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모두에게 통하는 이상한 매력의 뮤지컬 - 이상한 나라의 아빠

글 입력 2024.02.0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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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아빠가 등장하는 스토리라니! 눈물, 콧물 안 흘릴 수 없지 않은가. 이런 스토리에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아빠 병삼역을 맡은 배우가 첫 소절을 내뱉자마자 주체하지 못하고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찌할 수 없었다. 관람하고 복도로 나오자마자 얼마나 울었는지 머리가 띵했다. 같이 관람한 엄마가 오죽하면 “너, 내가 너 하고 싶은 거 못하게 시켰니?”라며 헛웃음을 지으셨다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에서 병삼은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어릴 적 하고 싶었던 시를 쓰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이렇게 신파 스토리에 약했다. 아니 정확히는 무대에 약하다. 사람의 목소리는 CD, 음원이 아니라 육성으로 직접 들어야 한다. 배우의 심장에서 떨어져 나온 울림은 내 심장으로 맞받아쳐야 한다. 중년 배우의 목소리에는 세월을 무시할 수 없는 깊은 연륜이 담겨 있었다. 노래로 연기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 걸까? 그냥 대사로 들었으면 느낌이 완전히 달랐을 것다. 하지만 성기윤 배우의 묵직한 중저음의 떨림이 여기 내 심장까지 다가왔다. 솔직히 관람 전에는 흔한 스토리와 플롯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대 위이기에 달랐다. 전에는 무언가 뮤지컬 하면 화려한 내용, 화려한 것들만 올라온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스토리도 또 이렇게 해석하면 기대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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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2021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작품이다. 2022년에도 공연을 이어갔고, 2024년에 다시 돌아왔다. 내용은 간략히 다음과 같다. 동화작가 지망생인 주영이 아버지의 투병소식을 듣고 부산으로 내려간다. 작가생활을 반대하는 아빠와 척을 지고 살았던 그녀가 이번 기회를 통해 아빠 병삼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을 가본 건 또 처음이었다. 티켓부스 포스터 앞에 당도하자마자 엄마는 ‘홍준기’ 배우 이름을 알아보았다. TV예능 ‘팬텀싱어’ 팬이었던 엄마는 뮤지컬배우 홍준기를 기억하고 계셨다. 반면 나에게 익숙한 얼굴은 배우 ‘김가은’뿐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 등장했던 터라 익숙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머지 배우 분들은 아직 잘 모르지만, 아트인사이트 초대를 통해 좋은 뮤지컬을 관람할 때마다 좋은 배우를 만났기에 이번에도 큰 설렘을 안고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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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자마자 헉,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 눈을 한 번에 사로잡은 건, 바로 무대. 공연을 볼 때, 개인적으로 가장 짜릿한 순간은 무대연출을 뜯어볼 때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한 만큼 무대배경이 수많은 사각형 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실제로 기능도 했다. 때에 따라 문이 되기도 하고 창문이 되기도 하며, 의자가 되기도 하고 침대, 옷장이 되었다. 또 스크린이 되기도 했다. 동화 속 세상처럼 흰 배경에 그림이 그려졌다. 스크린에 쏘는 이미지에 따라 이야기 주요 배경인 병원이 되기도 하고, 부산 앞바다가 되기도 했다. ‘프로젝션 맵핑’을 활용한 덕이 톡톡히 보였다. 어색하지 않게 무대와 영상이 잘 조화가 된 느낌이었다. 특히 맵핑을 활용한 부분 중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커튼콜 때 제작진 이름이 엔딩 크레디트처럼 무대배경에 올라왔다는 점이다. 한정된 공간을 요목조목 다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공연의 매력을 잘 몰랐을 때는 사각형의 공간이 왠지 답답해 보였는데, 되려 다양한 상상의 여지를 주는 쪽은 영상이 아닌 무대 위가 아닌가 싶었다.


매체, 매체 하며 많은 배우들이 예능, TV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알리지만 아직도 무대에는 보석 같은 배우가 많다. 특히 극의 주요 등장인물인 체셔고양이역의 정현우 배우, 시계토끼역의 홍준기 배우, 도도새 역의 박혜원 배우의 합은 너무나도 기가 막혔고 이런 에너지를 보기 위해 뮤지컬을 보러 오는구나 싶었다. 정현우 배우의 능구렁이 같은 몸짓은 너무 매력적이고, 홍준기 배우의 목소리는 너무 황홀하고, 박혜원 배우의 에너지는 사랑스러움부터 카리스마까지 너무나 다양했다. 2022년 공연에서도 함께 합을 맞췄던 시너지가 이번 공연에서도 더욱 빛을 발한 듯하다. 


물론 주인공을 맡은 두 명의 배우도 빼놓을 수 없다. 김가은 배우는 노래 면에서는 다소 아쉬웠지만 그녀의 감정연기는 탁월했다. 사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흐름이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들긴 했다. 다만 분절된 지점마다 훌륭한 넘버들, 무대연출, 배우의 연기가 있었기에 그것이 큰 문제라고 느끼지 않았다. 또한 스토리상 아빠 병삼과의 감정선이 중요할 터였는데, 김가은 배우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가끔씩 어떤 뮤지컬 배우는 노래와 표현에 집중하다 보니 노래할 때 감정이 다소 올라오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곤 했는데, 무대 위에서 김가은 배우와 같은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꽤 반갑게 느껴졌다. 다만 드라마처럼 한 번 촬영하고 감정이 끝나는 게 아닌지라, 매일 무대를 치러야 하는 김가은 배우가 부디 마지막 공연까지 지치지 않고 잘 끝내길 하는 바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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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아빠와 딸의 이야기이다. 작사가와 작곡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다. 글초반에 뻔한 이야기라고 했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 가장 많이 마주할 수 있는 장면이기에 그 소중함을 더 몰랐던 것 같다. 한 장면이 기억난다. 딸 주영은 가족들에게 상처를 너무 많이 준 병삼에 대한 사형선고를 내리는 재판대에 선다. 머리로는 수없이 아버지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지만 마음으로는 그게 잘 안 된다. 결국 주영은 아버지를 이해해 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시간은 얼마 남아 있지 않고, 아버지도 그제야 조금 더 살아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평생을 누군가를 이해해보려 하지만 실패하는 이야기. 흔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통하는 이야기인 이유이다.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가족과 함께 보면 좋다. 눈물, 콧물 다 빠지지만 체셔고양이, 시계토끼, 도도새가 만들어낸 앙상블 덕분에 또 배꼽 빠지게 웃을 테니까. 특히 아빠와 딸이 함께 보면 30% 할인이 된다 하니, 아빠와의 대화에 물꼬를 조금 터보고 싶다면 함께 관람하는 건 어떨까. 과묵한 아버님들의 눈물, 콧물을 빼다 보면 분위기가 좀 유연 해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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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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