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정한 하루와 다정한 사람들, [사람]

글 입력 2023.10.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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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이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혼자 내가 좋아하는 곳에 가서 좋아하는 것들을 천천히 하거나, 시간이 없을 땐 글을 쓰며 정리하곤 한다. 오늘은 온전히 나를 위해 준비한 행복들을 가득 채운 하루다. 우선 아침으로 가볍게 고구마 반개와 반숙 계란 하나를 먹고 망원동에 갈 준비를 했다. 내가 언제나 자주 기대고 있는 동네다. 가장 좋아하는 동네이자 보물 상자에 넣어두고 싶은 따뜻함이 묻어나는 동네. 


언제나 지하철에서 보는 한강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탁 트인 시야를 시원하게 달리는 열차 안에 있는 기분, 더 열심히 살고 싶게 만드는 순간이다. 모두들 폰을 보고 있다가도 한강이 나오면 잠시나마 고개를 들어 작은 액정의 피로함을 날리곤 한다. 그렇게 양화대교를 건너면 합정이 나오고 그렇게 합정에서 망원으로 건너간다.

 

우선 내가 정말 먹고 싶었는데 저번에 아쉽게도 내부 사정으로 문이 닫혀 못 먹은 샐러마리에 갔다. 작은 테이블 4개가 있는 가게인데, 나는 크고 넓은 곳보다 작고 아기자기한 것들이 좋다. 이게 내 취향이다. 저번부터 꼭 먹고 보고 싶었던 버섯 김밥을 먹으려 했는데 차가운 바질우동도 너무 먹고 싶었다.

 

요즘 식단으로 먹는 양이 적어져서, 두 개 먹기엔 너무 많을 것 같았는데 너무 먹고 싶었다. 근데 옆자리 분께서 바질우동이랑 김밥 하나를 시켜 드시는 걸 보고 그냥 '천천히 오래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먹고 싶은 것들을 다 시켰다. 예상대로 시킨 메뉴가 다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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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혼밥을 자주 하는 편인데, 그럴 때 이어폰을 끼고 영상을 보며 밥을 먹는 편이었다. 근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망원이라는 동네 자체를 느끼고 싶었고 내가 뭘 느끼는지 알고 싶어서 이어폰을 안 끼고 폰도 보지 않고 밥을 먹었다. 재료의 식감을 느끼고 맛을 느꼈다. 근데 그냥 너무 행복한 맛이었다. 아삭한 양배추랑 불향이 나는 쫄깃한 버섯, 밥 자체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단맛, 은은한 깻잎과 김 향까지. 바질우동은 '바질 파스타에 면을 우동으로 바꾼 거겠지' 했는데 첫 입을 먹자마자 바질의 향긋함과 상큼한 레몬향이 났다. 상큼한 바질우동이었는데, 이게 더워서 그저 그랬던 입맛을 확 돋아주었다. 어린잎과 함께 먹으니 식감도 좋았다.


사람들이 다 나가고 가게에는 나 혼자 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냥 그런 순간들도 좋았다. 서울에선 흔하지 않은 일이니. 빠르게 먹고 빠르고 돌아가니, 그냥 그런 작은 순간들이 행복하게 느껴진다. 작은 가게에 햇빛이 닿는다. 공간과 날씨의 조화를 몸으로 듬뿍 느낄 수 있는게 좋다. 그렇게 마무리로 아껴둔 방울토마토를 먹고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요새 나는 "안녕히 계세요"보단 음식점에선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을 더 많이 한다. 그냥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가 더 좋아서 바꾼 말이다.


그리고 미리 찾아둔 나의 취향인 카페를 찾아 걸었다 10분 정도. 10분 정도를 걸으면서 이어폰을 안 끼고 나의 속도대로 천천히 걷다 보니, 들리는 대화들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먼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골목에서 꺄르르 웃으면서 "천사의 날개가 피어나나 봐!"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골목을 나오던데 무엇을 보고 그러는지 몰라도 무언가를 보고 천사의 날개를 떠올리는 그 친구의 표현이 참 예쁘고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흐뭇하기도 했다. 지나가다 작은 문방구도 보고, 초등학교를 지나는데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모습도 봤다. 오랜만에 종소리도 들었는데,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음을 떠올리며 지나갔다. 여름의 싱그러움과 참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천막 밑에 의자가 있었고, 거기에 앉아 있는 할머님이 있었다. 그리고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님께서 나와 날이 많이 덥다며, 얼음을 띄운 물을 권하는 대화를 듣게 됐는데, 따뜻한 온도의 대화였다. 나도 누군가에게 더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며 물 한잔을 건네는 세심한 배려심과 여유를 가지고싶다는 생각을 하며, 카페로 들어갔다.


내가 찾은 카페는 작은 연두색 어린잎이 생각나는 카페였다. '종이 숲'이라는 카페인데, 책과 글, 작고 소중한 것들을 좋아하면 추천하는 카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방명록을 잠깐 구경하다 푸딩이 그려져있는 것을 보고 고민하다 그냥 사장님께 "푸딩도 추가할 수 있을까요?" 여쭤봤고 사장님께선 조곤조곤 같이 준비해 드리겠다며 말씀해 주셨다. 조용해서 좋았다. 가게에는 인디음악이 흘러나왔고 작지만 카페에는 책으로 가득해, 이 카페를 단단히 지지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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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그날 하루가 적혀있었다. 눈에 띄었던 건 점잖은 글씨체로 "책을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와 함께 카페에 와서 오늘 하루가 행복하다"라는 내용의 글. 정말 좋은 남자친구를 두신 것 같다. 서로를 존중하고 그 사람 자체를 그대로를 사랑하는 연애.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연애다. 순수한 "좋아해"로 시작되는 연애가 좋다. 불안과 걱정이 없는 편안하고 솔직한 만남이 좋다.


그렇게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무과수 작가님의 <안녕한, 가>라는 책을 정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물론 틈틈이 푸딩과 커피도 먹어가며, 푸딩은 좋은 커피의 쌉쌀함이 느껴지는 소스로 되어있어 적당한 단맛이었고 입에서 진짜 녹았다. 그리고 얼음이 잘 녹아든 커피를 마시면 그렇게 입안이 행복할 수 없다. 무과수 작가님 에세이를 읽으면서 공감 가는 부분도 위로되는 부분도 많았다.


요새 나는 부지런하게 지속 가능하도록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나를 위해 직접 밥을 차려 먹는 것이고,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냥 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잘해주고 싶었다. 그냥 나한테 잘해주고 싶었다. 타인을 잘 챙기는 것들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나를 제일 잘 아는 것도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잘 챙겨 줄 수 있는 것도 나니까. 건강하고 좋은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노력하는 중이다.


무과수 작가님도 직접 밥을 만들어 먹고 그런 삶이 스스로를 위한 행동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비슷한 생각들이 이 글에서 많이 보여 공감이 많이 됐다. 그리고 '낭만'이라는 챕터에서 하루를 살아가며 누군가를 떠올리고 누군가를 위해 편지를 쓰고, 급하게 선물을 고르는 것이 아닌 미리 그 사람을 위한 선물을 천천히 고르고 직접 사는 그 행동이 참 낭만적이라고 쓰셨는데, 나도 가까이 사는 친구에겐 직접 쓴 편지와 선물을 직접 사서 주곤 했는데 '이런 행동이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냥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며 느낀 생각들을 읽으면 조급하고 불안했던 내 생각들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고, 나는 나의 속도대로 잘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 끔 느끼게 해준다.

 

누군가는 내게 휴학 기간이 많이 남았으니, 쉬기도 하면서 천천히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라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에게 이제 휴학 기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지금까지 한 게 뭐냐는 말을 했다.


사실 나는 칭찬과 지지에 약하다. 당근과 채찍이 적절하게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의 능률을 조금 더 올릴 수 있는 법은 당근이다. 나는 나를 인정해 주고 지지해 준다면, 칭찬이 더 듣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고 말하는 타입인데, 나를 불안하게 하는 말들은 내게 상처도 되지만 그 말을 들음으로써 하지 않아도 될 불안한 생각들로 덮여 일에 대한 반응이 더뎌진다.

 

하여튼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음으로써 많이 정리가 되었다. 그냥 내 온도랑 내 속도대로 살아가자. 조급해하지 말고 그냥 내 속도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외에도 카페 사장님이 쓰신 제주도 여행 책도 읽었는데, 얼른 한여름 제주도로 가고 싶다. 재미난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 같다. 제주도에선 어떤 풍경과 감정 사람을 마주하게될까.


그렇게 가게를 나오고 망원역으로 가는데 여전히 동네는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떤 할아버님께서 정말 다 헤진 얇은 옷을 껴입으시고 리어카에 아주 많은 양의 막걸리를 실은 채로 정말 행복하게 웃으며 지나가셨는데, 정말 최근에 그렇게 행복한 웃음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행복한 미소를 보며,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지향점은 어디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행복의 지향점은 나의 하루를 나의 취향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건데, 그리고 그게 오늘이고.


또 아기를 포대기에 감아 등에 업으시고, 앞에는 누르면 음악이 나오는 큰 장난감을 들고 동네를 걸어 다니시는 어머님도 계셨다. 좋은 사랑을 듬뿍 받고있는 아기인 것 같다. 행복하렴.


망원동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망원 시장을 지나면서 익숙한 시장의 향이 났다. 그리고 달달한 과일 내음도 났다. 자전거 손잡이 양쪽에 참외를 걸고 웃으며 지나가는 아버님과 그 뒤엔 복숭아를 자전거 손잡이에 걸고 열심히 페달을 밟고 지나가시는 여자분도 봤다. 여유롭고 기분 좋았다. 이어폰을 빼고 망원동의 따뜻함을 온전히 느낀 하루였다.


집에 오는 길, 망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전단지를 주시는 분들이 꽤나 많은데, 나는 다 받는 편이다. 날도 더운데 그 많은 종이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집에 갈 수 있다니, 마음 같아서는 내가 다 들고 가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되니까. 종이 한 장 받는 것쯤은 할 수 있으니까, 일분일초라도 어르신들의 일이 더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한 번은 날씨가 엄청 궂은 날이었는데, 그때 어르신 손에 전단지가 잔뜩 쌓인 것을 보고 전단지 한 장씩을 친구랑 받은 다음, 친구랑 다시 이야기를 하고 되돌아가 "저 저희한테 그냥 몇 장 더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고마워하셨지만 전단지를 돌리고 직접 방문해야 의미가 있는 거라 하셔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냥 이런 거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요즘 사회에서 전단지로 낼 수 있는 홍보 효과는 적은데, 좀 더 효율적인 홍보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와 동시에 그럼 일자리가 또 줄어드려나 생각이 들면서, 어르신들의 일자리 창출은 어떻게 해야 넓힐 수 있을까라는 무지막지하게 깊은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냥 정말 사회가 따뜻하고 바르게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오늘 유빈 언니가 나 같다고 보내준 그림과 말들이 있는데 그림도 너무 좋았지만, 나를 닮았다는 말들이 좋았다. 그 말들에는 '투명한 물방울' '반짝이는 잎사귀' '오후 5시의 거품 구름' '분홍색으로 칠한 우편함' '매실 향기' '딸기 쇼트케이크' '청사과의 식감'이라는 말들이었다. 그냥 말도 말이지만 누군가의 머릿속에 내가 떠오른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인 것 같다. 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니까. 고맙다 히.


하여튼 이런 망원동의 따뜻함과 사람들의 온정을 가득 느끼고 온 나는, 요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생각을 하냐면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그냥 내가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된다면 그런 따뜻함과 다정함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것 같아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오늘 하루, 이 마음으로 또 앞으로를 힘차게 열심히 살아가야지


- 사람과 공간의 따뜻함을 느낀 날에게 -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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