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탐욕과 배반, 사랑과 질투가 낳은 비극 - 서울오페라페스티벌, 토스카

올해로 8회차를 맞이한 2023 서울오페라페스티벌
글 입력 2023.10.2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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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의 범주가 극도로 다양해진 오늘날, 오페라라는 장르가 누군가에게는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리스 비극에 뿌리를 두고 20세기에 유럽 국가에서 최전성기를 누린 장르인 만큼, 나 역시도 오페라가 21세기의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4년 전 2019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을 통해 이전까지 막연히 멀리했던 오페라라는 장르와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정통 오페라부터 국내 창작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현재까지도 진화 중인 오페라 무대를 경험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2023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은 노블아트오페라단과 서울오페라페스티벌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강동문화재단 주관, 서울특별시가 후원하는 행사로 올해로 어느덧 8회차를 맞이했다. 오페라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시작된 행사로 매년 가을 강동아트센터에서 펼쳐진다. 올해에는 푸치니의 <토스카>와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두 편이 전막 오페라로 공연되었으며, 그 외에도 국내 최정상 성악가들의 무대인 <그랜드 오페라 갈라쇼>, 어린이 오페라 <빨간모자와 늑대>, 영상 가곡 콘서트 <위대한 청춘 70년>, <영화 속의 오페라>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나는 지난 14일 토요일 저녁, <토스카>를 관람하기 위해 강동아트센터의 대극장 한강을 찾았다. <토스카>는 푸치니의 대표적인 스릴러 오페라로, 오페라 가수 ‘토스카’를 둘러싼 하룻밤 사이의 치정다툼과 비극을 다루는 극이다. 고문, 살인, 자살, 배반 등의 극적인 요소가 집합되어 오페라의 블록버스터라고도 불린다. 총예술감독 신선섭을 필두로 지휘 양진모, 연출 김숙영, 토스카 역에 소프라노 서선영, 김라희, 카바라도시 역에 신상근, 이승묵, 스카르피아역에 정승기, 박정민이 연기한다. 

 

 

오페라 토스카 (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6).JPG

사진출처-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1막은 1800년 로마, 산 안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에서 시작된다. 전 로마공화국의 정치범 안젤로티는 친구인 카바라도시의 작업실로 몸을 숨긴다. 카바라도시는 성당에서 기도하던 한 여인의 얼굴을 모델 삼아 성모 마리아의 초상을 그리는 중이다. 그림 속의 얼굴을 본 그의 연인 토스카는 안젤로티의 인기척을 느끼고는 다른 여인이 다녀갔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림 속 얼굴을 자신을 닮은 검은 눈과 검은 머리칼로 바꿔달라고 투정을 부리자 카바라도시는 당신이 누구보다도 아름답다며 토스카를 안심시킨다. 

 

한편 비열한 경시총감 스카르피아가 안젤로티를 쫓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로마가 승전하기를 기원하며 어린 합창단이 연습 중일 때 성당에 들이닥쳐 카바라도시에게 안젤로티의 행방을 캐묻는다. 그는 비밀을 지키려 하지만 성당지기 때문에 안젤로티가 성당에 숨어있다는 증거를 들키고 만다. 그리고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에게 흑심을 품고 그녀에게 카바라도시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고 거짓말한 뒤 그를 체포한다. 

 


오페라 토스카 (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9).JPG

사진출처-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2막이 시작하는 장소는 스카르피아가 식사를 하고 있는 경시청이다. 스카르피아는 토스카를 손에 넣기 위해 카바라도시가 옆방에서 고문당하고 있을 때 그녀를 불러낸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연인의 끔찍한 비명소리를 들려주며 안젤로티의 행방을 말하라고 추궁한다. 괴로워하던 토스카는 결국 토스카는 안젤로티가 숨어있는 은신처를 폭로하고 만다. 카바라도시의 고문은 멈췄지만 그는 비밀을 누설해 버린 토스카를 탓한다. 설상가상으로 스카르피아는 죄목이 특정됐다는 이유로 카바라도시의 교수형을 명한다. 

 

토스카가 간절히 애걸하자 그는 자신과 하룻밤을 보내면 처형을 면해 주겠다고 회유한다. 그저 지은 죄 없이 예술을 좇고 사랑을 좇으며 살아왔을 뿐인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냐며 토스카는 바닥에 쓰러져 한탄한다. 그리고 그의 제안에 승낙하며 카바라도시의 목숨을 살려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몰래 도망칠 수 있도록 통행증을 써달라고 요구한다. 스카르피아는 교수형을 총살형으로 바꾸고 총알을 공포탄으로 바꿔치기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등을 돌려 통행증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한다. 

 

하지만 토스카는 식탁에 놓여있던 칼을 품속에 몰래 숨겨둔 상태다. 토스카는 자신을 범하려는 스카르피아를 거듭 칼로 찔러 살해한다. 토스카는 자신이 저지른 죄 앞에서 패닉에 빠지지만, 이내 망토를 걸치고 시신에 성호를 그은 뒤 카바라도시를 구하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뜬다. 한편 안젤로티는 자신을 숨겨준 친구의 소식을 접하고 자살로 목숨을 끊는다. 

 

 

오페라 토스카 (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5).JPG

사진출처-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3막의 장소는 카바라도시의 처형이 이루어지는 교도소 옥상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카바라도시는 간수에게 부탁해 연인인 토스카에게 남길 마지막 편지를 쓴다. 하지만 그 도중 토스카가 나타나 방금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털어놓고, 공포탄 소리가 울리면 쓰러져 죽은 척을 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리고는 사형집행관들이 자리를 뜨면 함께 도망치자고 말한다. 그녀의 사랑에 감격한 카바라도시는 간수 앞에서 기쁨을 숨긴 채 사형대에 선다. 

 

총성이 울리자 카바라도시는 죽은 듯 쓰러진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토스카는 그가 연기 중이라고 굳게 믿으며 재미있어한다. 그리고 사형집행관들이 옥상을 떠나자 그에게 뛰어가 어서 일어나라며 그의 몸을 흔들지만 카바라도시는 미동도 없이 누워있을 뿐이다. 모든 것은 스카르피아의 거짓말이었다. 진짜 총알을 맞고 세상을 떠난 연인을 보며 토스카는 절망한다. 이때 경시청에서 스카르피아의 시신을 발견한 경찰들이 그녀를 체포하러 들이닥친다. 토스카는 스카르피아를 저주하고 지옥에서 만나자고 선포하며 옥상의 난간에서 몸을 던진다. 

 

 

오페라 토스카 (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1).jpg

사진출처-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정통적인 대극장 오페라답게, 가장 먼저 눈길을 빼앗은 것은 웅장한 무대연출이었다. 남다른 스케일과 퀄리티가 극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총 3막이 전개되면서 두 차례 무대가 바뀌었다. 1막은 성모마리아의 거대한 초상화와 조각상, 성당의 대문으로 구성됐다. 초상화 앞쪽으로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계단을 두어 높은 층고의 이점을 다채롭게 활용했다. 합창단과 교황의 테데움이 울려퍼지자 바닥부터 천장을 가로지르는 십자가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하강하며 장엄한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했다. 

 

2막은 스카르피아의 경시청으로 1막과 대조되는 단촐하고도 어두운 분위기로 연출되었다. 스카르피아의 사무 공간으로 꾸며진 무대 좌측과 달리 우측은 부피감 없이 비워두어 토스카가 스카르피아를 살해하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다. 마지막 3막은 카바라도시의 사형이 집행되는 장소로, 뒤편에 세워진 거대한 석상이 보는 이를 압도하며 교도소의 웅대한 규모와 입체적인 깊이감을 실감하게 했다. 극의 결말이자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의 죽음이 더욱 극적으로 강조될 수 있는 연출이었다.

 

 

오페라 토스카 (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8).JPG

사진출처-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하지만 무대연출 이상으로 빛을 발했던 것은 단연 배우들의 역량이었다. 하룻밤의 사건이 눈앞에서 휘몰아치는 가운데 캐릭터의 입체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장면들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토스카를 연기한 소프라노 서선영의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와 카바라도시를 연기한 테너 신상근의 <별은 빛나건만>은 각 인물의 격정적인 감정이 응축된 강렬한 무대였다. 특히 토스카의 캐릭터는 연인 앞에서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모습부터 위기 앞에 나약하게 무릎 꿇는 모습, 한편으로는 대담하게 사랑을 지키는 모습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캐릭터였음에도 배우의 열연 덕분에 순식간에 인물의 감정선에 몰입할 수 있었다.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의 <토스카>는 종합예술의 정수다운 정통극이었다. 길고 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고전미를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의 눈과 귀를 예술만이 가진 능력으로 풍요롭게 채워주었다. 노련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배우들의 열연, 더할 나위 없는 무대 연출까지 아무리 박수를 쳐도 충분치 않은 무대였다. 또 한 가지 더, 탐욕과 간교, 사랑과 시기 등의 인간사를 담은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의 라인업에 더없이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페라 장르를 향한 편견을 거두고 무대를 바라보면, 17세기의 로마가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 주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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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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