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글 입력 2024.01.2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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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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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자격을 얻은 직후 이 공간에 올린 첫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다룬 것이었다. 짐을 싸들고 서울을 떠나오게 되기까지의 내 마음에 대한. 어느덧 그걸 쓰고 딱 1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흘렀다. 사실 그런 걸 썼다는 것도 조금 잊은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제 와서 문득 첫 글을 떠올리게 된 데 딱히 특별한 이유랄 건 없다. 그저, 1년이 딱 채워지는 날쯤엔 내가 아마 다시 서울로 돌아가 있으리라는 것. 그러니까, 다시 돌아가야 한다. 해내야 하는 것들의 무게가 한결 가벼웠던 시간을 뒤로 하고.

 

부끄럽게도 그 글엔 날선 예민함이나 신경질 같은 게 잔뜩 묻어 있다. 세상 부담이란 부담은 혼자 다 짊어지고 있는 것마냥, 모든 걸 버거워하는 사람의 신경질. 사람의 기질에 어떻게 절대적인 장단을 나누겠냐만, 그때의 나는 내 예민함을 주변을 다루는 섬세함으로 바꿔 쓰지 못했다. 아주 조금의 자극에도 마음이 부글거렸고 그걸 다루지 못해 어쩔 줄을 몰랐다. 혼자 개복치처럼 픽픽 상처받고 세상을 꼬아보는 내 모습을, 스스로도 참 보기가 싫었다. 그래서 환경이라도 바꿔보고자 했던 시도가 지금 몸 담은 곳을 잠시 떠나자는 결정이었다.

 

그 결정과 함께 그때 어떤 결심을 했더라. 사실 결심까진 아니고, 내 마음을 돌보는 것에도 지쳐서 미뤄뒀던 만사들을 돌볼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는 작은 바람 정도였다. 이것저것 재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마음만으로 그치게 하고 싶지 않았고. 돌아보면 이건 어느 정도 실현이 된 바람인 것도 같다. 쉬면서 얻게 된 여러 종류의 가용 자원들을 힘껏 쏟아부어 봤으니까. 그래봤자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시간이나 성의 정도였지만, 적어도 내 쪽에서 심력을 쓰는 일에 전처럼 억울해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삶을 굴려가는 일의 넉넉함을 체감했다. 조금 일을 하고 들어와서 낮잠을 자고 간단히 끼니를 지어 먹고. 게으름을 피울 만큼 피우다가 좀 생각이란 걸 해보자 싶어질 때쯤 느릿하게 책장을 넘기고 글을 쓰고. 수백 번씩 반복했거나 혹은 기억도 나지 않을 우스갯소리로 종일 깔깔거리고. 이렇게 지내다보니 자려고 누워 있어도 대부분의 내일이 두렵지 않았고, 단순한 일상과 함께 생각도 깔끔히 다듬어졌는지 먼 걱정들은 내게서 쉽게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땅굴 파듯 온갖 잡념에 끌려들어가는 감각이 아득해졌다. 마음에 무언가 방패를 두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간의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던 휴식인 동시에, 결과적으로는 일종의 도피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요즘들어 자각하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것이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짠, 나는 이렇게 많이 회복하고 나아졌어요,를 말하는 글이었다면 좋겠지만 천성은 쉽게 변하지를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똑같은 고민으로 돌아가는 나. 그 고민을 대하는 태도에는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지만 그 진척은 다른 면에선 퇴보이기도 했다.

 

애초에 예전의 내가 그렇게 부담을 느꼈던 건 앞으로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사실과 그 사실에 전혀 대비되지 않은 내 무능력함 때문이었다. 부산물처럼 생겨난 잡념이나 슬픔들은 쉬는 동안 대부분 녹아내렸지만,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전혀 해결이 되지 않은 채다. 곁가지 같은 문제들만을 쳐내오다가 뿌리를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 기어코 오고 말았다.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이 슬슬 현실이 되자 또 예전의 감각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다.

 

단단해졌다는 느낌은 정말 느낌에 불과했을까. 가끔 아주 슬프다가도 맹맹하게 울적한 나로 돌아오는 것과 아주 행복하다가도 결국은 덤덤해지고 마는 것. 내가 가진 건 회복 탄력성이 아니라 그저 약간은 가라앉은 상태로 돌아가려는 관성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의문이 자꾸 피어오른다. 물론 전처럼 날 내리누르는 중력을 무력하게 다 맞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 이런 내 의연함은 양면적이다. 휴식에서 비롯한 의연함을 넘어서, 나태와 포기의 단맛을 알게 된 게 아닐까 위기감이 드니까.

 

뭐가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그때의 내가 지고 있던 무게가 지금은 조금 우습지만,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여유를 넘어선 냉소나 나이브함에서 비롯한 게 아닐까. 그러게 왜 그렇게까지 했어, 질 필요가 없는 걸 왜 나서서 등에 지고 살았어, 하는 냉소. 사실 내 몫을 하고 살려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게 맞는데, 그냥 내가 내 몫을 포기해 버리고 적당히 얹혀가려는 못된 마음을 알아버려서, 그때의 요령 없는 진심들이 우스워보이는 건 아닐까.

  

사방이 암전된 것마냥 막막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매사에 확신이 없다. 또 매사에 절박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어떻게든 생활은 굴러간다는 걸 알아버렸고. 극단적으로 감정이 기울진 않지만 또 그런만큼 움직일 동력이 부족해졌다. 얻은 게 있는 만큼, 손 안의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것들이 있으니 어딘가 허무하다. 점점 나아지는 나라는 건 착각에 불과할 뿐인 건가,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문제를 떠안게 되는 건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나아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건 대체 뭘 위한 걸까.

 

무슨 결론이 나든, 이제는 정말 자의든 타의든 열심히 발을 굴려야 하는 순간이 와버렸는데, 어째 마음이 계속 헛돈다.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의 시간을 보냈구나, 하는 아연함이 울컥울컥 의욕을 덮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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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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