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영화]

글 입력 2023.10.14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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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나의 권리다. 복지는 더 이상 시혜가 아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표현되는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의 외침이다. 이러한 그의 외침은 복지는 마땅히 개개인이 받아야 할 권리라는 뜻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다니엘이 이 말을 외치기 전까지 그에게 일어난 일들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인권 침해, 관료정치의 독선, 사랑 없는 의무.


다니엘은 영화에서 다수자로 표현되는 사회 복지 공무원, 상담원 등 사람들에게 인권을 보호받지 못한다. 인간의 권리, 즉 인권은 인간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영화에서 소수자인 다니엘 블레이크와 두 아이를 기르는 20대 싱글맘인 ‘케이티’는 다수자인 사회복지 공무원들에게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 이는 다니엘이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라고 쓴 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수자인 다니엘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며 소리칠 때, 그는 그 공간에서 쫓겨나거나 제재를 당한다. 다수자들은 소수자가 말하려 할 때마다 말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무시한다. 애초에 그들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다수자들의 태도는 관료정치의 독선, 사랑 없는 의무로도 설명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관료정치의 독선으로 인해 다니엘이 답답해하고, 소리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관료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특권적 인간의 집단인 관료를 통해 지배가 행해지는 중앙집권국가에 생기는 특정의 행동양식과 의식 상태‘이다. 특별한 권리를 지닌 몇몇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공감하고, 소수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더 심각하게 여겨야 할 것은 관료정치가 독선의 형태로 나타나게 될 때이다.


이때의 사회는 오랫동안 인정되고 습관화된 규범만을 중시하고,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가 항상 되풀이 된다. 또한, 내용과 실질보다는 형식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결국에는 다수자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해야 그에 맞는 복지를 개선하는 모습을 띤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소수자들이 권리를 침해받게 되는 방법과 상황 또한 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료정치의 독선은 기존의 방식으로,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소수자에게 복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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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영화의 공무원들은 사람 없는 의무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의무에는 사랑이 없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의무의 구조는 누군가를 파괴하기 마련이다. 영화에서도 사랑 없는 매너리즘에 젖은 정부가 다니엘 블레이크를 죽음으로 몰았다. 영화에서 대부분의 사회 복지 공무원들은 소수자에 대해 따뜻한 말 한마디 보내지 않고, 지겨워하는 눈빛을 보낸다. 그들의 눈빛에는 ’당신이 소수자가 된 것에는 당신이 게으르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듯 보인다.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이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에 대해 지겨워하는 순간 그 일은 감정과 열정이 들어가지 않고 의무적으로 형식에 맞춰서만 진행하게 된다, 이러한 의무적인 일처리는 형식에 맞춰지기만 한다면 일처리의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소수자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의 다양성, 특수성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조건만 맞으면 복지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희망만 주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은 제공하지 않는다.


적어도 소수자들을 가장 많이 접하는 사회 복지 공무원들은 사람에 대한 애정, 사랑이 있어야 한다. 신속한 일처리보다는 진정성이 담긴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랑 없는 의무‘가 아닌 ’의무 없는 사랑‘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인간에 대한 공감과 존중은 개개인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회 복지 공무원들이 개개인에 대한 사랑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오는 사람들,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일단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그들의 입장을 공감하게 될 것이고, 감정적 태도를 바탕으로 그들이 최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자가 복지를 받을 수 있는 조건에 해당하는지 항목별로 확인하고 평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그저 형식적 절차이다. 자신을 마주보고 있는 그들이 어떤 이유로 인해 이러한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지금 어떤 복지가 최우선으로 필요한지, 복지를 받지 않으면 그가 처하게 될 상황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사랑이고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의 시선은 비단 사회 복지 공무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전체적으로 필요한 것이 주변의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다. 어쩌면 사회 복지 공무원보다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영화에서도 케이티를 도운 것은 사회 복지 공무원, 다수자가 아닌 그와 같은 처지였던 다니엘 블레이크였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지나치는 많은 이들에게 몇 분, 아니 몇 초의 시간만 투자하여 관심을 둔다면 이는 생각보다 더 큰 도움이 되어 사회의 소수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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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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