정서 - 코리아 이모션 情 [공연]

글 입력 2024.02.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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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겨울 같지 않던 따스한 하루에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코리아 이모션 情’을 만나고 왔다. 공연을 보기 전 한국의 선율과 정서가 발레와 만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더욱이 이 공연이 다른 고전적인 문화예술과 달리 어떠한 힘을 끌어낼지 궁금했다.


발레 공연은 처음이었기에, 그런 내가 공연을 보며 차이점을 찾아낼 수 있을지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하였다.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공연에 앞서 문훈숙 단장의 해설이 공연 초입을 개방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해설이 있다면, 발레와 한국 무용의 동작 차이였다. 문훈숙 단장의 짧은 시범을 보며 느낀 점은 발레는 몸을 길게 뻗거나 활짝 열어 시원한 길이감을 주는 반면, 한국 무용은 둥근 팔사위와 무릎 굴신을 통한 느릿함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두 시범에서 모두 ‘우아함’이 풍겼으나, 다른 몸짓으로 인해 다른 정서가 깃든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2023Korea Emotion-ⓒUniversal Ballet_Kyoungjin Kim 3.jpg

 

 

발레는 잘 모르는 내가 ‘코리아 이모션 情’을 보며 떠올렸던 감상은 우선 첫 무대부터 한국의 전통문화와 서양의 문화를 융합하는 시도임이 여실히 느껴지는 무대였다는 것이다.

 

앙상블 시나위의 ‘동해 랩소디’ 음악과 함께 남성 무용수들이 일제히 팔을 길게 펼치며 한국의 전통 리듬, 흔히 ‘덩실덩실’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리듬으로 등장했다. 남성 무용수의 흰 두루마기와 갈황색의 하의 의상과 팔과 리듬을 이용한 안무가 마치 백로나 학이 날아가는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한국의 흥과 발레를 결합한 무대를 보여주며, 남녀 무용수들이 등장과 퇴장에 있어 모두 팔을 길게 뻗고 날아가는 모습에 학이 모티브가 되었음을 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감상을 이어 부채를 활용한 4인무 ‘찬비가’ 무대를 보며, 학에 관한 감상이 더욱 확고해졌다. 이 순간만큼은 여태 느껴보지 못했던 ‘부채’에 담긴 소리를 듣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펼치는 소리가 힘차게 날아가는 학의 날갯짓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네 명의 무용수가 부채를 펼칠 때마다 그들이 표현하는 각각의 사랑 이야기가 나에게 힘차게 날아왔다.

 

 

2023Korea Emotion-ⓒUniversal Ballet_Kyoungjin Kim 16.jpg

 

 

이후 서정적인 선율과 함께 표현되는 안무와 연출을 통해 그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특히 ‘달빛 연희’에서 창가에 내리비춘 달빛을 조명으로 표현하며 네 명의 무용수를 각각 비추어 오묘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주었고, ‘강원, 정선 아리랑’에서 안개 분사를 통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고개를 넘는 환상적인 느낌을 더했다.

 

더불어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 무용수들은 몸 안쪽으로 주변의 기를 끌어모아 심장에 간직하려는 듯한 몸짓을 하곤 했다. 그건 느릿하고 또 애절하게 부서지는 무언가를 잡고자 하는 손짓이었다.

 


2023Korea Emotion-ⓒUniversal Ballet_Kyoungjin Kim 1.jpg

 

 

나는 ‘흥’이라는 빠른 템포에서도, 그리고 ‘그리움’이라는 느린 템포의 정서에서도 잠깐의 정체를 느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공연 내내 부유한다는 생각을 지워낼 수 없었다. ‘펄럭임’과 ‘흩날림’을 연상케 하는, 무대에서 시간을 느릿하게 감는 것들.

 

가령 한 템포 늦게 무용수의 움직임을 따라오는 여린 꽃잎 같은 옷자락들과 명창의 구슬픈 목소리, 묵직하게 버티고 있는 남성 무용수에게 고정된 채 온몸을 뻗어보아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길 반복하는 여성 무용수의 몸짓 등 그 아름다움이 모두 슬로 모션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러한 슬로 모션에는 절제와 역동, 서양과 한국 전통을 오가는 조화를 완벽하게 표현해 낸 무용수들(한국 무용수 외에도 외국인으로 보이는 무용수도 있었다)의 공이 컸다.

 

 

2023Korea Emotion-ⓒUniversal Ballet_Kyoungjin Kim 15.jpg

 

 

이 공연을 보면서 내 안의 많은 것이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코리아 이모션 情’을 접하기 전까지 클래식 발레와 한국적인 것의 융합이 이루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국악 퓨전 음악과 발레가 함께 하는 공연이 다소 생소한 조합이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아름다움을 표현함에 있어 끊임없이 열린 마음으로 경계를 허물어야 하고 무한히 확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라며 안무를 맡은 유병헌 예술감독이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이러한 시도와 확장은 더욱 문화예술을 다채롭게 하기에 환대한다.


일전 살풀이춤에 대해 검색해 보다 ‘서양의 발레는 하늘을 지향하고, 한국의 전통춤은 땅을 지향하고 있어, 이 때문에 움직임과 멈춤이라는 상반된 개념이 하나로 포용된다’는 설명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공연에서 느낀 부유와 시간을 느릿하게 감는 듯한 슬로 모션이 움직임과 멈춤의 포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발레라는 상반된 개념처럼 보이는 예술과의 조화도 비단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었을 테다.


그렇기에 익숙하여 당연하게 지나갔던 한국적인 것들을, 발레와 서양 문화의 융합을 통해 다시금 재탐색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이러한 융합예술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 그 무한한 가능성과 확장이 끊이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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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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