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생이 읽은 '동생이 생기는 기분' [도서/문학]

자매, 이상하고 재밌는 관계에 대하여
글 입력 2023.11.2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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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만화와 공감되는 에세이의 만남


 

이 책은 민음사 유튜브 영상에 처음 접했다. 당시 영상에서 민음사가 파격적으로 만화 형식의 책을 발간했다고 자랑하던 게 떠오른다. 언니와 싸워서 도서관으로 도망간 날,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러 에세이 코너를 향했고 이 책을 발견했다. 언니에 대한 원망이 최고점을 찍을 때 자매에 관한 책이라니. 운명 같다는 생각에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동생이 생기는 기분', '동생이 말하는 기분', '동생이 자라는 기분' 총 3장으로 이뤄져 있다.페이지마다 서로 다른 에피소드가 4컷 만화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장이 바뀔 때마다 짧은 에세이가 수록돼 있는데, 에세이의 시점은 동생과 언니가 모두 자란 상태여서 만화와는 다른 분위기를 띤다.

 

만화도 귀엽고 벅차올라 좋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에세이 부분이 너무 좋았다. '너무 좋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내가 원망스러워질 정도로 좋았다. 시간과 내 손목만 허락해 준다면 에세이 부분을 통으로 필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왜 이렇게 에세이 부분이 좋을까 물어본다면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작가의 문장 표현이 내 취향을 저격했다는 것. 두 번째는 현실적인 자매 사이를 그렸다는 것. '가족'이라는 이유로 갖게 되는 달콤 쌉싸름한 감정을 여과하지 않고 담아냈다. 첫 번째 이유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작가의 감정이나 생각을 은유적으로 혹은 구체적으로 정의한 것이 좋았다.

 

 

 

서정적인 일상을 담은 문장들


 

동생이 생기면서 주위에서 보내는 반응에 대한 생각을 적은 '외동' 파트에서 "형제가 생기는 일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가 되는 일 아니다. 0과 1이 되는 일도 아니다. 1과 1이 만나 서로 곱하고 나누는 일이다"라는 부분이 있다. 외동 혹은 동생이 생기는 것 모두 '좋다' 혹은 '나쁘다'로 평가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지지고 볶을 뿐이라는 걸 저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평소 알고 있던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일만큼 요즘 재밌는 일이 없다.

 

또 이혼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커피포트가 사라졌다' 파트에서는 "냄비에 물을 채운다. 불 위에 올려놓는다. 찬찬히 끓어오르게 될, 그러나 아직은 잔잔한 물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커피포트만큼의 빈자리를 느끼며 엄마가 조금 보고 싶어졌다."가 있다. 나왔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서정적인 문장. 가족 구성원의 상실로 인해 느껴지는 사소한 쓸쓸함을 일상 속 커피포트로 표현할 수 있다니. 버스 안에서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성평등 언어를 뒤늦게 접하고 고정관념이 담긴 단어를 사용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는 '유아차' 파트에서는 "(중략) 그날의 나는 유아차를 알게 됨으로써 일상어였던 유모차를 다시 알게 되었다. 유모차를 다시 알게 만드는 것. 낡은 관습을 깨닫게 하는 것. 일상에 녹아 있는 잘못된 생각을 분리하는 것. 언어의 변화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 그것이 유아차가 존재하는 이유, 새로운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였다."가 좋았다.

 

문장을 읽어내리면서 내내 맞지, 맞지, 그거지, 그러네! 속으로 이야기했다. 사실 서술된 내용이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 아니다. 모두가 다 알고 동의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느끼기만 하는 것과 느낀 것을 정확히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높은 차원의 작가의 표현력이 부러워졌다.

 

 

 

자매, 양가적인 감정을 지닌 이상한 관계


 

이제 현실적인 자매 사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이 솔직하게 나타나 좋았던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렸을 때 동생이 좋아하던 1000원짜리 문방구 스티커를 당시에 더 사주지 못했던 후회를 담은 '문방구 스티커 코너'의 "그제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문방구 스티커 코너에 대한 묘한 슬픔은 구제될 수 없다. 그 애는 자라버렸다. 미안함이란 한숨에 굴러가는 먼지 같다. 이따금씩 날리는 먼지에 편도선이 칼칼해진다. 우리는 그렇게 때때로 아파오는 편도선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로 후회러인 나는 공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 말을 하지 말 걸, 좋게 이야기했을 때 해줄걸.' 누구보다 가깝게, 피로 연결된 사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가족을 홀대하곤 한다. 그리고 뒤늦게 후회한다. 그러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런데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나중에 해준다고 해서 과거의 결핍을 해결할 수는 없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가슴 한편에서 사무치는 감정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붙고 마는 가족 사이를 표현한 '성인기'가 있다. "자매는 도대체 뭘까? 미워죽겠는 내 동생, 가끔은 너무 짜증 나고 싫어서 왜 동생이 있나 싶다. 먹고 치우는 그릇을 보면 그 순간에는 내 인생의 유일한 적처럼 분노가 솟구친다. 그래도 말라붙은 그 그릇이 맛있는 걸 먹은 흔적이었으면 좋겠다."

 

까도 내가 깐다, 내가 까도 너는 까면 안 된다의 대표 예시, 가족. 왜 저래? 라는 생각이 들 때면 인생 뽑기 대차게 실패했다며 언니를 원망하다가도, 어느 날 언니가 왜인지 주눅 들어 보이면 어떤 인간 때문인가 공격력이 올라가며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어진다. (물론 실제로 다 해주진 않는다, 그것이 가족이니까) 역설 그 자체인 관계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문장이 있나 싶다.

 

 

 

책이 알려 준 사실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책의 주인공 ‘수진이’가 부러워졌다. 나의 성장을 이토록 생생하게 기억해 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독서의 시작은 ‘언니가 미워서’였지만, 결국 독서의 끝은 ‘그래도 가족이 좋지’이었다. 나와 비슷한 자매 에피소드를 접하니 지금은 다 까먹었다고 생각됐던 나의 어린 시절을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우리의 미래에 서로가 있을까.. (중략).. 우리 삶은 그렇게 멋진 영상물이 아니라서. 그냥 이수희(언니)와 이수진(동생)이라서. 여전히 이수진은 이수희에게 쌀쌀맞고 이수희는 이수진을 보고 파르르 떤다." 사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가족 사이가 좋아지는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집 자매도 그냥 나와 000이어서. 나와 언니는 오늘도 싸운다.

 

우리의 미래에 서로가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곤 하지만, 타임머신을 갖고 있지 않는 소시민이라 정답은 알 수 없다. 가족이라는 사실 외로는 공유하는 게 없어 각자 독립하면 충분히 끊길 수도 있겠지만…책에서 이야기했듯 ‘가족 관계가 주는 연대’는 우리의 평소 생각보다 강하다. 그러니 벌써 걱정하기보다는 그냥 있는 대로 살아야겠다. 그게 우리니까.

 

 

[이도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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