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사랑하는 법 - 사랑은 낙엽을 타고 [영화]

글 입력 2023.12.20 15:5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포스트-아포칼립스는 멸망 후 세계를 다룬다. 그러나 여기에서 멸망은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간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멸망 후에도 살아남은 인류가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되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이 장르를 다루는 리뷰에서 유독 멸망 후 세계와 지금의 유사성을 언급하는 것이다. 즉, 세계관을 빌린 판타지 이야기의 틀을 갖추고 있지만, 그 내면은 현실과 같다.

 

예컨대 멸망 후 세계에도 살아남은 자들끼리 인종, 성별, 나이 등으로 계급이 나뉘고, 물물교환 등으로 자본주의가 생긴다.

 

그러나 그 ‘난장판’ 사이에서도 사랑은 싹튼다. 살아남기도 급한 세상에서 사랑은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보편적인 감정으로부터의 사랑 말이다.

 

 

1.jpg

 

 

<사랑은 낙엽을 타고(Fallen Leaves)>(2023)는 지금 ‘이 시대’에서의 보편적인 사랑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2024년이지만, 라디오에는 지금도 이어지는 전쟁 피해가 보도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폭격당한 지역과 죽은 아이들과 실종자 소식이 이어지는데, 라디오를 듣는 안사(Ansa)는 마트에서 부당 해고된 노동자이다.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을 잃었다.

 

홀라파(Holappa) 역시 고된 노동 현장에서 일했고 술에 중독된 수준이었다. 전쟁은 이어지고 노동자는 보호받지 못하고 운도 없고 가난하다. ‘세계가 망하고 있다.’에 걸맞은 상황이다.

 

81분 분량에서 종종 보이는 건 유통 기한이 지난 음식, 철거된 건물, 파이프 등의 폐기물들이다. 버려진 것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물과 건조한 도시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두 인물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 사랑만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이 드러난다.

 

세계가 곧 망할 것 같아도, 혹은 이미 망했더라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이는 “당신 찾느라 신발이 다 닳았어요.”라는 말로도 전할 수 있는 감정이다.

 

 

2.jpg


3.jpg

 

 

“Hell on earth”에 다다른 세상에서 안사와 홀리파의 사랑은 발랄하지만은 않다.

 

분명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장르는 “코미디/로맨스”라고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로코’ 장르와는 거리가 멀고 소리 내며 웃는 유머보다는 오히려 농담에 가깝다. 달콤한 사랑보다는 Bittersweet한 사랑처럼 보인다.

 

인물이 환하게 웃는 모습과 같은 감정 표현은 나오지 않고 영화의 분위기는 건조하다 못해 버석버석하다. 마치 무표정한 얼굴만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대응처럼 읽힌다. 그 무표정을 바라보는 영화 바깥에 있는 우리만이 인물의 모습을 발견하고 해석한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그 경험을 만들어주는 장소가 된다.

 

 

4.jpg

 

 

영화의 원제는 지만, <사랑은 낙엽을 타고>로 번역될 만큼 영화에서 사랑은 핵심을 관통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노동자의 안전은 보호되지 않고 인간조차 부품이 되었다. 홀라파나 안나의 가족이 알코올에 의존했던 것도 개인이 극복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가혹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영화 속 말을 빌리자면, “우울해서 술을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마셔서 우울하다.”라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사랑은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갈 이유가 된다.

 

 

메인 포스터.jpg

 

 

[이승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