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광합성하는 한 송이 꽃처럼 – PEAK FESTIVAL 2024

글 입력 2024.06.1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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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햇빛을 피해다녔다. 얼굴이 타니까, 까매지니까, 자외선은 피부와 눈 건강에 안 좋으니까. 비타민D는 매일 먹는 종합비타민으로 보충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햇빛이 원래 이렇게 따사로웠던가. 눈가를 간지럽히는 밝은 빛이 이렇게 기분이 좋았던가. 언제든 어디서든 원하는 채도와 온도의 빛을 가질 수 있는 현대의 인간에게도 저 멀리 태양계의 중심에서 분열하는 항성의 생동감을 담은 햇빛은 이토록 소중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난지한강공원 풀밭에 자리잡고 앉아 책을 읽고, 집에서 내려온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홀짝였다. 간만에 햇빛을 흠뻑 받았다. 광합성하는 한 송이 꽃처럼 온 몸으로 세상이 주는 것을 받아들였다. 햇빛이 한참동안 노크하듯 눈가를 두드리다보면 유독 맑고 파랗던 하늘에 등장한 구름 한 점이 잠깐의 그늘을 선사한다. 우리는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에 땀을 식히고, 귀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수들의 라이브 연주에 맡긴 채 친구와 짧은 대화를 나눈다. 식어버린 닭강정과 집에서 챙겨온 간식들을 집어 입에 넣기도 했다. 감각들에 집중하다보니 왠지 내가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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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간의 페스티벌을 모두 즐기고 집에 돌아와 거울에서 마주한 내 모습을 잠시 본다. 첫 날 썬크림을 깜빡한 양쪽 팔은 노릇한 군고구마처럼 탔고, 얼굴에도 코와 볼에 불그스름한 기가 슬쩍 올라와있다. 그런데 기분이 왜이리 좋지. 간만에 햇빛을 하도 받았더니 진짜로 비타민이 잔뜩 합성됐나. 드물게도 아쉬움이나 다른 생각없이 즐거움과 앞으로의 기대만 가져갈 수 있는 맑고 반짝이는 하루였다. 정말로 기억하고만 싶은 그런 하루. 언젠가 내가 삶을 돌아볼 때 오늘도 한 장면 껴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비관과 우울을 조금 멀리한 채 내 삶을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바라봐줄 수 있을 것 같다.


좋았던 장면들을 어디 한 번 짚어볼까. 먼저 책상에 올려둔 목걸이가 눈에 띈다. 라인업에 올라온 가수들의 이름을 한 명씩 되뇌어 본다. 그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이름 몇에 문장 한두개를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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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티스트이다. 페스티벌에 초대된 건 처음이라며 들뜬 모습과 진심으로 무대를 즐기는 모습은 마치 댕댕이 같았다. 이런 사람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삶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사랑스러웠다.


김뜻돌은 기대 이상의 무대를 보여줬다. 자주 반복해서 듣던 몇 개의 곡들로만 인지하고있던 아티스트였는데, 아티스트로써의 면모를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기타를 들고 바람을 맞으며 노래하는 모습이 잘 어울렸다. 독자적인 음악세계가 있는 것 같아 그녀의 노래가 더욱 궁금해졌다. 팬들을 돌멩이라고 부르는 것도 좋았다.


정용화는 어린 시절 이후로 오랜만에 만나게 된 공연이라 반가운 마음이 컸다. ‘외톨이야- 따리디리다라뚜-’를 외치고 다니던 초등학교 때가 생각났다. 인지도도 높고 오래 사랑받아온 아티스트인 만큼 특유의 자신감이 넘쳤다. 치명적인 표정을 자꾸만 짓는데 그게 웃기면서도 잘생긴 얼굴 때문에 실제로 치명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조금은 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밉지 않은 느낌이었다.


크라잉넛은 공연을 즐긴다는게 뭔지 보여주었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우스꽝스러운 가사들이 어린 시절의 향취를 불러일으켰고, 사람을 원초적으로 뛰어놀게 만드는 힘과 퍼포먼스가 존재하는 공연이었다. 아무생각없이 음악에 몸을 맡기고 같이 뛰어놀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주어 신나게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이승윤은 첫 날의 마지막 순서였던만큼 완성도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이승윤은 최근 싱어게인에 나와서 주목받았다는 점과 지인이 좋아한다고 했던 한두곡의 노래만 알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압도되는 경험을 했다. 바로 앞 무대에서 공연이 진행되는데도 잘 짜여지고 편집된 영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주었다. 넬은 다른 아티스트와 다르게 모든 전광판을 준비해온 영상으로 뒤덮으며 음악과 함께 총체적인 공연 경험을 주었다.


다섯은 제일 기대했던 아티스트 중 하나로, 뜨거운 날씨에도 둘쨋날에 아침 일찍 페스티벌장으로 향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최근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다섯의 플레이리스트를 자주 틀어놓았던 터라 그 음악을 라이브로 듣는다는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컸다. 더 좋아하고 자주 들었던 노래들이 많지만 ‘나는 내가 정말 무사히 도착하길 바라’를 부를 때는 진짜로 관객들에게 건네는 마음 같아서 좋았다.


유라는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특색있는 음색과 가사가 마음에 들어왔다. 유라의 가사를 뜯어보다보면 신기하리만치 독특한 표현이 많다. 예를 들면 “씹다 뱉은 관자처럼 나 서걱이고 있을 때”같은 문장 말이다. 더운 날씨 탓에 노트북이 퍼져버려 준비한 음악들을 다 보여주지 못한듯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채워낸 공연이었다. 수영갈 때 자주 듣는 <수영해>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 나는 개인적으로 마음이 다 충족됐다.


글렌체크이디오테잎은 잘 모르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했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도입부를 듣자마자 아 이노래구나 하고 알 수밖에 없는 곡들이 즐비했고 나와 일행은 결국 참지 못하고 스탠딩 무대로 뛰쳐나갔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마음껏 뛰어놀며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어서 좋았다. 한참을 뛰어놀면서 아 이런게 페스티벌의 분위기고 열기지 실감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공통의 관심사를 두고 모르는 이들과 함게 열광할 수 있는 경험은 꽤나 귀중하다.


김윤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마치 뮤지컬의 씬 넘버를 떼어놓고 보는듯한 몰입력과 호소력 혹은 진정성 같은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듣고싶어 기대하고 있었는데 결국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통해 이해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풀어나가는 그 모습에 이끌릴 수밖에 없던 지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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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티스트를 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그 주말의 빛나는 시간들을 함께 만들어주었다. 특히 이번 피크 페스티벌은 두 개의 무대가 세팅되어 있어 무대 준비시간 없이 교대로 공연이 이어졌다. 대기시간이 길어질 경우 흥이 끊겨 루즈해지거나 더운 날씨에 체력적으로 지치게 되는 일이 많은데 쉴새없이 몰아치며 공연이 진행되다보니 보다 쾌적하고 밀도있게 페스티벌을 즐긴다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페스티벌은 피크닉을 즐기며 한 장소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얼마나 포진해있는지 라인업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페스티벌의 또다른 즐거운 점은 새로운 아티스트를 접할 기회가 된다는 점이다. 단독콘서트에 찾아갈만큼 좋아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가수들의 음악도 쉬어가며 접해볼 좋은 기회가 된다. 게다가 취향에 맞지 않을거라 생각한 가수들의 곡들도 살랑이는 피크닉 감성이 더해져서 마음에 들어오는 경우가 생긴다. 아티스트에게도 일반 참여자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듯이 주류메뉴를 판매하고 있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지만 무알콜 맥주나 각종 마실거리, 먹거리들이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었고 퀄리티도 괜찮은 편이었다. 페스티벌 스테이지 내부에도 꽤 많은 수의 화장실과 편의시설 등을 구비해놨다는 점과 많지는 않았지만 참여할만한 이벤트와 팝업이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난지한강공원 특성상 교통 접근성은 떨어지는 편이었고 첫 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긴 버스줄에 난감하기도 했지만, 주최측에서 셔틀버스를 다수 운영하여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배려를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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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한여름에는 갈 용기가 안 생겨서 벼르고 있던 찰나에 피크 페스티벌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본격적인 여름을 시작하며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년에도 좋은 라인업의 아티스트와 맥주와 경험들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마지막은 함께해준 이들에 대한 감사를 전해야겠다. 흔쾌히 함께 가준 친구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으나 페스티벌장에서 만나 빛나는 시간들로 채워준 나의 사람들. 나에게는 지난 이틀이 잊고싶지 않은 단상으로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도 일년에 한 번쯤 페스티벌을 즐기고 싶기는 해서, 음악 들으며 혼자 책이라도 읽어야지 생각했던 시간이 이렇게 빛나는 것으로만 가득 채워질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앞으로도 그들이 어디를 가자고 부르면 고민없이 달려갈 것이다. 투명하고 맑은 기쁨과 기대가 그곳에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함께라서 즐거웠고, 아름다웠던 뜨거운 여름날의 단상. 청춘의 한 장면을 뚝딱 그려내버렸다. 그래, 여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계절의 한 가운데에서 햇빛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마치 광합성하는 한 송이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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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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