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식에게 꼭 이렇게 살라고 말하고 싶어

글 입력 2023.11.2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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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꼭 이렇게 살라고 말하고 싶어"라는 글쓰기 주제를 받았다.

 

단 한 번도 자식을 갖고 싶다 생각한 적 없다. 어렸을 때 어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삶이 안정되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 했다.

 

30대가 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이고 매달 통장에 월급이 꽂히지만, 여전히 지구에 새 생명을 데려오고 싶은 욕망은 없다.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갈 곳을 잃고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 동물을 질식시키는 시국에 누구 좋으라고 인간을 생산해낸단 말인가.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 이후로 언제 이 행복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어느 날 그에게 교통사고가 나거나 불치병에 걸린다면?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들숨과 날숨, 단단한 육체, 사랑뿐인데. 그런데 자식이라니.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이미 사랑해버릴 대상을 가진다는 건 불안의 소용돌이 속을 맨몸으로 돌진하는 일이다. 내가 자식을 가진다면 감당할 수 없는 만큼 행복해서 필사적으로 그 행복을 나눠줄 대상이 필요하거나, 정신이 나갔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에게 혹시 자식이 "엄마, 어떻게 살아야 해?"라고 묻는다 해도 해줄 말이 없다.

 

나조차 넌 유일하고 소중한 존재야, 스스로를 사랑해, 남과 비교하지 말고 네 인생을 살아, 네 가능성은 무한해, 살고 싶은 살아도 괜찮아와 같은 힐링 에세이 제목 같은 말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 담배 끊으라는 골초의 조언 같은 말을 늘어놓을 바에 입을 다물겠다.

 

대신 말없이 자식을 꼭 끌어앉고 살아가면서 그가 만날 무수한 환희의 순간들을 상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라보는 보랏빛 노을, 책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문장들, 여행지에서 생전 처음 맛보는 음식, 온몸이 새롭게 깨어나는 감각, 오랫동안 바라던 것을 이룬 순간, 그리고 그 뒷장에 적힌 절망의 순간들. 환희와 절망은 제로섬 게임 같아서 영원한 기쁨도 슬픔도 없다는 사실, 인생이 너에게 주는 달콤함도 언젠가는 물리고 씁쓸함도 그럭저럭 즐기게 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

 

그저 그가 온몸으로 맞을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엄마도 잘 모르겠어. 그저 엄마는 너를 많이 사랑해, 하고 또 사랑할 뿐이다.

 

 


에디터 명함 최은지.jpg

 

 

[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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