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십이만오천육백분의 시간의 사랑 - 뮤지컬 렌트

그놈의 사랑이 뭐길래
글 입력 2024.01.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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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뮤지컬렌트] 포스터.jpg

 

 

뮤지컬 <렌트>는 나에게 특별한 추억이 있다.


처음에는 친한 친구가 중학교 3학년 때 뮤지컬부를 만든다고 함께 하자고 하길래, ‘그래? 재미겠다! 하자!’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단순히 신청하면 될 줄 알았는데 오디션까지 있었다. 나는 박치에 음치였는데. 커다란 강당에서 체육선생님과 초빙 보컬 선생님 앞에서 부끄러운 노래와 춤을 보여줬다. 무반주에 내 목소리가 강당에 넓게 울려퍼지며 숨 막혔다. 당연히 떨어진 줄 알았는데 합격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알고 보니 모두의 이름이 있었다.)


 방과 후에 모여 노래를 배우고 춤을 췄다. 어디에서 공연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 시간을 즐겼다. 그때 처음으로 배운 노래가 ‘Seasons of love’였다. 뮤지컬 <렌트> 2부 시작에서 “오십이만오천육백분의 귀한 시간들~” 부르는데 가사와 멜로디가 머리 속에 저절로 맴돌았다. 

 

사랑하기도 부족한 “오십이만오천육백분”의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냐는 가사가 깊숙이 박혔다. 

 

나 12년 동안 뭘 했을까?

 

 

 

소외된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리고 하나의 노래로 만든다.


 

뮤지컬 <렌트>에서 다루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때 당시 주목하지 않았던 많은 사회적 문제와 얽혀있다. 동성애, 에이즈, 재개발 지역, 마약 등. 


재개발 지역에서 마크와 로저가 옥탑방에서 함께 살면서 땔감이 없어서 로저 공연의 전단지와 마크의 글을 불태우는데 사용한다. 크리스마스의 흰 눈을 ‘마약’으로 비유하고, 친구와 에이즈 모임을 가고 재개발 반대 시위를 하며 ‘저 달까지 가자’고 함께 사이버 젖소가 되어 음메를 외친다. 


특히 모린이 관객들에게 같이 ‘음메’를 외치자고 함께 ‘음메’를 외칠 땐 이상한 쾌감이 들었다.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가 되는 걸 공연을 통해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크와 친구들이 살기 고난하고 힘들지만 버틸 수 있었던 이유도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감 때문이었을거다. 방문을 닫고 사는 로저에게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마크도 있다. 오히려 친구들에게 집세를 내라고 독촉하는 친구 베니가 오히려 외로워보였다. 

 

 

[2023뮤지컬렌트] La Vie Boheme.jpg

 

 

 

‘La vie Boheme’


 

젊음의 특권을 ‘자유’라고 자주 말한다. 선택의 책임을 져도 되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라는 의미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뮤지컬 <렌트>의 주인공들이 선택한 ‘자유’는 그런 자유와 다르다. 자신들의 선택한 자유가 무엇을 포기한지 명확하게 알면서도 책임까지 더해진 더 무거운 자유다. 


그래서 사랑을 알면서도, 부정하는 마음도 뒤섞인다. 로저는 과거 연인이 자살을 하고, 여러가지 사건으로 그저 세상에 평생 남을 곡을 쓰고 싶다는 목적을 가지고 세상과 담을 세우며 산다. 그러다보니 미미에게 끌리지만 그 마음을 쉽게 보여주지 못한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니까. 


반대로 콜린과 엔젤은 서로가 에이즈 보균자인 걸 알면서도 사랑을 주저없이 선택한다.  


뮤지컬 <렌트> 속 주인공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냐”고 되묻고 싶었다. 미래의 불안함을 품은 채 오늘의 희망을 노래하는 일이 미래를 수시로 쳐다보는 나에겐 가장 어려운 일이다. 왜 예술이 사랑을 그토록 애타게 말하는지 이해하는게 나에게 남은 숙제처럼 느껴진다. 이해가 아니라 진심으로 느껴야 하는데 12년이 지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 

 

 


‘No day buy today'


  

 

“어제를 돌아보면 후회가 있고

내일을 바라보면 불확실하다.

그 사이에 지금 여기의 시간이 있다.”

 

-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산다는 건 증명을 하며 살 필요가 없는데, 가끔 그 사실을 잊곤 한다. <렌트> 속 주인공들이 추구하는 ‘자유’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보다 본인들이 바라는 대로 산다. 그렇게 사는 삶이 아슬아슬해보이고 위태로워 보인다. 에이즈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절망에 빠져 우울해하지 않는다. 


결국 엔젤의 죽음을 통해, 친구들은 깨닫는다. 남는 건 사랑 뿐이다. 그것도 내일이 아니라 오직 오늘 뿐이다. 언젠가는 찾아오지 않는다. ‘희망’과 ‘사랑’이라는 어려운 낙관을 선택한다.  


중학교 졸업식 날, 다같이 ‘Seasons of love’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라가서 불렀다. 오디션 날 혼자 고요하게 채운 강당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뮤지컬부 친구들이 함께 있었다. 노래 실력이 어땠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떨림과 설렘은 12년이 지난 잊을 수 없다. 


엔젤이 친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던 것처럼 삶은 추억과 사랑을 먹고 사는 것 같다. 여전히 사랑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런 게 사랑일지도 몰라 짐작하며 12년 동안 사랑을 먹고 살았던 것 같다. 

 

각박한 삶에서 사랑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디에나 있는 게 '사랑'이다. 

 

 

 

아트인사이트_에디터.jpg

 

 

[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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