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

유년시절, 그가 사랑했던 파리
글 입력 2023.12.3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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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 ‘메리 포핀스’ 친언니가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대신하고자 어머니와 나를 위한 연말 선물을 보냈다. 자신이 꼭 가고 싶은 전시였다며 대신 보고 알려달란다. 신종 심부름인지 특별 기프트인지 귀차니즘을 무릅쓰고 예술의 전당으로 향한다. 선물은 고맙지만 추운 날 이게 무슨 고생이람. 대기 줄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진 허용 구간은 새끼손톱만큼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그녀의 소녀스러운 눈빛이 나를 붙잡는다.

 

“그림이 너무 예쁘네 참 따뜻하네~ 내 스타일이다~”

 

전시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누구의 영향으로 누구와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다. 그녀를 따라 마음을 가다듬고 그림에 집중하니 구석구석 보인다.

 

 

눈 오는 날.jpg

 

 

“아크릴로 그렸대. 아크릴은 금방 굳어버려서 빨리빨리 그려야 했을 텐데.”

“아크릴이면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불조심’ 쓸 때 쓰던 것? 유화가 아니었구나!”


“벽마다 경계가 참 자연스럽고 좋다. 건물이 어떻게 나뉘고 이어지는지 다 보여.”

“역시! 엄마는 또 뭐가 보여? 이건 어때? 저건?”


“대략적인 것만 그렸는데도 어쩜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고 당시 상황이 연상이 되네.”

“1930년대 파리를 재현하지 않고 자신이 받은 인상을 그린 것이래. 엄마가 그 인상을 느끼나 봐!”


“커플이 한 쌍씩 있다. 두 쌍 세 쌍 그려도 됐을 것 같은데?”

“한 쌍만 있어야 더 애틋하니까? 아이 러브 유, 유 러브미, 우리 둘만 쪽쪽.”


“그림마다 호텔이 있어. 호텔이 왜 이리 많지.”

“엄마 무슨 생각 하는 거양! 다른 것도 꼭 있어. 저기 강아지 보여? 키우던 강아지 ‘퀸’이래!”


미셸 들라크루아의 작품 200여 점을 보며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수북이 쌓인 눈, 언뜻 비치는 무지개, 전조등의 불빛, 마차를 이끄는 마부, 도시를 지키는 경찰, 가스등을 점등하는 사람, 전나무를 파는 상인 등 모녀의 대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시골마을 이보르에서 어머니와 나비를 채집했던 기억과 일몰을 함께 보던 기억을 표현한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마지막 정거장(섹션)으로 가면 화가의 인터뷰 영상도 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930년대 후반은 모두에게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저에게도 역시 아름다운 시기였습니다. 저는 행복한 어린아이였으니까요. 행복한 어린 시절을 살았다는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시작이었습니다.” - 미셸 들라크루아

 

 

미셸 델라크루아.jpg

 

 

미셸 들라크루아는 어린 시절 정말 행복했을까. 90세인 지금 과거를 회상을 했을 때 미화되어서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미화되었든 아니든 자신이 ‘행복한’ 어린아이였다고 말하는 화가가 매우 부럽다.

 

행복한 어린아이였다 말할 수는 없지만 나도 행복했던 기억은 있다. 꼬마 진돗개가 두 발로 서서 나와 같은 키로 반겨줄 때 행복했고, 자동차 밖으로 금빛 밭을 볼 때 행복했고, 할머니가 먹으라고 이것저것 주실 때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할머니는 한없이 따뜻하셨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기억나는 풍경은 잿빛 아파트와 바쁜 사람들이다. 자연과 진심이 더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릴 적 하곤 했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의 유년 시절을 기억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표현될까. 어떤 따뜻함을 느끼며 자라고 있을까. 학생들의 숙제를 검사하며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물어보면 서로 앞다투어 “저한테도 물어봐 주세요!” “제 하루를 물어보는 선생님은 선생님밖에 없어요!”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90세인 미셸 들라크루아는 마지막 날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처럼 큰 만족, 몇몇 기쁨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슬픔, 때론 짊어지기엔 무거운 슬픔을 겪었지만 그림만큼은 언제나 그를 놓지 않았다고, 그에겐 최고의 친구였다고 한다. 아흔에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있고 그것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 하는 그는, 젊다.

 

“엄마를 가슴 뛰게 하는 것은 뭐야? 엄마의 젊음을 어떻게 쓰고 싶어? 청춘이잖아.”

 

“~한 생각은 있는데 지켜봐야지.”

 

“헌신도 좋고 교육도 좋지만 행복하게 나이 듦을 보여내는 것이 가장 큰 거야. 특히 딸들에게는 엄마의 뒷모습이 중요해. 여자로서 엄마의 인생을 살아.”

 

미셸 들라크루아처럼, 행복하게 젊게.

 

 

 

김윤 에디터 명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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