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생각에도 물꼬가 필요해진 우리를 위한 질문들 -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

글 입력 2024.01.2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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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순간에 던져진 정확한 질문은 단순한 질문 그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곧 당연시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않아야 인지할 수 있고, 인지해야 곰곰이 뜯어볼 수 있다. 그래서 질문하는 일은 곧 그에 대해 진정으로 생각해보겠다는 선언이다. 잠겨있는 채 흘려보내고 말았을 것들을 굳이 건져올린다는 것, 매끈했던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고 자꾸 마음에 걸리는 생각의 요철들을 마주하겠다는 것.

 

하지만 의식을 뚜렷하게 이끄는 좋은 질문을 던지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나부터도 그렇다. 속 시끄러운 생각을 치열하게 이어나가기엔, 대부분의 하루하루가 팍팍하니까. 매일같이 밀려오는 당장의 과제들을 해치우고 나면 피로감이 몰려오기 마련이고, 그렇게 골몰할 수 있는 힘을 잃은 채로 습관처럼 직관적인 달콤함을 찾게 된다. 나의 기력과 시간 모두 한정되어 있으니, 예열 시간이 따로 필요없는 즉각적인 즐거움을 좇는 것이다.

 

그렇게 마땅한 재료를 넣지 않은 빈 냄비를 데우듯 의식을 공회전시키다보면, 어느 순간 새카맣게 과부하가 걸렸지만 정작 속은 텅 비어있는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눌어붙은 마음 앞에 막막해지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알 수 없다. 어딘가 공허하다는 것만은 분명한데, 당장의 피로를 해소하는 습관만 익혀왔으니 말이다.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은, 이런 아득함 앞에서 마음을 채우기 위한 첫 마중물이 될 질문들을 대신 부어내려 준다.


 

[표1]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jpg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탐색하고 해석하는 것은 철학자가 된다는 의미의 본질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_본문 23쪽

 

 

사실 '일상' 같은 수식어를 간단히 붙이기엔, 철학이라는 말은 어쩐지 무시무시해보인다. 무언가 심오한 사유를 거친 단단한 결론을 내어놓지 않으면, 그 앞에서 어설프기 짝이 없어질 것 같은 기분. 하지만 책은 그렇게 움츠러든 우리를 툭, 하고 가볍게 앞으로 밀어준다. 철학자의 본질은 꼭 거창한 것에 있는 게 아니고, 말마따나 우리 존재가 매일같이 하는 고민들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도입과 함께.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지금 느끼는 감정의 정체는 무엇인지, 세상을 살아가며 당연한 듯 매일 던져오던 질문들을 좀 더 면밀히 뜯어보고자 한다면 준비는 충분하다.

 

그래서일까, 책은 동서양의 여러 철학 사상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늘어놓거나 특정한 정답지를 들이밀지는 않는다. 저자는 그저 생각의 물꼬를 터준다. 모두가 한번쯤은 생각해보는, 또 생각해보아야 하는, 하지만 명확히 질문할 수 있는 사유의 언어를 갖추지 못해 어렴풋한 채로 두었을 것들을 명확히 짚는 물음으로. 삶과 불안, 관계와 세상. 물음은 직관적이고, 일상적이고, 보편적이지만 결코 얕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항상 인류가 고민으로 끌어안고 논의해온 주제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책은 이 오래된 의문에 대해 먼저 고민해본 자들의 사상을 '일례'로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책은 여러 가지 철학적 요약을 소개하지만 결코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하이데거, 공자, 불교... 40가지의 순간이라는 부제에 걸맞도록 다양한 사상이 등장하지만 이는 우리가 품은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제시될 뿐, 거스를 수 없는 진리처럼 다뤄지지는 않는다. 당신의 오랜 고민에 대해 앞선 현인들은 이런 답을 내놓았는데, 이런 생각은 어떠냐는 듯 철학은 슬며시 들이밀어진다.

 

 

스피노자에게 철학의 과업은 세상만사, 특히 우리 자신의 고통과 실망을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까마득히 멀리서 혹은 다른 별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듯이 말이다. 그처럼 아득히 높은 곳에서 보면 우리를 괴롭히는 일들은 더 이상 그리 충격적이거나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_본문 76쪽

 

 

그렇게 책을 읽어나가며 여러 질문들을 마주하다 보면, 각자의 삶에 숱하게 널려있던 철학의 재료가 되는 순간들을 비로소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삶의 고통을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스피노자의 견해를 보고 있자면, 나는 모든 것이 고통스럽다가도 그 고통마저 덧없게 느껴지던 초연한 절망의 기억이 떠올랐다. 유려하게 정리된 철학자의 언어로 그 순간을 다시 검토하자 나의 기억은 단순한 개인의 경험으로 그치지 않고, 좀 더 단단한 교훈이 될 수 있었다.


짤막하게 소개된 사상들과 사유를 돕는 이미지들을 통해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다. 나의 경우처럼 자신만의 기억을 떠올려보며 생각을 확장시켜볼 수도 있겠고, 감질맛나게 소개된 사상들을 좀 더 탐독하고자 그들의 저서를 직접 찾아 끙끙거리며 읽어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건 그 방식이 어떻든, 텅 빈 마음 앞에서 맞닥뜨린 한계를 부수려면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완전히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발상조차 어렵게 하는 요즘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마비된 사고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필요하다면, 이 책과 함께 산책하듯 내 안의 생각들을 거닐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조금조금 쌓아올린 나만의 질문과 답변들은, 어느 순간 당신의 삶을 지탱할 중요한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황수빈.jpg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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