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통닭 대신 얻은 [사람]

글쓰기에 대한 생각
글 입력 2024.02.1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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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알던 사람들을 만난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그런지 피곤에 절어서 그런지 대화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

 

대신 발가벗은 통닭에 집중한다. 떠드시오 나는 먹겠소 신념 하나로 가슴살을 음미한다. 비릿한 맛을 소스로 씻어봐도 별 수 없다. 이 닭은 생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구나. 닭과 교감을 하던 그때 지인이 툭 던진 고백에 귀가 뾰족해진다.

 

“나 요즘 글 쓰거든.”

 

글? 지금은 먹을 맛보다 들을 맛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젓가락을 고이 내려놓고 집중한다. 지인은 두 달간의 글쓰기 수업에서 매주 글을 작성하는데 두렵고 어렵다고 했다. 글이란 것을 읽으면 지은이를 만난 적이 없음에도 아는 느낌이라 자신이 누구에게 읽히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글을 쓰고 있었다. 지인의 근황을 듣자마자 12345가 펼쳐진다.

 

1. 글과 글쓴이를 동일시할 수 있다는 것.

 

2. 자신이 읽히는 것이 두려워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3. 가상의 인물을 통해 전달하면 자신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4. 글쓰기 수업을 내 주위에서 실제로 듣는다는 것.


5. 숙제로 쓰는 글이라도 ‘글 쓴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입으로 하는 말과 말을 문자로 옮긴 글의 중요성을 알고 믿지만, 나는 한 사람의 글을 읽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사람이겠구나 정도로 파악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전부를 읽을 수는 없다. 사람은 선택적으로 자신의 일부를 드러낼 수 있으니까. 오히려 한 사람의 눈과 몸에서 느껴지는 파장이 말과 글과 행동 보다 정확할 때가 많다.

 

자신이 읽히는 것이 두렵다는 지인은 사실 읽히길 원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겠나. 읽히는 것이 두렵다기보다는 내가 (신뢰하지 않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안다는 것을 편치 않게 여기는 것 같다. 글쓰기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내재되어 있어서이고. 글을 쓸 때 잘 쓰고자 하는 마음을 움켜쥐면 써 내려가기 힘들다.

 

잘 쓰고 못 쓰고를 판단할 수 있을까.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감히 나눌 수 있을까. 물론 정확한 형식과 기준을 따라야 하는 글이라면 가늠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못난 글처럼 보이는 글이라도 어떤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좋은 글이라 불릴 수 있다고 본다. 글도 다 자기 짝이 있어서 자신을 알아봐 주는 독자에게 빛을 내는 법.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독자가 나란 사람에 대해 조금은 파악하고 나의 글에서 어떤 장점을 발견하여 독자 스스로에게 좋은 영향으로 받아들인다면 내 글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글을 잘 쓰기 위한 수업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지인처럼 전문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수강해도 좋겠지만 아직은 내키지 않는다. 문장이 틀려도 구성이 어색할지라도 허술함 자체가 좋다. 그러나 기회가 된다면 실제 작가 생활을 하시는 분들을 만나 그분들이 생각하는 좋은 글에 대한 이야기와 실제 경험을 듣고 싶다. 언젠가 나도 글 쓰는 사람이라 자신을 소개할 수 있도록.

 

휑, 머릿속 말풍선을 그리는 사이 식탁 위에 닭 뼈만 남았다. 다들 어쩜 먹기와 듣기를 동시에 잘 하는지 한발 늦었다. 고픈 배를 디저트로 채우면서도 기분은 좋다. 글감을 얻은 기분이다.

 

 

 

김윤 에디터 명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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