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페라는 어렵다? 서울 오페라 페스티벌 - 토스카

오페라, 생각만큼 어렵지 않아!
글 입력 2023.10.2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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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도 오페라를 본 적이 없다. 오래된 이야기라 막연히 지루하고 어려울 것으로 생각해 왔다. 공연을 한번 관람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고려한다면 언제나 우선순위 바깥에,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고려 사항에도 없던 것이 바로 이 오페라였다.

 

그 전에 나는 오페라 페스티벌이라는 게 국내에서 개최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페스티벌'이라는 단어가 주는 발랄함이 과연 내가 아는 '오페라'와 어울릴 수 있나? 처음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대극장에서 잘 차려입은 성악가들이 기교를 뽐내면 돈 많은 관객들이 점잖이 관람하는 무언가. 내가 의무교육 과정을 통해 인식한 오페라란 고상함이었다.

 

좋은 기회로 유명한 오페라 중 하나인 (실은 이것도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만큼 문외한이었던 거다!) <토스카>를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관람할 수 있었다.

 

주최지인 강동아트센터는 내가 사는 지역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장소였다. 고민했다. 내가 이만한 거리를 이동하며 쏟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지 않을 만큼의 경험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번 기회가 아니라면 도저히 시도도 해볼 생각을 안 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누구나 즐길 수 있게 구성된 페스티벌도 아니라면 과연 내가 이런 작품을 언제 어디서 볼 것인가.

 

가보자, 어떻게 되든 간에 한번 가기라도 하자. 나는 그렇게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2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공연장에서 보냈고, 밤공기가 차가워져서야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지하철로 돌아가는 길에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때 한 생각이란 이런 거였다.

 

아, 오페라는 따지자면 TV 없던 시대의 드라마구나. 재미있을 수밖에 없구나!

 

철학적이고 은유적인 대사와 함께 비극적으로 끝나기만 할 거라는, 책으로 따지자면 주석 달리지 않은 셰익스피어 희곡과 같은 무언가라고 생각한 게 아쉬울 만큼 오페라란 아주 강렬하고, 또 제법 통속적이기까지 한 음악 장르였다.

 

물론 워낙 오래전에 시작된 공연의 형태이니 그런 작품이 없지야 않겠으나, 현시대까지 남아 우리가 즐기는 소위 '인기작'들이란 일반 뮤지컬 혹은 TV 드라마처럼 흥미롭고 웃기기까지 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16세기 사람들이 아니라 21세기 사람들이고, 연출가도 마찬가지다. 모두 시대에 맞는 세련됨과 즐거움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데다 작품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사실, 보기 전에 가장 겁먹었던 게 있다면 바로 언어였다. 극 자체가 외국의 것이니 당연히 배우들도 그 언어를 사용할 테고, 나 같은 문외한이 어찌 이해는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분명히 있었다. 더해 오페라는 미리 작품을 공부하고 가는 게 더 좋다는 이야기가 있으므로 내가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배우들의 몸짓과 미리 읽은 스토리를 통해 극의 진행도를 추측하는 것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내가 또 한 번, 바보였던 것이다. 지금은 21세기인데, 당연히 관객을 위한 프롬프터가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세심하게도, 배우들의 동선을 고려해 무대 양측에 하나씩 총 2대가 배치되어 있다. 그러므로 마치 넷플릭스 영화를 보듯 편히 앉아 배우들의 연기에 달린 자막을 읽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미리 공부하고 가라는 건 그 작품을 더 잘 즐기기 위해 권장되는 것일 뿐, 오페라를 전혀 모르는 동반인이 있더라도 감상에 무리가 없다.

 

이제 <토스카>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탈리아의 정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토스카와 그의 연인 카바라도시의 사랑, 그리고 전쟁으로 비롯된 비극을 그리고 있다.

 

나는 특히 토스카와 카바라도시의 단란한 한때를 그리던 1부가 인상적이었다. 사소한 것으로 투닥거리다가도 금세 기분이 풀려 사랑을 노래하는 둘이 요즘 연인들과 다를 것 없이 보이기도 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욕망을 표출할 줄 아는 토스카의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 매력은 3부의 극적인 상황에서 더욱 잘 드러나지만, 일상적인 대화에서 캐릭터의 특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훌륭한 각본이 두드러졌던 도입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어마어마한 성량과 끊임없는 노랫소리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관객들의 반응 역시 뜨거워 가감없이 나의 성원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소통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점잖이 앉아서 관람하는 오페라라니, 그런 건 애초에 없었을 듯하다. 열연이 너무 감동적인 나머지 숨도 못 쉬고 보는 것이라면 모를까 말이다. 각 장에 있는 이중창을 듣고 있자면 숨도 못 쉬고 본다는 게 그리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된다.

 

또 배경 장치에 눈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특히 3부 무대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커다란 조각상이 천장에 닿을 듯 아주 크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게 마치 내가 성의 옥상에 함께 올라와 이들의 운명을 지켜본다는 인상을 줬다. 또 사람들의 소망을 가득 안고 태어난 신 같은 조각상이 딱히 주인공들의 운명에 손을 들어주지 않는 아이러니함이 더욱 와닿기도 했다. 딴생각으로는 '저걸 어떻게 여기까지 옮겼을까?', '소재 자체는 그렇게 무거운게 아닌가?' 도 몇 번 했다.

 

여러모로 신성한 충격이었던 오페라였다. 무엇이든 경험이 많을수록 좋다는 걸 이번에 드디어 깨달았다. 이만큼 재미있는 걸 알았으니 다른 작품들에도 눈길을 줄 수밖에 없게 됐다. 더해 하나 배운 게 있다면, 되도록 앞에서 관람해야 훨씬 생생히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겠다.


 

[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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