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 우리는 스스로를 지켜내야한다

글 입력 2024.02.15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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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질적으로 감정기복이 심하고, 동시에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하지만 10대때는 그런 저 자신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대학을 가야한다는 당면 문제를 처리하는 것에 급급했고, 그러한 문제 때문에 매일 매일 12시에 자고 5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근 3년 동안 했습니다.

 

죽은 듯 곯아떨어졌지만 신기하게도 저는 4시 55분 정도만 되면 눈이 떠지는 신기한 경험을 자주 경험하곤 했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다가 학교에 가야하는 루틴이, 일종의 압박으로 느껴졌었으리라고 지금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러한 강박과 쫓기는 듯한 생활이 저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별 고민 없이 공부만 하고 그 속에서 소소한 행복감 (어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집밥과 공부 도중 찰나의 마트 산책 등등이요) 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사람은 많지만 저에게는 외딴, 익명의 군중이 가득한 도시에 홀로 살게되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혼자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저의 상황에 대한 자각이 시작됩니다. 상황은 그때 그때 변합니다. 학교에 나가야 하는 날도, 즐거운 약속이 가득한 날도, 애인과의 데이트가 있거나 싸운 다음 날도 존재합니다. 그 상황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일단 지금 당장의 나는 혼자, 라는 사실. 그 사실이 차가운 도시의 겨울 공기와 만나게 되면 때론 너무나 폭력적으로 와닿습니다.

 

'아, 내가 20대 후반이 되어서도, 직장인이 되어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지게 되어도, 하다못해 중년의 나이가 되어도 이 끔찍한 기분을 계속 느껴야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간절하게, 매달리듯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나종호 교수가 등장하는 토크쇼 클립을 보게되었습니다.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시더라구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 말이 있죠. 스스로는 자신의 가장 저열한 모습까지 남김없이 알기 스스로를 사랑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저 또한 그랬습니다. 이런 감정 상태를 느끼는 나 자신이 굉장히 유약하고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남들 다 하는 일상생활의 틈새로 감정을 자꾸 밀어넣어 스스로를 힘들게하는 것이 배가 불렀다고 느겼습니다. 그러나, 그런 괜찮지 않는 나 자신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 나 자신을 직면하고 위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저열한 모습까지도 용기있게 마주하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종호 교수의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은 크게 3챕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 , 공감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 낙인으로도 무너지지 않는 삶, 으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각 챕터의 제목에 걸맞는 경험들이 담백한 에세이 형식으로 작성되어 있으며, 활자들이 작지 않고 성기게 종이에 인쇄되어 있어 편안하고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스스로 되물었다. ' 이 상담실에서 한 발자국 나가면 나는 그녀를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나는 반 고흐의 작품 <신발> 을 좋아한다.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Walk a mile in one's shoes)' 는 격언을 떠올리게 해서다. 물론 누구도 (모든)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볼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구는 나에게 타인의 경험과 관점,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는 자경문과 같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p. 105>

 

내 진행이 답답해서였을까,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교수님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저는 아이가 없어요. 남편과 함께 아이를 입양할까도 생각한 적이 있지만, 용기가 부족해서 그러지 못했어요. 그래서 애를 키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머니가 어떤 심정일지 잘 몰라요. 그렇지만 듣고 싶어요. 배우고 싶어요. 제이콥을 어떻게 키우셨는지, 들려주시겠어요?"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p. 115>

 

흔히 공감 능력은 타고난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로 수련하며 공감 또한 학습과 의지 그리고 노력에 의해 발달시킬 수 있는 영역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처음에 정신과 의사로 일하기 시작한 6년 전에 비해, 나는 나와 완전히 다른 배경을 가진 환자에게도 더 높은 수준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이는 내가 이 능력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반복해서 환자를 만나고 공감하기 위해 애쓴 노력의 결과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p. 127>

 

샐리는 20대 초반 처음 조현병이 발병해 40대까지, 환청과 망상으로 벨뷰 병원에 입·퇴원을 수십 번 반복했다 그러던 그녀가 15년 전 마지막으로 퇴원한 뒤, 우리 외래 클리닉에 오면서부터는 더 이상 입원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늘 아침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한 뒤, 히스패닉을 위한 교회로 봉사활동을 나갔다. 봉사활동은 노숙자들에게 밥을 배식하거나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에게 음식을 배달하는 일이었다. 오후에는 정신과 환자를 위한 재홀 센터에 가서 친구들을 만난 뒤 근처 커피숍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샐리에게는 몇 년 간 만나온 샘이라는 남자 친구가 잇었는데, 그 역시 조현병을 앓았다. 둘은 알콩달콩 행복한 연애를 했고 샐리는 샘을 '영혼의 동반자' 라고 칭했다. 저녁에는 샘과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그녀의 하루 루틴이었다...... (중략) 그럼에도 진료실을 나서는 샐리의 뒷모습이 언제나 너무나 행복해보여서, 그녀가 떠난 후 진료실에는 한동안 따뜻한 기운이 가득했다. 나는 그녀야말로 중증의 만성 조현병 환자도 자기 일상을 잘 꾸려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고 여겼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p.135>

 

하루는 진료실에서 제니퍼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조울증 환자가 된 이후로 인생이 완전히 바뀐 것 같아요. 원래는 가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저는 빼도 박도 못하는 '양극성' 인거잖아요. 

나는 그녀에게 조울증은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약을 꾸준히 먹으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만성질환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진단명은 그녀의 일부일 뿐 '조울증이 당신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고 덧붙였다. 그녀는 말없이 계속 울기만 했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p.144>

 

2018년 시키고에서 열린 케네디 포럼에서 펠프스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제 알아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는 걸요. 물론 낙인은 여전히 존재해요. 그래서 자살률이 올라가는 거예요. 정신 질환을 이야기하고 고백하는 걸 두려워 해서요.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사람들이 조금씩 정신 질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덧붙였다. "그때 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p.158>

 

자살 유가족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죽음들과 달리, 자살만은 '죽음' 이 망자의 '삶' 을 압도해버린다고. 가령 누군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를 떠올리며 삶 전반을 기린다. 아마 대부분의 죽음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유독 자살로 사망할 경우 그 사람의 삶 자체보다는 죽음에 초점을 맞춘다. 사랑하는 이를 자살로 잃은 슬픔만으로도 벅찬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극단적 선택' 이라는 표현은 지양해야 한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p.173>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며 이상하게 다른 미디어에서 접한 두 대사가 떠오르더군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스스로를 직면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누군가는 우울한 일이 있으면 글을 쓴다고 하지만, 저는 우울할 때는 오히려 펜을 잘 들지 못합니다. 펜을 들고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나 겁이 나서입니다. 그 와중에 어떤 날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어" 라고 되뇌이며 다시 용기 내어 펜을 들고 스스로를 마주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 하지만 때론 도망칠 수도 있는거야, 그런거야" 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펜을 던져버리고 맛있는 것을 잔뜩 스스로에게 먹이고 잠을 청하곤 합니다.

 

어쩌면 그 두 대사를 이리저리 반복하며, 스스로를 돌보고 나의 정신과 마음을 그래도 꾸준히 바라봐 주는 것, 그게 평생의 해야할 일 일수 있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이런 정신과 감정은 나의 일부이며, 전체를 규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괜찮지 않을 때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당뇨나 고혈압처럼 평생 동안 나를 관리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누군가를 도와주면서 어쩔 때는 도움도 받으면서 그렇게 꾸준히 나 자신을 돌봐주고 삶을 살아가는 것. 나를 선택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가 자살을 하지 않도록, 열심히 생을 활보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삶의 목적 그 자체 일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카페에 일찌감치와 저 자신을 위한 글을 쓰면서 나를 돌보고 봐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루하루가 힘들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서 스스로를 다독이고 돌보는 것이 어떨까요?

 

 

[김정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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