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의 압도감, 존재의 사고 - 일리야 밀스타인: 기억의 캐비닛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을 굳이 표현해 그것의 존재를 다시금 사고 할 수 있게 하는 작품
글 입력 2023.10.15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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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방형)일리야밀스타인_포스터.jpg

 

 

캐비닛에 들어갈 만큼 작은 물건이지만 그 작은 것으로부터 관련된 수많은 기억을 소환할 수 있듯이, 일리야 밀스타인은 작은 것으로부터 세상을 읽어내며 그 경험을 감상자들에게도 선사한다. <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 전시는 일리야 밀스타인의 내면을 탐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타인이라는 외부로의  연결, 이윽고 우리가 사는 세계로 다다르는 여정을 네 개의 '캐비닛'으로 은유하여 보여준다.


일리야 밀스타인은 New York Times, Facebook, Google 등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 LG와 협업하는 등 세계적인 브랜드 및 매거진과의 콜라보를 진행하는 일러스트레터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경의로운 디테일과 동시에 높은 가독성을 띄고 있어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일리야 밀스타인의 작품은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들의 존재감을 깨닫게 한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들의 압도적인 디테일은 보는 이들이 작품을 '보기'보다 '읽게'만든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가독성이 좋다는 평을 받는다.

 

그의 국내 첫 대규모 특별 기획전인 <일리야 밀스타인:기억의 캐비닛>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드러나는데, 그의 캐비닛을 열어 수집품을 하나씩 꺼내 보고, 즉석에서 묘사하듯 분명하고 생생한 표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첫 번째 캐비닛

그의 자아가 두드러지는 작품들과, 가장 가까운 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연인을 묘사한 작품


연인을 가장 가까운 타인이라고 표현한 것도 잘 와닿았고 그 의미를 작품에서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좋았다. 

 

 

뮤즈의 복수, The Muse’s Revenge, 2019, ⓒIlya Milstein.jpg

뮤즈의 복수, The Muse’s Revenge, 2019, ⓒIlya Milstein

 

 

누군가의 시선이나 소비의 대상이 아닌 본인 스스로 액션을 취하는 '능동적인' 여성을 강조한다. 남성의 시선에서 정의한 수동적인 여성을 그리는 주체와 그 작품을 부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쉬고 마시고 사랑하라, Relax, Drink, and Love, 2022, ⓒIlya Milstein.jpg

쉬고 마시고 사랑하라, Relax, Drink, and Love, 2022, ⓒIlya Milstein

 

 

제목이 아주 직관적이고 명확해서 좋았다. 우리에게 완전한 쉼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언제 제대로 쉬었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두 번째 캐비닛

가족 및 친구들과 즐거운 때를 함께는 모습 등의 일상적인 장면을 그려낸 작품



나라를 떠나며, Leaving the Country, 2019 ⓒIlya Milstein.jpg

나라를 떠나며, Leaving the Country, 2019 ⓒIlya Milstein

 

야라 밸리에서 일요일, 2022 ⓒIlya Milstein.jpg

야라 밸리에서 일요일, 2022 ⓒIlya Milstein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그리움의 감정이 들었다. 일리야 밀스타인의 추억 속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었다. 특히 작가의 행복하고 소중한 기억들이 깨알같이 그려져 있어 그의 맥시멀리즘 표현의 정수를 보여주며, 숨은 디테일을 찾는 재미까지 맛볼 수 있는 섹션이었다.

 

 

특별 캐비닛 - 모두의 캐비닛

<티레니아 해 옆 서재>를 재해석한 특별 섹션

 

 

티레니아해 옆 서재, A Library by the Tyrrhenian Sea, 2018, ⓒIlya Milstein.jpg

티레니아해 옆 서재, A Library by the Tyrrhenian Sea, 2018, ⓒIlya Milstein

 

 

이곳은 관람객이 직접 그림의 한 부분이 되어 단순히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아닌 직접 체험하며 작가의 예술 세계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 이곳에서는 지금껏 공개된 적 없는 일리야 밀스타인의 오리지널 드로잉이 함께 전시된다.

 

  

세 번째 캐비닛

일리야 밀스타인이 표현하는 군중의 양면성



상상 속 벨기에, A Belgian Fancy, 2021, ⓒIlya Milstein.jpg

상상 속 벨기에, A Belgian Fancy, 2021, ⓒIlya Milstein

 

협동조합 마켓, The Co-op, 2019, ⓒIlya Milstein.jpg

협동조합 마켓, The Co-op, 2019, ⓒIlya Milstein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거리 풍경을 작가 특유의 예리하고 위트있는 통찰력으로 표현한 섹션이다.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사물이나 현상들을 캐치하고 표현하는 작가의 감각이 돋보인다.

 

필자 역시 익숙한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을 굳이 표현해 그것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사고 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예술을 지향한다. 따라서 이 섹션이 가장 '일리야 밀스타인스럽다.'라고 생각했다. 그의 작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키워드인 '사소함', '디테일', '위트'가 모두 드러나는 섹션이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캐비닛

자연, 동물, 공간 묘사만 있는 작품을 통해 세계를 초월할 쉼표와 여백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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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이후에 I, After Man I, 2021, ⓒIlya Milstein.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작품 속 장소는 더 많은 상상을 유도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순수한 풍경 자체를 오롯이 사색하게 한다. 이 마지막 캐비닛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초월할 새로운 관점과 작가의 다음 행선지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힐링이 되었던 공간이자, '공간'이라는 곳에 대해 사색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특히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작품을 온라인으로 봤을 때도 디테일이 살아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더욱 압도적인 디테일에 감탄이 나왔다. 세밀하고 선명한 포인트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푸릇하고 따뜻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작품들이 많아서 보는 내내 몽글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또 일러스트 작품으로 이렇게나 많은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설치 미술, 행위 예술 등에서 받는 것과 동일한, 어쩌면 더 큰 영감을 받았던 전시였다. 필자는 본래 예술 작품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표현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든 분명하지 않든, 그것으로 인해 작가가 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관람자들도 작가의 의도를 깨닫고 그를 따라가거나,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떤 그림은 그림 그 자체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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