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쩌면 그 선율은 하나의 붉은 실일지도 [음악]

글 입력 2023.11.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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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 노래! 고3 가을에 입시 때문에 막막하고 불안할 때 많이 들었던 노래인데 진짜 오랜만이다!'

 

음악의 선율은 무채색인 인생을 다채롭게 만들어줄 만큼 다양한 감정, 분위기,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선율은 나의 조각난 인생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해 주기도 하고, 나와 연결된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3 때 유행했던 음악 기억나?', '엄청 더웠던 2012년 여름에 들었던 음악 기억나?'라는 질문보다도 '‘Tell me’ 유행했던 그 시절 기억나?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도 기억나?'라는 질문이 기억을 떠올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만큼 내 인생에 선명하게 도장처럼 찍힌 그 선율을 먼저 찾아가는 게 연속된 인생에서 한순간을 찾는 것보다 쉽다는 것이다. 그 도장은 인생의 이정표 역할도 하고, 타임캡슐처럼 여러 정보를 담고서 도장을 찾아와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에게만 그 타임캡슐을 열어주는 문지기 역할도 한다.

 

선율이 귀를 타고 들어오면, 머릿속에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순간을 보여준다. 내가 세상에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감정이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가장 가까이서 말해주는 건, 어떠한 텍스트도 아닌, 선율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서로 다른 시대에 살고, 다른 감정을 느끼며 살아갈지언정 공유된 기억을 가질 수 있다.

 

공유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통합이 아닐까.

 

나와 너, 너와 우리, 우리와 그들의 통합은 선율에서 시작했을 때, 어떠한 갈등없이 비로소 끈끈해질 수 있다.

 

 

 

2018년 여름밤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 BTS - Answer : Love Myself



 

 

'눈을 뜬다 어둠 속 나 심장이 뛰는 소리 낯설 때'

 

새벽에 우는 산새소리 같은, 악기소리가 들리는 8초가 지난 후, 들리는 가사이다. 이 도입부만 듣더라도 나는 불안과 걱정이 가득했던 2018년 여름밤이 생각난다. 인생의 갈림길에 수도 없이 많이 서봤지만, 성인으로 내딛는 첫 걸음에 존재했던 갈림길은 어떤 갈림길보다도 더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쪽이 맞나? 저쪽이 맞나?' 내가 하고 싶은 게 진정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갈림길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정답인 줄 알았을 때, 걸어가는 길에 바람이 불 때면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한없이 웅크릴 뿐이었다. Answer : Love Myself를 만났을 때가 바로 그때였다.

 

고3에게 여름은 참으로 무덥기도 하고, 참으로 춥기도 하다. 2년 반 동안 쌓아왔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 리스트를 마주할 때면, 얼굴이 화끈거리며 땀이 흐르곤 한다. 강냉방으로 틀어져 있는 한여름의 에어컨은 한껏 흐르던 땀줄기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든다. 이와 동시에, 내 몸엔 냉기가 흐른다. 그 냉기는 곧 불안과 걱정으로 치환된다.

 

불안과 걱정이 만든 어둠 속에서 여느 때와 같이 헤매며 학교 - 학원 - 집 루틴을 반복하던 날이었다. 하늘을 올려보는 잠시의 쉼조차 사치라고 느껴지게 만드는 현실은 나에 대한 혐오만 늘어나게 했다. 지친 육신은 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지친 것도 그저 정신력이 부족해서, 나약해서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게 했다. 그럴수록 한 줄기의 빛을 찾기는커녕, 더 큰 어둠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어둠 속에서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잘 인식할 수 없다. 나를 인식하는 것보다 앞에 다가오는 사물을 인식하는 게 우선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어둠 속에서는 나를 돌아보고, 나를 돌보고, 나를 사랑하는 게 어렵게 된다. 그때의 나도 또한 그랬다.

 

이 가사를 듣는 순간, 한없이 침전하던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내가 누구인지 온전히 아는 것과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었다. 내가 느끼고 있었던 두려움과 불안도 내 감정이므로,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게 빛을 향한 도약의 시작이었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빠짐없이 모두 다 나'


어떤 모습이든, 모두 다 나라는 사실은 나를 향한 혐오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문장이다. 내가 나를 나로서 인정하는 것부터가 가장 필요한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런 다짐을 하는 것부터가 시초가 될 수 있다.

 

2018년,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밤 10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는 그 계절에 선선한 바람 속 터벅터벅 걸어가던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BTS의 Answer : Love Myself. 나를 나답게 인정하자는 다짐하게 하며, 어둠 속에서 나를 빠져나오게 도와줬던 이 노래. 어둠으로 조각나 있던 나의 인생을 다시 연결해 준 이 노래. 선율로 연결됨을 알게 해준 고마운 노래이다.

 

 

 

1988년 엄마의 청춘이 녹여져 있는 노래: 장혜리 -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



* 드릴게요가 맞지만, 곡 제목은 드릴께요로 발매되었습니다.

 

 

'엄마! 젊었을 때 가장 좋아했던 곡이 어떤 곡이야?'

 

어느 날 묻은 물음에 엄마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라고 답했다.

 

1988년에 발매된 이 노래는, 엄마의 청춘이 고스란히 녹여져 있는 노래이다. 태어나기 전이라 경험하지 못했던 엄마의 젊은 날은 이 깊은 선율들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 시절은 담다디, 리듬 속의 그 춤을, 깊은 밤을 날아서 등 빠른 곡이 유행이었지만,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는 조금은 느린 템포의 노래이다. 느리지만, 서정적이고, 선율에 감성이 풍부한 노래를 10대와 20대에 들었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면, 그 시절의 소녀의 모습이 짧게나마 그려진다.

 

'세월이 변한다해도 언제까지나 그대로 내 곁에 머물러줘요.'

 

지금 들어도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가사는, 소녀의 감성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옆에 머무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떠나가버린 사랑에게 남은 사랑이라도 모두 주겠다는 화자의 덤덤한 어조는 더 큰 울림을 준다. 이 울림이 그 시절 소녀의 감성을 떠올리게 하고, 엄마와 나로 하여금 공유된 기억을 갖게 했다.


 

 

유년기 시절 나와 40대 아빠를 이어주는 노래: Autumn leaves




 

 

유년기 시절, 아빠의 퇴근을 한없이 기다리던 나이. 몇 시에 오신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빨리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를 걸 때면, 늘 수화기에선 'Autumn leaves'가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이 선율에 어느 순간 녹아들었다. 아빠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과 노래를 길게 듣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는 날도 있었다. 지금도 종종 Autumn leaves를 들을 때면, 두근대는 마음과 행복한 감정으로 수화기를 들고 있는 내 모습과 터벅터벅 퇴근 하는 40대의 아빠 모습이 겹쳐서 보인다.

 

40대,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아빠를 떠올리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었는지 떠올리기 힘들지만, 이 선율 조금이면 바로 그때의 아빠가 떠오른다. 어떤 것보다도 선율이 시절과 시절, 나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이어주는 힘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

 

갈등과 분열이 가득한 이 시대에 세대가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선율, 음악인 것 같다. 선율이 그려주는 그 시대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그럼으로써 그 시대에 살았 사람들을 알 수 있게 된다. 다른 세대 사람이지만, 서로의 인생을 선율로 단단히 이을 수 있는 것이다.

 

선율을 매개로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경험의 대상이 나의 부모님, 내 주변의 지인 뿐만 아니라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나 내가 그 시절 사랑했던 누군가일 수도 있다. 혹은 과거의 나와 그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그 선율로 만들어진 모든 인연은 다시금 그 선율을 인생에 재생시키면서 인연의 끈이 단단해진다.

 

어쩌면 그 선율은 하나의 붉은 실일지도,

어쩌면 그 선율로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나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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