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상생하는 법 [동물]

글 입력 2023.10.1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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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안에서 우리는 ‘각자 또 함께’ 존재한다. 핏줄과 제도로 묶여 있는 관계이지만 결국은 타인일 수밖에 없기에 숱한 충돌을 겪곤 한다. 어쩌면 서로를 완벽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을 경유해 우리는 차차 공생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배려와 양보가 필수불가결하다. 가령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딸은 신분에 맞게 꾸준히 학업에 정진할 것을 약속하고 이에 엄마는 딸의 사생활은 보장해주기로 약속하는 것이 그러하다.

 

꼭 관철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만큼 상대의 의견도 수용할 폭을 내주어야만 가족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놀랍게도 이는 비단 인간, 인간으로만 이루어진 가정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가족이라 부르기에 어색하지 않은 존재가 된 강아지, 고양이, 금붕어, 난초 등 반려 동식물에게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아닌 생명을 집에 들여본 적 없는 이에겐 다소 의아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러한 상호 양보의 관계는 동물과 인간에게서도 성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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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터줏대감 ‘박하’로 예를 들어보자. 먼저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박하가 우리 집에 입양 오게 된 과정에 박하의 의지는 없었다는 것. 이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 그러니까 나를 비롯한 우리 집 식구들에게 더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조건이 된다.

 

때문에 박하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것은 그러한 상호적 의무와는 무관하게 이행해야 하는 것이 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더 사소한 부분들, 그러나 서로의 관계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다.

 

강아지와 공생하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강아지를 정면한 채로 앞 발과 배 사이에 손을 끼어 들어 올리면 상당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 엉덩이 부위를 건드리는 것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것, 근거리에서의 아이 콘택트를 공격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것 등.

 

한편, 박하 역시 나와 공생하며 변화한 것이 있다. 손을 깨물면 안 된다는 것, 푹신한 이불과 침대를 좋아하지만 잘 때 만큼은 나의 숙면을 위해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에어팟을 고장 내면 언니가 질색한다는 것 등을 학습했다.

 

지금 시점에서는 담담히 웃으며 서로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을 곱씹을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결코 순탄치 않은 과정이었다. 내 서투름에 박하는 간혹 물기도 했고, 내 영역과 물건을 침범하는 박하에 나는 분노를 쏟아냈다. 그러나 그러한 탐색과 반목, 화해를 거쳐 우리는 타협점을 얻게 됐다.

 

이제 나는 박하를 안을 때면 내가 편한 자세는 가볍게 포기하고 박하의 등에 내 배를 포개 한 팔로는 앞발을 들어 지지하고 이후 뒷발을 다른 팔에 지지하곤 한다. 원치 않는 미용용 옷은 입히지 않기로 한다. 내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띈 걸까. 박하 역시 제멋대로 굴기로 유명한 종 특유의 앙칼진 성격이 무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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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고무적인 변화는 산책에 쉽게 응해준다는 것.

 

강아지는 산책을 일반적으로 좋아한다는 내 통념은 박하와 첫 산책을 했던 그날부로 깨졌다. 인간도 외향성, 내향성으로 나뉘듯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산책을 조르는 외향형 강아지도 있는가 하면, 최고급 간식까지 동원해야만 겨우 응해주는 내향형 강아지도 있다. 박하는 후자다.

 

그러나 강아지에게 산책은 의식주에 비견할 만한 것이라 믿는 나는 이를 포기할 수 없었고, 시도했다. 처음에는 안고서, 다음에는 내려놓고 1분, 5분, 10분 시간을 늘렸다. 그러나 여기에도 상호 양보는 지키려 노력했다. 낯선 곳,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박하를 위해 익숙한 경로를 찾고, 시간은 15분 이상 초과하지 않는 것으로.

 

강아지가 견주를 오히려 산책시키는 꼴이 본인이 보기에도 박하게 느껴진 것일까. 박하는 차차 마음을 열었고, 이제 하루 한두 번의 산책은 루틴이 되었다. 물론 박하에게 무리가 되지 않는 선을 절대적으로 지키면서.

 

혹자는 이런 내 경험담을 듣고 끼워 맞추기식 궤변이 아니냐며 반박할 수도 있다. 틀린 말도 아니다. 나는 박하의 마음을 추측하고 가늠할 뿐 그 어떤 확답도 내릴 수 없다. 어쩌면 박하의 양보라 믿었던 것들이 실은 모두 나의 오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믿을 때, 서로를 호혜적 관계로 바라볼 때 우리는 더 돈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강아지의 속마음을 간파하는 능력까지 나에게는 없지만 배려와 양보가 상생을 지탱하는 요체이며,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이는 유효하다는 믿음에 기대어 살아갈 뿐이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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