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말랑한 고양이와 [동물]

두 고양이 관찰 일기
글 입력 2023.11.25 15:4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IMG_2613.JPG

 

 

0. 나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산다. 얘들은 벌써 오년 째 우리 집에 살고 있는데 나는 가끔 아직도 얘네를 보면 이 털뭉치들이 어떻게 나랑 같이 살고 있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두 고양이의 성격은 걔들의 외모만큼이나 달라서, 매일 길에서 많은 고양이들이랑 마주침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 고양이가 한 마리만 살았다면 나는 평생 그것만이 고양이의 전부인 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적을 얘기는 오 년간 함께한 내 고양이들의 습관과 행동 방식.

 

1. 노란색 큰 고양이 H는 비누 냄새를 좋아한다. 샴푸, 린스, 바디워시, 스킨, 로션 등 종류와 향을 가리지 않는다. 내가 샤워하고 나오면 거의 온몸을 다 핥아주려고 한다. 어떤 고양이 유튜버가 이 행동을 주인 몸에 있는 비누 향을 나쁜 것으로 인식해서 없애주기 위함이라고 하길래 정말로 그런 줄 알았는데 H는 진짜 비누를 좋아하는 거였다. 씻고 나온 내 팔을 두 손으로 꼭 잡고 핥아먹는다. 내가 머리를 말리려고 하면 방에서 튀어나와서 따뜻한 바람을 맞으면서 샴푸 냄새를 골골 맡는다.

 

2. 작은 검은색 고양이 C는 겁이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하루에 반 이상을 긴장 상태로 보낸다. 우리 집은 숨을 공간도 수직 공간도 많고 조용하기까지 해서 고양이에게 나쁘지 않은 환경일 텐데도 C는 항상 무언가를 경계하는 중이다. 가족들은 아마 어렸을 때 산에서 살았던 고양이라 그런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고 추측한다. 그런데 슬프게도 겁이 많은 고양이 C는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H도 사람을 좋아하지만,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일 때도 많은데, C는 잘 때를 제외한 거의 모든 순간에 사람을 쳐다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멀리 떨어져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다 긴장이 풀리면 야옹 울면서 머리를 갖다 댄다.

 

3. 노란 고양이 H는 한 층에 혼자 남아있는 시간을 싫어한다. 여기서 혼자라는 것은 사람과 고양이가 모두 없다는 뜻이다. C를 포함한 나머지 가족들이 전부 2층 거실로 올라가 방에 혼자 남으면, H는 우리가 들으라고 계속 야옹야옹 울기 시작한다. 고양이를 포함한 누군가가 본인을 확인하러 내려와 줄 때까지 끈질기게 그렇게 한다. 직접 올라오면 되는 것도 알면서. H가 너무 애처롭게 울어서 한번은 몰래 가 본 적이 있다. 그런데 편히 누워서 애처로운 척 목소리만 내는 거였다는 진실을 깨달은 뒤로는 다시는 먼저 내려가보지 않기로 했다. 참 배신감이 들었다. 

 

4. 작은 고양이 C는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종종 떨어뜨린다. 오로지 재미를 위해 그렇게 한다. C는 작아서 큰 힘은 없고 그래서 자잘한 집게 핀이나 에어팟이나 애플펜슬 그런 걸 쓱 밀어서 떨어뜨린다. 특히 자고 있을 때 몰래 와서 그런 행동을 하는데, 가끔 시끄러운 물건을 떨어뜨려 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는 일도 꽤 많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컵이나 화분을 떨어뜨린 적은 없어서 그냥 웃긴 습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 떨어뜨리면 안 되는 물건이 뭔지 아는 것 같다.

 

5. 고양이 C는 노랑 고양이 H보다 서열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크기 차이가 1.5배다. 평소에는 사이좋게 잘 지내다가도 종종 서열이 눈에 보일 때가 있는데, 특히 밥시간에 그렇다. 밥은 꼭 H가 먼저 먹고 그다음에 C가 먹는다. 처음에는 같이 먹었는데 H가 점점 커지면서 그렇게 됐다. 가끔 C가 좋아하는 습식 캔을 주는 날에는 참지 못하고 앉아서 같이 먹기도 한다.

 

그리고 H는 가끔 C 자리를 뺏으며 서열 정리를 한다. 창틀 위, 스크래쳐, 숨숨집, 해먹같이 편해 보이는 자리에 C가 앉아 있으면, H가 좀 있다가 가서 꼭 자리를 뺏는다. 어떨 때는 자기가 앉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뺏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 우리 가족은 항상 작은 고양이를 응원하지만, C는 최선을 다해도 항상 지는 편이다.

 

6. H는 딸기랑 블루베리, 바나나를 좋아한다. 그걸 고양이 간식보다 더 좋아해서 바나나 껍질만 까도 총총 달려 온다. 크게 주면 못 먹고 포크나 이로 작게 잘라줘야 먹는다. C는 육식 고양이다. 특히 닭을 좋아한다. 집에서 닭 한 마리나 치킨을 먹으면 자기도 먹고싶다고 야옹 운다. 줄 때까지 계속 울다가 한 조각 나눠주면 조용히 물러난다. 내가 근육량을 늘리려고 닭가슴살을 매일 먹던 때에 C가 참 좋아했었다.

 

*. 고양이 H는 털이 포근 따뜻 복실하고, 고양이 C는 털이 매끈 반짝 파삭하다. H는 말랑하고 C는 조그맣고 마른 고양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 글을 써둔 지 6개월 쯤 지났다. 그 사이 두 고양이의 행동 방식이 꽤 많이 달라졌다. 어쩌면 두 고양이가 그동안 철이 든 것 같기도 하다.

 

 

[신지이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