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이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성장 [영화]

영화 <스크래퍼>(Scrapper, 2023)
글 입력 2023.11.16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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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비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겨진 12살짜리 소녀 조지. 혼자 밥을 차려 먹고, 혼자 집을 청소하던 조지의 앞에 어느 날 갑자기 한 번도 본 적 없던 아빠 제이슨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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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래퍼>(Scrapper, 2023)



조지는 엄마가 떠난 뒤 쭉 혼자 살았다.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고, 복지부에서 챙겨준 듯한 유인물로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점검한다. 주변 어른들에게는 자신을 돌봐주는 삼촌이 있는 척하고, 유일하게 이 비밀을 아는 친구가 걱정을 토로해도 개의치 않는다. 


큰 어려움 없이 엄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야무지게 앞가림하는 듯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엄마의 동영상이 들어있는 핸드폰을 잃어버리고선 온 동네를 쥐잡듯이 뒤지고 다니고 그 과정에서 부딪힌 동네 아이에게는 일방적인 주먹질을 한다. 엄마가 있을 때와 같은 집 상태를 유지하려고 먼지 한 톨 없이 깨끗이 청소하고 심지어는 소파의 쿠션이 다르게 배치되는 것도 용납하지 못한다.


그렇게 깨끗하게 관리하던 집 안에는 자물쇠까지 달려서 조지만 드나들 수 있는 방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는 천장을 뚫을 듯 치솟은 고철 더미가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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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사람, 그리고 남겨진 사람



작중에서 조지의 엄마 비키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데도 자꾸만 비키를 떠올리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과거의 동영상과 음성메시지 속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비키가 또 다른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느껴지는 이유는 조지의 모든 행동에 비키의 그림자가 묻어있다는 걸 알기 때문일 테다.


투병 과정을 겪은 비키와 조지의 이별은 적어도 불의의 사고만큼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예전의 나 같으면 그래도 인사를 나눌 시간이 있는 이별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최근 들어서는 마음이 바뀌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시간을 온전히 사랑하는 데 쓰지 못하고, 슬퍼하고 아파하는 데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니까. 이것도 또 다른 방식으로 잔인한 이별이다.


그래서 조지에 대한 안쓰러움만큼이나 비키에 대한 안쓰러움도 크다. 비키가 혼자 남을 조지를 걱정하느라 얼마나 마음을 썼을지, 그리고 그런 비키를 위해 마음을 써준 사람은 누가 있었을지. 


어쩌면 비키가 딸 조지를 안쓰러워한 만큼이나, 조지도 엄마 비키를 안쓰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비키가 제이슨에게 남긴 음성 메시지에서 말하다시피, 또래 아이들과는 어딘가 다른 구석이 있는 조지는 어른들의 뻔한 거짓말을 믿지 않는다. 이빨 요정도 취급하지 않는 아이인데, 그런 아이가 엄마가 있다는 하늘에 닿기 위해서 천장을 뚫고 올라갈 만큼 높이 고철을 쌓아두었다.

 

이는 조지의 순수함과 간절함, 그리고 내가 외로운 만큼 엄마가 외로울까 하는 걱정의 산물이다. 저가 홀로 남은 것처럼, 엄마도 홀로 있을까 봐. 조지와 비키의 사이에는 떠난 사람은 없는데 남겨진 사람만 둘 있다.

 

 

 

아이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성장



예고편을 볼 때는 조지와 아빠 제이슨의 화해가 주된 내용일 줄 알았으나, 영화를 감상한 후에는 둘의 화해라기보다는 조지의 성장을 다룬다고 느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성장은 자신이 아이임을 깨닫는 것, 그래서 도움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기꺼이 그 손을 잡는 것. 조지는 홀로 버티기를 그만두고 제이슨을 아빠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이가 되기를 선택할 때 비로소 아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아이러니를 조지는 거쳐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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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선택은 엄마의 죽음과 그로 인한 부재를 인정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지가 이전까지 도움의 손길을 거부한 이유 중에는 엄마의 자리, 즉 유일한 보호자이자 가족의 자리를 그대로 남겨두고픈 마음도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는 그대로 두면서도 또 다른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조지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두고 간 도움, 아빠를 받아들인다.


내가 아이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이로서 할 수 있는 큰 성장이라면,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른에게도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조지는 그것을 해냈고 크게 한 뼘 자란 아이 앞에는 또 수많은 장애물이 나타나겠지만 그 발걸음을 늦추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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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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