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무해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 [사람]

글 입력 2024.01.1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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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앞코에 구멍이 뚫린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고도로 발달한 거지는 환경 운동가와 구분할 수 없다”라는 밈을 던지며 이 신발이 가장 편해서 버릴 수가 없다며 웃었다. 그날따라 친구가 고등학생 때부터 사용해서 나에게도 익숙한 검은 백팩과 그 옆구리에 꽂혀 있는 낡은 텀블러가 멋져 보였다.

 

나의 연말 루틴 중 하나는 한 해 동안 잘한 것과 아쉬웠던 점을 정리하고 다음 해에 실천하고 싶은 가시적인 목표와 비가시적인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2023년을 돌아봤을 때 이 전해와 달리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를 내서 뿌듯하고 기뻤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옷과 가방으로 가득 차 발 디딜 틈 없는 옷방과, 대조적으로 한없이 가벼운 통장을 보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작아지는 20대 중반,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에서 나를 돌볼 시간이 부족했다. 불안하고 공허한 마음을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과 가방, 신발 같은 것들로 쉽게 달래려고 했다. 그럴듯한 겉치레로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 줄 알았다. 그렇게 나의 불완전한 마음을 감추려 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은 오히려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플렉스’, ‘탕진잼’ 등의 유행어는 마치 소비가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되어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결제 버튼과 배송을 기다리는 동안의 짧은 설렘 뒤에 남은 것은 오히려 과소비에 대한 후회, 그리고 무엇보다도 버려질 물건들이 환경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자책이었다.

 

취향과 쓸모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구매한 물건들은 금방 쓸모를 잃었다. 쓸모를 잃은 물건들은 구석에 쌓이고 방치되어 내 마음을 무겁게만 만들었다. 무분별한 소비는 나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 그리고 나아가 지구를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머지않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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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경각심을 주고 싶었던 나는 우선 내가 버린 쓰레기가 된 물건들이 가져올 미래를 직시하고자 했다. KBS 환경 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를 시청했다. 우리가 빠른 유행의 흐름과 저렴한 가격에 따라 쉽게 사고 버리는 옷은 이미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섰다. 1년에는 1,000억 벌의 옷이 만들어지고, 같은 해에 330억 벌의 옷이 버려진다.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료와 물,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졌으나 금방 버려지고 마는 옷들은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아파트 단지마다, 골목마다 비치된 옷 수거함에 넣으면 어딘가로 가서 좋은 일에 쓰일 거라 믿었던 헌 옷들이 사실 대부분은 재활용되지 못하고 개발도상국 도시의 강가에 쌓인다는 사실에 놀랐다.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옷은 바다에 미세 플라스틱을 흘려보내며 지구를, 결국엔 인간을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뒤 옷과 환경에 대한 생각이 심화되어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버려진 옷들이 발생시키는 환경 오염의 실태 뿐만 아니라 값싼 옷을 만들기 위해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가 기분전환으로 구매하는 옷을 만들기 위해 먼 나라의 아동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시급 몇 백 원을 받기 위해 하루에도 몇 시간씩 일한다.

 

내가 큰 생각없이 하는 행동들이 일으키는 연쇄적인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것이 어떤 형태로 나에게 돌아오는지도. 가벼운 소비는 무거운 결과로 돌아왔다. 개인적 측면으로는 임시방편적인 방법이었을 뿐 진정으로 마음이 나아지는 길이 아니었으며, 진짜 큰 문제를 덮어버리고 내가 정말 원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렸다. 지구적 관점에서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원인이었고, 인권 침해와 노동력 착취를 불러오는 행위였다.

 

다른 어떤 존재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살고 싶다. 더 이상 나의 즐거움은 몇 번 입고 버려질 예쁜 티셔츠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나는 누군가가 주입한 것이 아닌, 진짜 내가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리고 물질적인 것보다 더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행복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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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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