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망없는 사랑에게 쓰는 편지

사실일리 없는 짧은 팩션(Faction)
글 입력 2023.12.2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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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사실과 픽션이 합쳐진 짧은 팩션(Faction)입니다.

* 팩션(Faction):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단어로, 사실에 근거에 재창조된 장르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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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나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중학교 때였던 것 같아.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이 참 많은 사람인데 왠지 너를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더라. 세상이 조용해지고 단순해지고 멍하니 자꾸 너를 보게 되더라고.


가만히 생각해봐도 역시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 다만 사랑이 늘 그렇듯 뚜렷한 순간 없이 어느새 내 삶에 스며들어 있는 너를 봤었지. 어느새 내 몸의 방향이 너를 향해있고, 내 시선 끝에는 항상 네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얼굴만 봐도 재밌는거지. 네가 좀 예뻐? 너는 내 인생에서 항상 기준이었어. 내 첫사랑. 사람들이 이상형이라고 부르는 주관적인 미의 기준이나 나의 환상의 원형은 너였어. 네 앞에선 항상 떨었고 재밌게 말을 이어나가지도 못 했지만 바보 같던 내 모습에는 사실 그런 사정이 있었다는 변명이기도 해. 첫사랑 앞에서 능숙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기억하지 못하는 듯 하지만 우리가 매주 무언가를 같이 하던 시절 나는 바쁜 아침에 종종 너가 좋아한다고 했던 딸기우유를 사서 건넸고, 부끄러움이 많던 나는 너에게 주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어 매번 먹고 싶지도 않던 나의 간식과 주변 사람의 몫까지 사들고 가곤 했지.


 그러고는 사람들과 함께 너를 데려다주고 나선, 집에 돌아가는 버스비가 아까워 40분 걸리는 집까지 걸어가기도 했어. 지금 생각하니 나도 참 청춘이었다. 그치? 그러니 사실 그 시절 나의 친절이나 다정은 너를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던 거야. 너는 그냥 내가 착하고 여기저기 다정한줄 알았겠지. 나는 사실 그런 사람은 아니야. 그 대상이 너여서 가능한 일이었지. 


너는 모르겠지만,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척 했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나는 너를 많이 좋아했어. 그것도 꽤 오랜 시간동안. 내 삶의 일부는 너를 떠올리는 일로 살아졌고, 나는 너와 함께하는 시간을 꿈꿨었지. 너랑 서울 예쁜 곳에 놀러가서 맛있는걸 먹고, 집 앞 카페에서 하루종일 수다를 떨다가 집에 데려다주고, 아쉬워서 늦은 밤까지 네 목소리를 듣다가 잠드는 그런 일상 말이야.


사랑에 이유를 덧대 설명하는 건 분명 직관에 논리를 부여하는 일일뿐, 너를 좋아하는 마음을 해부해 전시해도 논리적인 이유(결국 너를 언젠가 질려하고 다시 좋아하지 않게 될 이유가 되고 말) 따위는 찾지 못할 거야. 그럼에도 언젠가 네가 나에게 묻는다면 너의 빛나던 순간들과 내가 너를 사랑스럽게 여기는 나날들을 설명하기 위해 내 남은 시간을 전부 쓰고서야 겨우 이야기를 끝마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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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연애할 마음이 없다던 너에게 최근 연락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정황을 담긴 소식을 전해들었어. 누구와 그렇게 밤에 전화를 하고, 크리스마스에는 약속이 있었더랬지. 새삼스러운 일이긴 해. 너는 매력있고, 좋은 사람이니까 사람들이 너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일거야.


하지만 너를 생각하면 삶에서 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왠지 시간이 오래 지나도 말하지 못할것만 같아 이렇게 적어봐. 지금은 새벽이고, 너를 다시 만나고 꽤 긴 시간 너를 떠올렸으니까 한 번쯤은 이런 말을 적어도 괜찮겠지. 내 삶에 대부분의 순간에 네가 있었다고 말야.

 

내가 여기서 이렇게 용감해질 수 있는 이유는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해. 너에게 나는 결코 궁금한 세계가 될 수 없으니, 이곳에 쓰는 글을 너에게 몇 번이나 보내준 적이 있음에도 네가 이 편지를 읽을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 평생을 해보고싶었던 말을 여기에 적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말로 꺼내지 않아도 답을 알 것 같아서 하지 않았던 말, 네 얼굴 앞에서 눈을 쳐다보면서 말해보고싶었던 말을 말이야.

 

좋아해. 보고싶었어.

 


사랑아, 내 첫사랑아. 내내 행복하길.

 

네가 쓴 곡의 제목처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평생을 살길.


나는 또 전해지지 못할 말을 빈 종이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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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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