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추억의 유효기간

글 입력 2023.11.1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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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날, H와 함께했던 추억을 잠시 회상해본다.

 

평소에 나는 그녀에게 언니라고 부르지만, 이 글에서는 친구라고 칭하겠다. 그녀는 나보다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 하지만 시간의 벽을 넘나들 수 있을 만큼, 많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녀는 내가 짊어지고 있는 고민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으며, 나는 일상의 영감을 막힘없이 공유한다. 이런게 진정한 우정이 아닐까.

 

여름 햇살에 못 이겨 눈을 찌푸리고 있을 즈음, H와 오랜만에 만났다. 1년 만이었다. 여전히 온화한 미소로 맞이해주는 그녀는 변함없었다.

 

연락을 자주 한 덕분에 근황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묻어둘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먼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그녀에게 제안했다. 잠시 일상을 잊을 수 있는 무언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자연을 좋아하는 우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장소를 찾았으니, 꼭 함께 가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이미 갈 생각에 기대가 부푼 상태였다. 신이 난 탓에 말이 술술 나왔다. 이곳에서 영화 ’애프터 양’을 본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말까지 빼먹지 않았다. H와 좋아하는 영화도 비슷했기에, 그녀가 넘어갈 만한 모든 제안을 다 말했다. 역시 H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하나 남은 숙소를 운 좋게 잡아 순조롭게 계획을 세웠다.

 

숙소에 도착하고 난 후, 뭉클했다. 이곳에 언제쯤 올 수 있을까 생각했던 고민이 빨리 실현되었고, 이 풍경을 공유할 수 있는 H와 함께해서 남달랐다. 무엇보다 바쁜 일상과 잠시 멀어졌다는 사실이 황홀했다. 쉴 틈 없이 알림이 울리는 핸드폰을 잠시 넣어두고, 매일 보던 뉴스와 멀어지니 얼마나 천국 같은지. 온전히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다.

 

허투루 살아왔던 지난날이 떠올랐으며, 지금 느끼고 있는 벅찬 감정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었다. 모든 풍경을 최대한 눈에 가득 담아, 먼 미래까지 간직하고 싶었다. 어떤 일이 닥쳐도 버틸 수 있는, 단단한 버팀목 같은 기억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H와 나는 행복을 만끽하느라 잠에 쉽게 들지 못했다.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시간이 지나가는 줄 모른 채 긴 대화를 나눴다. 사실 H가 전날 야근에 치여 힘들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걱정을 잊을 만큼, 주어진 모든 시간이 즐거웠다. 나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준 그녀에게 이 글을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우뚝 선 지지대 같은 그녀, H였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가끔 그날 찍었던 사진을 꺼내 본다. 달콤한 케이크와 함께 봤던 영화, 늦은 밤 편의점을 걸어가면서 이야기 나눴던 시시콜콜한 일화까지. 어느 평범한 날과 다를 것 없이 보여도, 그날 느꼈던 모든 감정을 끌어안은 채 하루를 살아간다. 추억의 유효기간이란 없다. 빛바랜 기억을 한 움큼씩 꺼내 조용한 회상으로 마친다.


 

[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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