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실의 증상 - 신시아 오직 '숄' [도서]

글 입력 2024.01.0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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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단편 소설을 읽을 때면 장편소설보다도 묵직한 “한 방”에 압도되는 경우가 있다. 「숄」은 그야말로 단편소설만의 강렬한 “한 방”을 증명해 냈다.

 

“숄”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마그다’를 숨길 수 있는 피난처이자, 굶주림을 덮을 수 있는 “린넨 젓”(13)이며 ‘스텔라’가 뺏어서라도 갖고 싶어 했다. 마침내 스텔라가 숄을 빼앗자, 마그다는 처음으로 소리를 지른다. 살기 위한 외침이었던 울부짖음은 결국 마그다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미 “검은 군화”에게 들켜버린 존재를 구하려면 로사 역시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딸을 구할 수 없는 마그다는 그저 덮어줄 수 없는 “숄을 쥐고 입에 쑤셔 넣었다.” 비극의 상황에서 자신의 울음 역시 참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울부짖음이 마를 때까지 마그다의 숄을 마셨다.”(30)로 끝나버린 단편 소설은 비극적이다.

 

2천 단어 정도의 짧은 분량임에도 「숄」은 강력하다. 로사, 스텔라, 마그다 세 인물이 뚜렷한 만큼 이들의 상황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굶주려 딸에게도 젖을 줄 수 없는 상황은 “죽은 화산, 멀어버린 눈, 싸늘한 구멍”(13)이 되었다.

 

자신의 생존보다도 늘 딸에게 먹이를 양보했으나 결국 딸을 잃고 “꾸역꾸역” 울음을 참는 엄마가 “숄”을 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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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의 이야기인 「로사」의 첫 문장은 “미친 여자이자 과거의 쓰레기로 살아가는 로사”(23)이다. “미친 여자”라고 단언할 만큼 딸의 죽음을 목격한 후 로사의 상태는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는 딸의 죽음을 부정하고 “도끼로 자기 가게를 부순 여자”가 되었다.

 

트라우마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는 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사의 상태는 ‘치유’에 도달하기는커녕 ‘상실’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철조망”을 보고 괴로워하며, 같은 유대인이라고 해도 “당신은 거기 없었잖아요.”라는 말로 당사자성을 부정하며 연대보다는 선을 긋는다.

 

로사는 자신의 아픔을 공유할 수 없는 상황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을 개선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누구나 겪을 수 있고 감당하지 못할 고통임을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생생한 고통을 전달하려 하는 ‘진정성’의 서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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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를 읽을수록 로사를 신뢰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숄」에서 그 남자들 중 하나의 아이일 것이라 했던 은근한 추측을 로사는 부정한다. 그러나 그 변론은 신빙성이 없다.

 

 

“스텔라가 하는 비난은 모두 그 애의 배설물일 뿐이야. 네 아버지는 독일인이 아니야. 나는 어느 독일인에게 한 번 이상 강제로 당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몸이 아파서 임신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어. 스텔라는 원래 천성이 외설적이어서 네 아빠가 더러운 무장 친위대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떠올린 거야! 스텔라는 내내 나와 함께 있었으니, 내가 아는 건 전부 스텔라도 알고 있어. 그들은 나를 그들의 매음굴에 집어넣은 적이 없단다. 절대 그 말을 믿지 마라, 나의 암사자, 나의 눈의 여왕! 내가 너한테 하는 말에는 추호의 거짓이 없어.”(69쪽)

 

 

긴 문장으로 자신을 변호하던 로사는 후술되는 문장에서 “거짓말하는 힘.”(71)을 언급한다. 즉, 마그다에게 보낸 편지에서의 고백은 진실이 아니다. 스텔라를 비난해야만 하는 문장을 나열하면서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한다. 신뢰할 수 없는 로사의 진심이 드러나는 문장은 오히려「숄」에서 보인다.

 

 

“로사는 오늘 마그다가 죽으리란 걸 알았다. 동시에 로사의 두 손바닥에는 두려움이 가득 섞인 기쁨이 흘렀다.”(16쪽)

 

 

매일 조바심나게 했던 딸이자 자신과 그 남자들 중 하나의 자식인 마그다가 자신의 품(숄)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기쁨”이 흘러버렸다. 그 죄책감 때문일지 로사는 소설에서 종종 스텔라를 “죽음의 천사”라고 부른다.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나쁜 인물을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로사는 자기 내면을 알고 있을 것이다. 로사는 “부끄러움”을 안다. 퍼스키와 대화할 때, 그리고 속옷이 사라졌을 때, 과거를 떠올릴 때면 자신이 “영어”를 쓰는 인물들과는 다르다고 구분한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기란 쉽지 않다. 딸의 죽음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직면해야만 한다. 그러나 로사에게는 그 현실조차 벅찬 지옥이었을 것이다.

 

로사는 진실을 마주하는 대신 타인에게 “수치심을 주는 힘”(92)을 사용한다. “우리가 태어난 고향의 삶”을 ‘진짜’의 삶이라 여기고 “당신은 거기 없었잖아요.”라는 말로 다시 경계를 세운다. 이 증상적인 문장은 소설 내에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로사는 “미친 여자”일 것이다.

 

그저 이 현실을 목격하기만 할 수밖에 없는 독자들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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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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