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남의 말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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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입력 2023.11.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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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랑 이야기할 때도, 글을 쓸 때도 '인터넷에서'라는 말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거 봤어?'는 스포츠 경기가 아닌 이상 대체로 인터넷에서 떠도는 것들이다. 인터넷에서 본 기사, 유머 글, 영상 클립, 트윗이 화제가 된다. 주변 사람한테 전해 들은 것도, 추천받은 것도 시작은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후기가 시작일지도 모른다. 말에서 말로만 옮겨지는 건 누구의 근황이나 사건사고 같은 것들.


생각해 보니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서 가끔 짧은 추임새만 넣으며 살아오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졌다.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형태. 이번엔 그동안 반복해서 들었던 내용에 내 생각을 덧붙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주제는 젊은 세대의 소비.

 

소셜 미디어에서 다들 소비만 전시하니까 나만 가난한가? 생각했다는 글이 한 번씩 떠오른다. 패션카페에서 시작된 건데 머플러는 아크네, 겨울 외투는 한섬이라는 게 공식처럼 커뮤니티를 떠돌았고 여전히 잔재가 남아있다. 못해도 2~3년 된 플로우인데 여전히 머플러 추천해달라고 하면 아크네부터 나오고 향수 물어보면 최소 조말론 이런 식이다. 본인이 사용하고 좋아서 추천하는 경우도 있지만 남들이 그렇다니까 앵무새처럼 물어 나르는 경우도 있다.

 

이건 플로우가 돌아올 때마다 반복되는데 인터넷에 한번 새로운 정보가 퍼지면 사람들은 그걸 정답처럼 퍼뜨리고 있기 때문에. 예를 들자면 인터넷에 유럽의 물가가 싸고 과일값이 싸다는 글이 올라오면 바로 댓글로 유럽의 난민, 이민자 노동 착취를 고발한 방송 캡처나 관련 게시글이 반박처럼 달린다. 그 게시물을 본 사람들에겐 유럽의 낮은 과채류 값=노동착취가 되어있다. 사실은 기후 조건, 규모, 보조금 등 여러 가지가 합쳐진 결과물이지만 거기까지는 정보가 퍼지지 않아서 제대로 정정되지 않고 있다. 인터넷이 그렇고 요즘 사람들이 그렇다. 내가 본 남의 말로만 대화를 이어간다.


잘못된 정보가 팩트 체크 없이 공유된다는 게 현대사회의 큰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본인이 원하는 정보만 추려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자기가 아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덤으로 따라붙고.

 

소셜 미디어가 모방 소비를 불러오고 과소비하는 2030이 늘어나는 건 사회적 현상이고 문제라고 하지만 가난에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은 자꾸 극복하라고 해서 왜 저런 분위기가 생기나 했는데 가난은 자기 문제가 아니고 의견을 제시하는 안건 정도로 생각해서 그런 거였다. 그러니 사람이 가난에서 오는 힘듦이 있고 서러웠다고 말하는데 왜 가난은 부정적인 게 아니라며 회초리질을 할 수 있는 것. 어떤 가난은 현재 진행형인데 오늘 극복해서 내일 새로운 세상에 어떻게 도착하지. 인터넷에 오래된 밈이 있다. 잔소리 곁들인 참견을 할 거면 돈이라도 주면서 하라고. 그러면 저런 회초리질도 일확천금 손에 쥐어주면서 해야 하는데 안 그런다. 꼰대세요?


*

 

최근 올드 머니 유행은 '있어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심리(부자 선망)를 자극하는 것 그 이상의 의도는 없는 유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젠 의미 없지만, B 명품 브랜드가 국내 진출할 때 로고 없이도 아는 사람들은 알아보는 가방 브랜드로 마케팅했다. 이젠 특유의 기법만으로도 모두가 그 브랜드라는 걸 알아보지만.


올드머니에서 말하는 대대로 부자, 상속받은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기엔 내추럴 본 부자인 할아버지를 가진 한국사람.. 대체로 친일파 논란을 피하기 힘들다. 유럽이라면 가문 따지겠지만 여기는 한국이다.


재벌가 패션이라고도 하던데 사람들이 모 재벌가 누구를 보고 고급스러워~ 소리를 하지만 대다수가 그 댁 창업주의 성공 신화를 알고 있으니 '대대로 부자'에서 탈락 아닐까. 우리나라 재벌 중 대대로 부잣집에다 집안에서 마음 여리기로 유명했다는 사람은 갑질로 전국을 들썩이게 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좋은 걸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하는데 올드머니 유행이 로고 플레이 다음에 찾아왔기 때문인지 정반대의 유행을 가져오면서 너희의 지갑을 확고하게 털어가겠다는 거 같아서 더 별로. 롱패딩 이후  숏패딩 팔아먹겠다고 패딩 거지라는 말을 기사로 확산하는 것도 매우 별로.


요새는 학생들은 학기 중에 체험학습 내고 부모님이랑 해외여행 다녀오는 경우가 확 늘어서 더는 개근상이 좋은 게 아니라는 얘기가 몇 년 전부터 있다. 이미 누군가에겐 개근상이 성실이 아니라 서민의 상징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평범하지 않은 소비라고 생각한 것들이 기본값이 되어가는 거 같다.


요즘 10대들은 아이폰을 선호하고 갤럭시를 쓰면 에어드랍/아이메시지로 소외감을 느낀다는 글이 요즘 따라 인터넷에서 자주 보이는데 현실에서 애들이 아이폰 사달라고 조른다는 부모를 보지 못해서 실제 분위기는 모르겠다.


긴긴 세월 아이폰-갤럭시로 싸우는 거 보면서 소외감 느꼈는데 갤럭시를 쓰게 된 현재는 더 이해가 안 간다. 지난 10여 년간 소니와 샤프와 픽셀을 썼지만 아무도 관심 없고 쓰는 게 뭔지 물어보지도 않던데.. 손에 쥘 수 있는 물건 중에 백 단위 물건이 핸드폰밖에 없는 어린 친구들 이야기일까?

 

돈을 벌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부모님은 우릴 어떻게 키우셨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돈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기간이 최소 20년은 되고, 내가 벌어서 소비할 수 있는 나이가 되더라도 주변에 흔들리기가 쉽다. 모두가 남의 말을 듣고 살지만, 누구는 유난히 더 휘둘리고 누군가는 무시하고 걸어가는데 전자는 쉽고 후자는 좀 어렵다. 많이 어렵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냐고 하는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흔들리고만 있다.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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