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 궁금증은 누가 해결해 주나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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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첨될 거라는 큰 기대 없이 응모했던 시사회에 당첨되어 보게 된 독립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어떤 내용일지 감도 안 잡히는 독특한 제목에 이끌려 시사회에 응모했다. 11살짜리 주인공 동춘이와 막걸리, 모스부호 어느 것 하나 공통점이 없지만 어떻게 서로가 연결돼서 어찌어찌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린이가 주역으로 나오는 영화 중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같이 몽글몽글한 분위기였지만 곱씹어 보니 많은 생각이 드는 영화였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의 주인공 동춘이는 11살임에도 불구하고 주말까지 학원 스케줄로 꽉 차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빠도 주말에는 쉬는데 말이다.
영화 내내 동춘이는 무표정한 얼굴이다. 동춘이뿐만이 아니라 또래 친구들도 다 무표정하다. 초등학생이면 웃을 일밖에 없을 텐데도.
아이를 ‘잘’ 키운다는 기준이 뭘까? 부모님은 항상 ‘다 널 위한 거야’라고 말하겠지만 진짜 그게 아이를 위한 일이 맞을까?
부모님은 아이를 본인들이 생각하는 기준으로 잘 키우고 싶어 하지만 정작 아이와 소통은 거의 하지 않는다. 대머리가 영어로 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제 동춘이도 영어 유치원에 가야 될 때가 됐나 봐라고 하던 엄마, 그렇게 간 영어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할 일을 던져주고 휴대폰만 하기 바쁜 원어민 선생님을 바라보며 이걸 왜 해야 돼요?라고 묻지만 선생님은 그건 엄마한테 물어보라며 서로 떠넘기기 바쁘다.
아직 중학교도 안 들어갔는데 동춘이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쯤에는 페르시아어 전형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듣고 동춘이를 바로 페르시아어 학원에 보내는 걸 보고 영화니까 과장된 거겠지? 진짜 저러는 부모는 없길 바랐다.
결론적으로는 막걸리가 보글거리면서 보낸 신호가 모스부호였고 그 모스부호가 페르시아어였다는 점에서는 좋은 일이었지만 자꾸 현실을 대입하게 됐다.
키가 많이 못 클까 봐 성장판 주사를 놓는 것도, 가족 일 때문에 울다가도 영재발굴단 프로그램 제작진의 전화를 받고 기뻐하며 동춘이에게 잘됐지?라고 말하는 엄마도, 본인 기준 동춘이가 조금 엇나가는 것 같으니 상담 센터에 가는 것도 너무 숨통이 조였다. 동춘이가 상상 친구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환경 아닐까.
막걸리가 모스부호를 보내는데 해석해 보니 페르시아어였다고 말하면 믿어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 몰라도 부모는 어쨌든 믿어줘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동춘이는 부모님께 말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방 안에 숨긴다.
그도 그럴게 교육 환경을 보니 모스부호를 보내는 막걸리라는 것보다 네가 술을 갖고 있어? 왜?라는 포인트에만 꽂힐 게 뻔하다.
아이러니하게 이렇게 정석적인 바르고 착하고 똑똑한, 완벽한 딸을 키우기 위해 사교육에 집착하는 엄마와 달리 엄마의 형제는 서울대 출신임에도 자연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막걸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삼촌뿐이다.
막걸리가 준 미션을 모두 완수하고 막걸리는 동춘이가 어떻게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었는지 알려준다. 막걸리의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게 자신뿐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동춘이, 다시 돌아가면 가족들은 동춘이의 말을 들어줄까, 그렇게 떠나버린 삼촌은 어떻게 됐을까 그 후일담이 궁금해졌다.
11살 소녀와 막걸리, 모스부호, 페르시아어라는 제각각인 소재를 재밌게, 또 통찰력 있게 풀어낸 영화였다.
[신민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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