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인에게 [도서/문학]

그런 편지들
글 입력 2023.11.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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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전하고 싶을 때면 편지를 쓰게 된다.
 
그런 편지는 어떤 용건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장들이 그저 오롯이 당신을 위한 것들이라는 게 느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꽤 많은고민을 하며 정성스레 펜을 움직인다.

아주 가끔 그런 편지를 쓸 때마다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쓸지, 진심으로 전하는 말을 편지로 쓸 만큼 아끼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글은 어떤 모습인지, 문장들에서 나의 진심을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의 나처럼 다들 그런 마음으로 쓰곤 하는 건지.

이 두 권의 책 속 편지들은 분명 그런 편지들이다. 그래서 이 편지들을 읽는 발신인도 수신인도 아닌 제3자인 내가, 문장들에 짙은 진심이 담겨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어느새 그들의 모습을 머릿속과 마음속에 그려가며 읽게 된다.
 
그렇게 나는 이 책들을 읽으며 위의 궁금증을 아주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이런 편지를 썼구나, 하면서 말이다. 다시는 연인과 함께였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그리움과 사랑을 읽으며.

이 편지들은 각자의 연인에게 쓰였다.
 


A가 X에게


 

우리를 두렵게 하는 건 작은 일이에요.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 거대한 일은, 오히려 우리를 용감하게 해주죠.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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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에 있는 연인 ‘사비에르’를 향한 ‘아이다’의 편지 :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이 책에는 아이다가 쓴 편지들과 그 뒤에 적힌 사비에르의 메모만 실려있다.
 

 

왜 눈물이 났던 걸까. 의자를 고치는 건 이렇게 쉬운데 나머지 일들은 너무 어려워서? 아니면 이제 의자 고치는 일 같은 걸 당신에게 부탁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당신에게! (91쪽)

 

 
존 버거는 책을 시작하는 글에서 이 편지들이 시간 순서대로 되어있지 않고, 편지에 월과 일만 적혀있을 뿐 연도는 적혀있지 않지만 몇 년에 걸쳐 주고받은 것이라고 밝힌다. 또, 사비에르는 테러리스트 단체를 결성한 혐의로 이중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고, 아이다와 사비에르는 결혼을 하지 않아 면회가 불가능했다. 중반부쯤의 편지에서는 그들이 혼인신고를 시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사비에르가 감방에서 나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면회를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다가 그의 연인과 닿을 수 있는 방법은 편지뿐이다. 

아이다는 혼자가 된 일상에서 보는 것들, 만나는 사람들, 느끼는 것들, 추억하는 것들에서 연인을 떠올리며 그는 이렇게 했겠지, 그럼 나는 이랬겠지, 우리는 이랬겠지, 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그리고 사비에르를 ‘미 구아포’, ‘하비비’, ‘미 소플레테’ 등의 애정이 담긴 단어로 부르며 시작하는 편지들에 그 이야기를 담는다.
 

 

고마워요, 그녀가 약값을 내며 말했어요, 당신은 천사예요. 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어요. 천사는 가고 없어요. (114쪽)

 

 
아이다와 사비에르는 반자본주의자, 반세계주의자였다. 사비에르의 메모에는 그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있지만, 마찬가지로 활동가였던 아이다의 편지에서는 활동가적 면모가 확연히 드러나 있진 않다. 아이다가 말하는 자신의 일상의 모습과 그의 기억들에 잠깐씩 드러날 뿐이다.
 
아마도 연인에게 보내는 글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움과 희망과 사랑의 말을 다른 말들보다 더 많이 전하고 싶기에,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는 그 말들 또한 그들이 해오던 저항이나 다름없기에.

이 책을 읽으면 감방 안에서 아이다의 편지를 읽는 사비에르의 모습, 약국 안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아이다, 동네를 걷는 아이다, ‘사랑해요’라고 혼잣말을 하며 편지를 쓰는 아이다의 모습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다.

 

부재가 무라고 믿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없을 거예요.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시간에 관한 문제죠. (거기에 대해선 그들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무는 처음부터 없던 것이고, 부재란 있다가 없어진 거예요. 가끔 그 둘을 혼동하기 쉽고, 거기서 슬픔이 생기는 거죠. (115쪽)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헤이, 네가 너무도 보고 싶어.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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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베르제가 그의 연인 이브 생 로랑의 장례식에서 읽은 추도문을 시작으로, 그로부터 6개월 뒤 크리스마스부터 이어가는 편지들 :
 
약 1년 동안 쓰였으며, 이브 생 로랑의 1주기에 낭독한 편지를 마지막으로 끝난다.
 

 

이브, 내가 오래된 기억을 억지로 들춰내서 화난 건 아니지? (31쪽)

 

 
피에르의 편지는 연인에 대한 기억과 생각과 감정들로 채워져 있다. 피에르는 이브의 죽음 이후에, 이브와 함께 수집한 733점의 소장품을 경매에 내놓고, 그들이 함께 지냈던 집을 처분하고, 다른 친구들의 죽음을 연속적으로 겪기도 한다. 이 일 년 동안, 그는 50년 동안 함께였던 연인을 수시로 떠올리며 후회와 자책의 말을 하기도 하고, 그들의 예술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찰을 털어놓기도 한다. 기업가이자 예술인으로서, 동성애자이자 무신론자로서, 그리고 이브 생 로랑의 연인으로서.

그는 연인에게 답장을 받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이브는 세상을 떠났고, 자신은 아직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에르는 2017년 9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피에르의 편지 속 말들은 왠지 이브에게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들만이 아는 어떤 통로로. 또는, 마치 지금도 두 연인이 함께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바빌론가의 아파트에서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내 생각이 어떻든 겨울은 그곳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지. 나는 귀먹은 척 문을 열어주지 않고. 그러다 어느 날, 그것이 문을 부수어 버리는 거야. 너는 나라면 사방을 수리해가며 그조차도 막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래봐야 운명을 뒤죽박죽 만들기밖에 더 하겠어? (34쪽)

 

 
피에르의 편지를 읽다 보면 그가 이브를 정말 잘 알았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누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는 말을 무심코 하거나 정말 그렇다고 착각하기는 쉽겠지만, 진정으로 잘 알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을 볼 때, 이들은 서로를 정말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드는 것 또한 흔한 일은 아니다. 피에르와 이브처럼 50년을 함께 했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여러 겹인 사람들인데, 그 많은 겹들을 다 알 수 있을까?
 
하지만 이 편지들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서 피에르가 이브를 정말로 잘 아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피에르에게 후회와 죄책감과 안타까움, 그러니까 그가 마지막 편지에 밝혔듯 회한이 더 남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브는 피에르를 이만큼 잘 알았을까? 

 

그리고 바라건대, 이 글이 너의 재능, 너의 취향, 너의 명민함, 너의 다정함, 너의 부드러움, 너의 힘, 너의 용기, 너의 순수함, 너의 아름다움, 너의 시선, 너의 청렴함, 너의 정직성, 너의 고집과 욕구를 보여주기를. 너를 걸을 수 없게 했던 그 ‘거인의 날개’를. (144쪽)

 

 
*
 
이 시대의 편지는 어떤 모습들일까.
 
또, 이 세상의 편지들은 각각 누구를 향해 쓰일까.

옛날에 살아보진 않았지만, 책이나 영화를 보면 확실히 요즘 시대보다는 예전 시대의 사람들이 서로 ‘낭만적인’ 편지를 더 많이 주고받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서로에게 연락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이 다양하고, 널리 퍼져있다. 그래서 우리는 수시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말을 빠르고 쉽게 전하는 것에 익숙하다. 낭만과 진심은 없어지고 단순한 전달의 개념만 남은 느낌이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예전의 사람들에게는 왠지 다 있었을 것 같은 편지 쓰는 능력 같은 걸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달할 마음을 간단히 만든 다음 빠르게 다 내보내 버려서, 편지로 쓸 게 남아있지 않는 상태가 반복되는것일까?
 
어쨌든 편지라는 게 왠지 특별한 날에만 써야 할 것 같은, 받는 이가 감탄할만큼 잘 써야 할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진 포장지 같은 걸로 싸여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다소 부정적인 생각 반대편에는 이런 생각도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 시대에도 편지를 수시로 쓰는 사람들은 있다. 그들은 엄청나게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물론 특별한 날에는 더 편지를 쓰겠지만) 편지를 쓰고, 누군가가 감탄할 만큼 잘 써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내 마음이 잘 전달될 정도로 잘 쓰는 것에 집중하며 편지를 쓴다. 또, 꼭 손 편지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잘 쓰는 편리하고 빠른 수단을 이용해서도 편지를 쓴다.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첫째, 우선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블로그나 동영상 플랫폼 등에 올라온 좋은 글이나 영상들을 보게 되면,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가끔 구경하곤 한다. 그럴 때 가끔, 내가 생각하기에 정성스럽게 쓰인 편지 같은 댓글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도 아마 요즘 시대의 편지들일 것이다. 노라 에프론의 영화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 1998)도 이메일이 막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서로 모르는 사람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생기는 로맨스를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는 이메일이 새로운 형태였고, 두 주인공의 편지들도 짙은 진심이 담긴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주고받은 진심 덕에 연인이 된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에게도 편지 쓰는 능력이 있고, 편지는 멋있게 쓰는 능력보다는 진심을 전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며, 낭만과 진심이라는 건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기존의 형태로 곳곳에 있을 것이고, 심지어 새로운 형태로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낭만과 진심이 더 세게 퍼져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왕이면 사랑을 가득 담아서. 
 
*

사랑은 이 두 책 속 편지들의 중심이다.
 
사랑을 중심으로, 아이다의 편지들에는 투쟁과 집념이, 피에르의 편지들에는 예술과 섹슈얼리티가 담겨있다. 죽음이라는 것도 그들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상에서 상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사이에는 고통도 줄곧 함께한다. 나는 아이다와 사비에르가 고통 안에서 사랑한 사람들이었다면, 피에르와 이브는 사랑 안에서 고통을 느끼곤 했던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이 공유하는 가장 큰 부분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한 연인들이었다는 것이다.

아이다의 마지막 편지 후에 그들이 만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이 편지들을 읽는 나의 입장에서 아이다와 사비에르의 다음 모습을 떠올리기에는 정보가 부족하고, 모호하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투쟁과 집념 속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연인의 이미지가 더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피에르의 마지막 편지에서 그는 이 편지들이 그들의 삶의 결산과 그들의 이야기를 위해 쓰였다고 밝힌다. 그들의 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이렇게 남을 것이다. 기억 속에 있는 이브와의 순간들을 짚어보고 싶었으며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피에르의 바람대로, 예술과 섹슈얼리티로 가득했던 삶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았다. 

그리고, 어느 날은 담담하고 어떤 날은 절절한 두 사람의 편지들을 그저 천천히 읽어볼 뿐이었던 이 경험 후에는, 편지를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마음에 남았다. 평소에 잘 쓰곤 하는 사람 말이다. 그건 곧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고, 나의 그 진심을 전하곤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과 비슷하다. 아마도, 아이다와 피에르의 편지들에서 읽을 수 있었던 오롯한 진심이 만들어 준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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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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