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아하는 마음은 죄가 없다 [영화]

영화 <성덕>
글 입력 2023.11.2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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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밤 12시를 기다리는 재미로 산다. 좋아하는 가수가 곧 컴백한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왕복하며 새로운 영상, 티져를 보고 살짝 설레는 마음과 회사 갈 생각에 착잡한 마음으로 균형을 맞추며 잠을 든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그룹에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멤버가 있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말도 안된다고 부정했다. 그동안 자컨에서 본 따뜻한 모습은 다 거짓이었을까? 관련 소식이 인터넷에서 한 가득 퍼지고, 내가 그 그룹을 좋아하는 걸 아는 친구들은 나를 떠보는 듯 물어봤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만약 잘못을 저질렀다면 당연히 사과를 해야 했다. 사건이 공론화 되고 며칠 후에 그 연예인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의혹이 진실로 드러났을 때,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술을 마셨다. 혼자 취해서 눈물도 찔끔 흘렸다.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 좋아하는 마음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마음이 크면 상처도 클 수 있구나.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죄가 없다. 그런 짓을 저지른 놈들이 문제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전부 부정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그동안 내가 그를 위해 쏟아 부은 시간이 공중으로 사라지는 것 같아서… 예전만큼 그 멤버를 좋아할 수 없고, 살짝 흐린 눈으로 본다.


근데 왜 팬이 부끄러워 해야해? 왜 팬이 죄책감을 느껴야해?

 

 
“그 인간을 좋아했던 과정이 중요하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결과가 중요하지 않은게 아닐까?”
 

- 영화 <성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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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심이란 좋아하는 사람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가 무대에서 반짝이는 모습을 응원하고, 그리고 성취하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몰입했다. 덕심만큼 순수한 마음도 없다.

 

하지만 현장에 가면 가끔씩 현타가 왔다. 친구를 따라 간 출퇴근길에 맞으면 아플 것 같은 카메라를 든 사람들 사이에 몇 분 그를 만나기 위해 몇 시간을 서있었다. 그의 인생을 열렬히 응원하는데 내가 내 인생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는가? 물으면 yes 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현실도피를 하기 위해 덕질이라는 수단을 이용했던 적이 있다. 덕질은 현실에 벗어나 환상에 빠져 살게 도와준다. 공연이 내 인생을 구원할 것 같이 간절했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다.

오세연 감독이 정준영을 좋아하는 마음을 단순히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의 추악한 행동도 추적한다. 내가 좋아한 사람이 무대가 아닌 법정에서, 환호가 아닌 비난을 듣는 모습을 지켜본다.

 

감독의 덕질의 역사에 따라, 나의 덕질의 역사를 돌아봤다. 나는 많은 덕질 망태기를 보유 중이다. 하나를 깊이 파본 사람은 다른 것도 깊게 판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아주 쉽다. 아이돌, 배우, 영화, 책, 작가, 팟캐스트 등 최근에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추가되어 통장이 울고 있다.

 

이제는 과거형 ‘좋아했다’로 바뀐 것들도 꽤 있다. 어느정도 애매한 깊이와 넓이를 추구한다. 추구할 뿐, 어느새 흠뻑 빠진 나를 발견 할 때도 많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느정도 여유가 있거나 절박해야 가동된다. 이것도 할 수 있거나 이것밖에 없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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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은 재능이다.


 

위험부담이 있지만, 좋아하지 않으면 모를 그런 세상이 있다. 좋아하는 영화의 대사를 되새기며 하루를 살아가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출근길을 가볍게 만들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점심시간을 버틴다. 좋아하는 마음도 좋아했던 마음도 나에게 언제나 남아있다. 좋아하는 구석이 많을수록 삶이 재밌어진다고 믿기에 나는 오늘도 좋아하는 마음을 여러 곳에 흩뿌린다.


성공한 덕후가 될 순 없겠지만, 성실한 덕후가 되고 싶다.

 

 

[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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