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왜 난해한 영화는 불쾌할까?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2.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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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금까지 영상 시청에 있어 빨리 감기, 건너뛰기라는 습관이 현대 사회에 나타난 이유와 배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하고 있다. 그 기저에는 ①영상 작품의 공급 과다, ②바쁜 현대인의 시간 가성비 지향, ③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영상 작품의 증가 라는 세가지 이유가 있었다.

 

 

 

영상을 보지 않을 자유에 대하여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영상을 보지 않을 자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게 되는가? 지루할 때다. 그럼 왜 지루함을 느끼는가? 보고 싶지 않은 영상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영상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영상을 자발적으로 시청하고, 해당 영상을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현재에는 영상에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심지어는 영상을 보고 싶지 않더라도, '생존'하기 위해 영상을 봐야 한다. 친구들 대화에 끼기 위해, 유행을 파악하기 위해,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기 위해. 그래서 '내가 이렇게 트렌디한 사람'이라는 걸 계속해서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영상을 본다.

 

와이파이만 연결된다면 세상의 그 어떤 영상도 관람할 수 있게 된 지금, 역설적으로 '영상을 보지 않을 자유'는 허용되지 않는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영상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나는 뒤처지고 있어요"라는 선언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왜 난해한 영화는 불쾌할까?


 

그런데 과연, 우리는 영상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보는 영상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 영상이 아무리 '오락'으로 전락했다고 하더라도, 영상은 오랜 시간 '예술'의 영역에 속해있었다. 예술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비틀고, 변형하고, 수많은 상상을 덧붙여 하나의 창작물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교양이 필요하다.

 

 

습관이 쌓여 교양이 되고 이해력이 된다. 추상화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몬드리안의 작품을 갑자기 접하게 된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문학과 문화/예술교육이 부재한 사회 속에서, 상당수의 현대인들에게는 영상을 제대로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대적 의미의 문화 자본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난해한 영화를 '불쾌함'으로 받아들인다. 감독이 관객에게 쥐어주는 '오독의 자유'를 불친절로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들은 '쉬운 영화'를 요구하게 되며,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시청률과 자본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제작자들은 '이해하기 쉬운 영상'을 만들기 위해 부차적인 설명들을 끝없이 덧붙이게 된다.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는 것들을 일일이 대사로 설명해줌으로써, 작품의 여백이 줄어들고 해석의 자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생략되는 '과정'의 시간들


 

이렇게 만들어지는 영상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더욱 1차원적인 시청만을 요구하게 된다. 관객은 이러한 영상을 굳이 공들여 이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빨리 결말을 알고 싶은' 욕망만을 느끼게 된다. 폴 비릴리오가 말했던 도정성의 문제처럼, 현대인들은 영상 시청의 '과정'을 생략한 채 그저 영상의 시작과 끝만 기억하면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우리 사회의 진로교육 방식과도 연관되는데, 우리는 '꿈에서도 가성비를 도출해야 한다'는 압박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꿈의 로드맵을 그리고 최종 목표에 도착하기 전까지 모든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회적 명령은 어쩌면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는 '과정'의 시간들을 폄하하고, 가장 근본적인 가치들을 망각하게 만든다. 때문에 우리는 '왜 달리고 있는지'를 잊은 채, 그저 '옆사람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질주학


 

현대 사회의 이러한 특성은 '속도'를 지배하는 사람이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고, 유행에 따라 빠르게 영상을 챙겨봐야 한다는 압박 역시 일종의 '질주학' 논리에 해당한다.

 

이제 영상 시청은 '감상'이라는 본질을 배제한 채 '정보 강자로서 우월감'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고, '비판할 자격'이라는 이름의 권력을 부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상을 빨리 감고, 건너뛰며, 수많은 영상들을 패스트푸드처럼 섭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김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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