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애매한 재능을 자랑하기 [사람]

글 입력 2024.01.1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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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엄청난 실력으로 화제가 되고 기어코 우승까지 해내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보다 떨어진 사람들에게 더 마음이 갔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도 종종 그들의 근황을 찾아보며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으면 안도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누가 봐도 재능이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는데 이제는 잘하든 못하든 무언가를 당당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더 멋있어 보인다. 그다지 뛰어난 실력이 아니라도,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해도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꾸준히 해내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특히 재능이라는 부분이 도드라질 수밖에 없는 예체능을 오래 하면서 더 느꼈다. 감탄이 나오는 실력을 가진 사람도 당연히 멋있지만, 그보다는 실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정말 자신의 작업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 더 빛나 보인다. 사랑하는 것에 애정을 가지고 당당히 자랑하는 사람이 부럽고 멋있어 보였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걸 동경한다던데 아마 내가 그러지 못해서인 것 같다. 아직 나는 내 부족함이 부끄럽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과 비례하지 못하는 내 애매한 재능 때문에 당당하게 뭔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쉽지 않다. 그 뒤에 따라오는 "좋아한다면서 그 정도 밖에 못 해?"라는 의문이 두려워서 늘 좋아한다고 말하기 전에 "아 별로 잘 하지는 못하는데-" 라는 말로 미리 방어를 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분명 그림 그리는 거 꽤 좋아했는데. 오히려 미술을 전공하고 나서부터 그림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려고 하면 말문이 턱 막혔다. 오랫동안 했던 바이올린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할 때 실력으로 자리가 정해지면서부터 즐기지 못했다.

 

사실 나는 그림을 뛰어나게 잘 그리는 전공자 친구보다 같이 드로잉 카페에 가서 재밌다며 신나게 그림을 그리는 비전공자 친구가 더 좋아 보였다. 바이올린도 잘해서 맨 앞자리를 차지한 친구보다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고 뒷자리에서도 즐겁게 연주하는 친구가 더 부러웠다.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끄적끄적 내 생각을 기록하는 일을 참 좋아했는데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고 잘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내가 좋아하던 글 쓰기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최근 가진 모임에서도 다른 분들의 잘 쓴 글들을 읽고 나니까 그에 비해 내 글은 한참 부족한 것 같아서 글을 쓰는 게 더 부담스러웠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게 생기면 그걸 잘하고 싶어지는데,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니까 굉장히 모순적이다.


 

예술에는 정해진 답이 없어서 좋다. 정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 문제 같은 거랑 다르게 예술은 각자의 주관적인 해석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화하니까.

 

정확히 무엇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는 예술의 그 매력을 사랑한다.

 

 

예전에 전시회를 감상하고 썼던 글 중 일부분이다. 예술에는 정답이 없어서 좋아했다. 근데 왜 나는 모든 일에 정답을 맞히고 싶어서 이렇게나 끙끙거릴까. 사실 그 누구도 나한테 잘 해내야만 한다고 압박을 주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즐기지 못하는 게 서글프고 억울해서 이제 나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내 애매한 재능을 사랑하고 마음껏 자랑해 주기로 했다. 타고난 재능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자신감과 애정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

 

그렇게 내 작은 재능들을 아껴주고 사랑해 주다 보면 그 작은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내 삶에 스며들고 쌓여서 언젠가는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줄 거라고 믿는다. 쉽지 않겠지만 다시 흔들릴 때마다 이 글을 읽어야겠다.

 

 

[성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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