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선택은 어디까지 우리를 지옥으로 몰고 갈 수 있는가?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지옥에 들어간 한 소년의 이야기
글 입력 2023.10.1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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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캐릭터의 감정선을 완전히 드러내고 이를 관객이 공감하기엔 2시간 남짓한 시간은 촉박하기에 느껴져 캐릭터에 온전히 몰입하긴 힘들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화란’이란 영화를 보게 되었다. 선호하지 않았던 ‘누아르’ 장르였고, 화란을 감상한 124분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가장 찝찝하고 불쾌한 감정이 섞여 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 찝찝함은 내게 많은 생각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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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고등학생 연규는 시궁창 같은 집에서 벗어나 엄마와 네덜란드로 이민을 가겠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동급생에게 협박을 받는 이복동생 하얀대신 보복을 가하다 합의금을 마련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이 이야기를 조직의 중간보스 치건이 우연히 듣게 되고, 그는 연규를 돕는다. 여기까진 위태롭지만 선량한 어른이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돕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난생처음 자신을 도와준 어른 남자를 마주하게 된 연규, 비슷한 유년을 보낸 치건에게 아버지의 결핍을 채우려 한 것일까? 300만원이란 큰돈을 잘 알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선뜻 줄 수 있는 자본주의 속 자본이란 권력에 눈을 뜬 것일까? 평소 강아지 한 마리도 쉽게 건드리지 못했던 연규는 치건의 조직 밑에 들어가 위험한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일을 배우며 연규는 괴로워한다. 괴로워하면서도 엄마와 자신을 구원하겠다는 목표를 마음에 새기며 계속 조금씩 자신의 가치관에 상반되는 ‘나쁜’선택을 한다. 불현듯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 오면, 자신이 받은, 혹은 받을 ‘돈’을 위해 본인을 담보로 걸고 계속한다. 결국 도망쳐 보려 하지만, 이미 나쁜 선택과 이에 따른 보상은 연규의 발목을 잡아버리고, 불행과 가난에 나쁨과 위험까지 떠안아 버린다.


영화에선 손톱을 뽑거나, 못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로 사람을 치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폭력적이고 불쾌한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 고통스럽게 사는가에 대한 의문이 반복적으로 생긴다. 연규는 불행에서 탈출하기 위해 선택을 했지만, 결국 모든 것을 잃었고 더욱 불행해졌다. 연규가 생각했던 천국인 네덜란드는 멀어졌고, 도망갈 수 없는 지옥만이 그의 세상으로 남았다. 구원자인 줄 알았던 치건은 자신을 지옥 한가운데로 내몰아 버렸다. 치건은 자신과 비슷한 유년을 보내고 있는 연규를 구원하고자 했지만, 이미 잘못된 선택의 늪에 빠진 그가 내밀었던 손은 썩은 동아줄이었다. 이미 지옥에서 살고 있던 치건은 이 사실을 알고 좌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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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 원은 큰돈이다. 하지만, 이 돈이 여러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고, 끝없이 지옥으로 몰고 갈 가치를 지녔는가? 물론 상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지옥이란 바다에서 ‘돈’이라는 미끼로 낚시하는 나쁜 어른들 사이에서 이들을 꺼내줄 좋은 어른은 없는 것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불쾌하고 찝찝하고, 역겨움까지 느꼈으나 며칠 동안 화란은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하기보단, 참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한 연규, 의도와 다르게 악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 치건, 아이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부모, 약자인 연규과 하얀을 괴롭힌 학생들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잘못을 그칠 수는 없는 것일까? 등의 끊임없는 물음표가 이어진다. 끝없는 불행 속에 연규는 모든 것을 잃고 이복동생 하얀과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다. 모든 악의 덫에서 도망가는 엔딩은 새로운 시작으로 볼 수도 있지만, 300만 원에 지옥에 빠졌던 연규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할 수 있다. 당장 하얀과 연규 모두 학생의 신분으로 보금자리 하나 구하기 힘들 것이다. 끊임없는 위기 속에서 이전과 다르게 선한 의도로 그들을 도와줄 어른이 등장한다고도 확언할 수 없다. 과연 이들이 이전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연규가 과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결말 또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게 한 이 작품은 분명 대부분의 관객이 찝찝함, 간접적 고통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렸을 것이다. 영화 속 치건역을 맡은 송중기 배우는 작품이 흥행하기 힘들 것 같지만 작품의 내용이 와닿아 노개런티로 참여했다고 한다. 다수가 추구하는 바와는 멀어, 흥행하기에 힘든 작품은 분명하다. 오히려 흥행의 요소는 다 제외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보통의 사람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도록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왜 이들은 나쁜 선택을 해야만 했는가? 이 작품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에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잘못된 선택이 얼마나 지옥으로 몰아갈 수 있는가?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분명 불안하고, 겁이 나고, 초조해지며 찝찝함이 여운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 영화를 감상하며 이 감정을 느껴보길 바란다. 행복을 추구해 왔던 일상에서 보지 못했던 커다랗고 낯선 쾌쾌한 감정들이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 질문에 우리는 대답할 수 있는가? 영화를 보고 스스로에게 남기는 마지막 질문이다.

 

 

[김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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