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을 예고하는 밴시는 늘 곁에 있다 [영화]

마틴 맥도나 <이니셰린의 밴시>
글 입력 2023.10.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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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절친과 절교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비록 절친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일부분을 차지할 만큼 영향력을 지닌 이를 떨쳐내야만 하는 순간이 생기곤 한다. 그러한 절교는 그 과정이 좋든 나쁘든 서로의 세계 일부분을 파괴하고 덜어내는 것과 같아 아주 외롭고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절교가 아무리 고통스럽기로서니 피를 흘릴 만치의 일일까? 여기 아일랜드의 외딴 섬에 유혈 낭자한 절교를 하는 두 남자가 있다. 바로 콜름과 파우릭이다. 이 둘은 섬에서 알아주는 절친으로 분리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영화는 콜름의 절교 선언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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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파우릭은 오후 2시에 콜름의 집으로 향해 펍에 갈 것을 권유한다. 이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콜름의 태도이다. 그는 대꾸하지 않고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묵묵히 담배만 피운다. 결국 혼자 돌아다니는 파우릭을 향해 주민들은 콜름과 다퉜냐는 일관된 반응을 한다. 그에 파우릭은 부정하지만, 참 얄궂게도 콜름은 그러한 파우릭을 향해 절교 선언을 한다.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


그럼에도 파우릭은 콜름의 절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지 다음날 너스레 콜름에게 말을 건다. 왜냐하면 파우릭은 아침에 달력을 찢다 어제가 1923년 4월 1일, 만우절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콜름이 한 번 더 말을 건다면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겠다 당부해도 낙천적으로 받아들인 파우릭은 술에 취해 콜름과 말싸움을 한다. 그렇게 다음날 자신의 손가락을 양털 가위로 잘라 파우릭의 집 대문으로 던진 콜름으로 인해 그들의 절교는 점점 긴장이 감도는 재해의 장으로 변한다.


영화는 콜름과 파우릭이 어떠한 연유로 절친이 된 것인지에 관한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응당 그래왔던 것처럼 이니셰린 섬에서 둘은 떨어져 있으면 이상한 관계이다. 그러한 그들의 갑작스러운 절교는 1920년대 아일랜드 내전을 떠올리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내에서도 본토에서 일어나는 내전을 수차례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니셰린 섬에서 일어나는 두 남자의 절교는 본토에서 일어나는 내전의 알레고리인 셈이다. 하지만 <이니셰린의 밴시>는 그러한 역사적인 내용 이외에도 많은 의미를 포착할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가 좋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다양한 의미해석이 가능해질 때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에는 메타포와 미장센이 있다고 믿는다. 의미 없는 장면은 없다. 의미 없는 색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영화가 나를 무수한 세계로 초대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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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나 감독이 초대한 첫 번째 세계는 반사의 세계이다. 영화에는 인물들의 입장차이가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낸다. 이러한 차이를 시각적으로 드러낸 것은 유리창이다. 맥도나 감독은 빛을 활용해 창 안에 있는 대상뿐만 아니라 그 창을 들여다보는 주체까지 반사하여 창의 안과 밖을 동시에 투영해낸다. 이때의 창은 단절과 장벽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각자의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콜름을 바라보고 있지만 창에 비친 파우릭 자신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갈등과 분쟁에는 불가피하게 벽이 따라붙곤 한다. 아마 베를린 장벽이나 벨파스트 평화의 벽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아주 작은 벽이 자꾸만 콜름과 파우릭 사이를 가르기 바쁘다.


콜름과 파우릭의 절교에 있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다정함(nice나 good으로 표현되곤 하는)’과 ‘똑똑함’이다. 사람들은 파우릭을 전자, 콜름을 후자의 경우로 말한다. 콜름은 지적이고 행동에 응당 이유가 있는 자로 보는 반면 파우릭은 멍청하고 무식하지만 좋은 자로 본다. 파우릭이 콜름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던 것은 어찌 보면 콜름에게서 사라진 다정함을 어떻게든 붙잡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처절한 몸부림을 사람들은 그저 그가 멍청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콜름은 자신의 네 손가락을 잘라 파우릭의 집 앞에 던져둔다. 그런데 파우릭이 키우는 당나귀 제니는 그 손가락을 먹고 질식사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해 파우릭은 본연의 다정함, 즉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복수심과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파우릭은 콜름에게 일요일 오후 2시에 불을 지를 것을 예고한 뒤, 시간에 맞춰 콜름의 집을 불태운다.


우리는 영화관 혹은 거실 소파에 앉아 이 모든 슬픔과 분노, 대립을 시청한다. 이와 같이 맥도나 감독이 초대한 두 번째 세계는 거리감의 세계이다. 이 영화는 당사자-방관자의 구조로 구성되어있다. 마을 사람들이 콜름과 파우릭의 절교를 방관하고, 커니 경관이 아들 도미닉을 폭행하는 것을 쉬쉬하고, 본토에서 들려오는 총성을 들으며 이니셰린 섬 주민들은 방관자의 태도로 “행운을 빈다. 뭣 때문에 싸우든 간에.” 같은 무신경한 말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보다 우리를 섬뜩하게 만드는 방관은 따로 있다. 영화 제목에서도 명시되어있듯 ‘밴시’라는 존재와 전지적인 존재의 방관, 그리고 영화를 시청하며 방관하는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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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름은 자신이 작곡한 음악에 ‘이니셰린의 밴시’라는 제목을 지으며 이런 말을 한다. “밴시들도 있을지 몰라. 이제 죽음을 예고하며 비명을 지르지 않을 뿐 가만히 쳐다보면서 즐기고 있을지 모르지.” 밴시는 아일랜드 설화에 등장하는 요정으로 죽음을 비명이나 울음소리로 예고한다는 특징이 있다. 밴시의 외향은 다양하게 설명되는데, 그중 하나는 영화 속 맥코믹 부인처럼 낡은 후드 망토를 쓴 노파의 모습이다. 맥코믹 부인은 콜름의 말처럼 이니셰린 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즐긴다. 즉 맥코믹 부인은 밴시로 상징되며, 어느 곳을 가도 그녀가 모든 이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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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시 이외에도 맥도나 감독은 의도적인 연출로 제3의 시선을 형성하는데, 가령 성모 마리아 동상과 십자가의 뒷모습을 걸쳐놓은 상태의 하이앵글로 인물들을 내려다보는 쇼트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구도는 제3의 시선의 주체가 아주 편안하게 관망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콜름은 악기를 연주할 손가락과 안락한 집을 잃었다. 파우릭은 당나귀 제니를 잃고 영원히 함께 살 줄 알았던 여동생을 수도로 떠나보냈다. 서로의 세계를 파괴하던 절교는 두 사람이 바다 건너 본토를 마주 봄으로써 잠잠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오는 것은 왜일까?


“본토에서 총성 안 들린 지 한 이틀 됐군. 끝나가는 모양이야.”

“분명 조만간 또 시작할걸요. 그냥 넘기지 못하는 일들도 있는 거니까. 그게 좋은 거 같아요.”


그리고 여전히 둘을 바라보는 밴시의 뒷모습이 담긴다. 어째서인지 나는 이러한 결말이 갈등과 방관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의 곁에도 낡은 망토를 입은 밴시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우리가 밴시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입장만 고수하는 이들과 그들을 지켜보기만 하는 밴시가 많아진다면 그곳은 곧 죽음이 계속해서 덮치는 땅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니셰린 섬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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