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왜 사라져 버릴 순간을 더욱 사랑하게 될까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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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던 영화나 드라마를 여러 번 보는 편은 아니었다. 이미 내용과 결말을 아는 데 같은 작품을 또 본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뮤지컬을 좋아하게 되고 나서 공연이라는 장르에서만큼은 왜 그렇게 사람들이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는지 알게 되었다.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는 것을 회전문을 돈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회전문을 돌게 될까?
그 이유는 이 세상에 같은 공연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같은 공연이지만, 같은 공연이 아니다.
같은 역할이라도 배우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또 상대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서도 배우의 표현과 연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심지어 같은 배우이고 상대 배우조차 같다고 해도 아주 작은 디테일의 차이로 공연은 매번 달라진다.
그리고 공연을 여러 번 보다 보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감동을 받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이 부분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끼고 나면 다음에 봤을 때는 나에게 또 어떤 부분이 새롭게 다가올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첫 번째로 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두 번째에서는 보이고, 세 번째에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생각보다 짜릿하다.
또 뮤지컬은 막이 내리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예를 들어 '베르테르'는 무려 5년에 한 번씩 돌아 오고 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뮤지컬도 있다. '더라스트키스'는 2017년 삼연 이후로, '도리안 그레이'는 2016년 단 한번의 초연 이후로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다행히 기다렸던 공연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전에 내가 봤던 그 공연이 아닐 수 있다. 뮤지컬은 새로운 시즌이 올 때 이전 시즌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수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삭제되는 넘버나 바뀌는 대사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연출과, 대사, 넘버를 다음에 또 볼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랜드파이널 공연 막을 내린 '아이다', 10주년을 기점으로 많은 부분이 수정된 올 뉴 '몬테크리스토'처럼 다시 돌아올 때 기존 공연과 많이 달라져서 원래의 버전을 다시는 보기 힘든 뮤지컬도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결국 공연은 내가 보는 그날에만 존재하고 사라진다. 내가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것과, 다시 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것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그게 바로 영화나 드라마처럼 ‘영상’이 박제되어 기록으로 남는 작품과 공연의 차이점이다.
[난 정말 꼭 알고 싶어 영원한 추억을 갖는 법 마법 같은 순간 지나가지 않게 간직해 두는 법, 사라지지 않게 시간을 병 속에 담을까 언제나 다시 열 수 있게 매일을 그 날처럼 살게] - 뮤지컬 레베카 '행복을 병 속에 담는 법' 넘버 중
우리는 순간을 잡아둘 수 없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어서 더 소중한 순간이 있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 공연의 매력을 느낀다면 당신도 어느순간 회전문 안에서 빙글빙글 돌게 될지도 모른다.
[성예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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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난자유롭고싶어
- 2023.12.05 09:5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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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뮤덕으로 회전문 도는 이유랑 감상이 너무 잘 와닿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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